출처=KBS 한국인의 밥상
겨울엔 겨울 냄새가 있다. 정신없이 뛰어놀던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건 몽글몽글 피어오른 굴뚝 연기 사이로 전해지는 밥 냄새, 담 너머로 새 나오는 청국장 냄새, 아버지 월급날이면 온 마을을 들었다 놓는 고등어 굽는 냄새.
특히 겨울엔 향기가 맛을 부른다. 그 향내를 맡고 있노라면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 물건, 시간 그리고 음식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바다 비린내를 사랑한 사람들이 만든 양미리알찜부터 내륙지방임에도 생선을 먹을 방법을 고안하다 탄생한 간고등어 추어탕까지. 겨울 음식에 담긴 그 시절의 지혜와 추억의 맛을 함께 나눈다.
푸른 겨울 바다를 위를 가르는 배 한 척. 키를 쥔 건 바로 김영배 선장이다. 지금은 한창 양미리를 건져 올리느라 바쁘다. 막 건져 올린 양미리로 만든 양미리 회는 뱃사람들만 먹을 수 있다는 특식이다.
회 한 점이면 고된 바닷일도 거친 파도도 그저 즐기게 된다. 대를 이어 뱃일을 해오는 김영배 씨에게는 양미리 회 말고도 그만 알고 있는 오래된 양미리 요리가 있다.
그가 선보이는 아주 특별한 음식 바로 양미리알찜이다. 양미리는 과거 명태를 잡을 때 미끼로 쓰였는데 손질하는 과정에서 양미리의 알은 전부 제거했다. 자연스레 남은 알로 찜으로 먹었다고 한다.
어릴 적 그 시절 먹던 그 맛을 재현했다. 경북에서 시집온 아내는 물론 서울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온 큰딸까지 입안에서 터지는 고소함에 깜짝 놀라는데 명태가 원 없이 잡히던 그 시절 바다의 풍요까지 상 위에 올린다.
이에 질세라 아내 태자 씨는 양미리로 국물을 내 장칼국수를 끓인다. 원래 장칼국수는 강릉의 토속 음식인데 태자 씨는 생양미리를 넣어 장 칼국수를 끓인다.
한 냄비 끓여 놓으면 일하며 뚝딱 한 끼 든든하게 즐길 수 있다. 장칼국수를 먹던 중 때마침 소복이 내린 한겨울 눈송이 덕분에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든 가족들은 그들을 울고 웃긴 바다에 머문 진한 기억을 돌이킨다.
한편 이날 방송에는 포항 바다로 돌아온 그리운 그 맛 청어 과메기, 비린 향기를 사랑한 내륙 안동 간고등어 등을 소개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