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열애’ 정경호는 축복, 일·사랑 모두 내 삶…20년 달려 ‘런 온’ 만나 “기다리길 잘했다”
JTBC 드라마 ‘런 온’에서 완벽주의를 표방하는 ‘젊은 여성 리더’ 서단아 역으로 열연한 배우 최수영은 이번 작품에서의 이미지 변신에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사진=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저도 대본을 봤을 때 이 캐릭터는 저보다 좀 더 차가운 이미지의 배우나, 좀 더 나이가 있는 배우가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했어요. 나의 어떤 면에서 단아가 어울린다 생각하셨을까…. 그런데 내가 아직 보여드리지 않은 이미지의 캐릭터를 제안해주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나더라고요(웃음). 저도 모르는 제 모습을 제작진이 봐주신 거잖아요. 작품 결정 전에 미팅하는데 작가님께서 먼저 회사를 통해서 제 팬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저야 그냥 누구나 인사치레로 그렇게 말할 수 있으니(웃음). 사실 막 그렇게 믿진 않았는데, 작가님을 실제로 보니까 정말 제 작품을 빼놓지 않고 다 봐주셨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연기할 때 어떤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는지 알고 계신단 느낌을 받아 ‘정말 배우 최수영에 대한 애정이 있으시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미팅 자리에서 감동받았죠(웃음).”
이전과는 다른 결의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설정에 비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캐릭터의 중심을 잡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외적인 이미지에 맞춰 그 나잇대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니’ 어미의 말투를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도록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한다.
“단아가 ‘~니’ 하는 말투를 쓰는 젊은 여성 리더 캐릭터잖아요. 저는 단아를 상상할 때 로고가 큰 명품 가방으로 자기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편해 보이지만 개성 있는 옷을 입고 주변 시선 상관없이 자기 일에 몰두하는 여성을 떠올렸어요. 그런 여성의 말투라면 뭔가 싸가지 없거나 무례한 말투가 아니라 이유 있고 당당한 말투가 아닐까 싶었죠. 그렇게 말투를 설정해서 첫 대본 리딩 하는데 감독님이 ‘대본으로만 본 단아는 좀 더 도회적이고 나이 많은 여성 이미지가 생각났는데, 수영이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동갑내기인데 맞먹을 수 없는 또라이 느낌이 난다’고 그러시더라고요(웃음). 딱 제가 의도했던 느낌이었는데 맞혀주셔서 기뻤죠.”
‘런 온’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오미주 역의 신세경 최수영은 동갑내기, 대학 동기라는 연결고리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사진=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세경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죠. 기본적으로 저는 작품 하기 전부터 신세경이란 배우에 대해 갖고 있는 존경심이 있었어요.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이슈 없이 자리를 지켜온 여성 연예인이기에 그 친구가 저는 너무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너무 기특했죠. 제가 오미주를 제 ‘인생 여주’라고 하는데, 오미주를 연기한 게 세경이어서 시청자로서도, 배우로서도 너무 만족했어요. 그런데 내가 뭔데 만족하지?(웃음). 너무 존경스럽고 기특하고, 그리고 너무 예쁘잖아요. 착하고(웃음). 늘 박수 쳐 주고 싶은 배우예요.”
작품에서 사랑과 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해야 하는 캐릭터를 맡았기 때문일까. 최근 그는 ‘사랑과 일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고 했다. 캐릭터나 작품으로 인한 질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재 배우 정경호와 9년째 열애를 지속해 오고 있는 그에겐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우려에도 최수영은 “어느 것에도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자르며 소신을 드러냈다.
“저는 사랑과 일을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아요. 둘 다 제 삶의 한 부분이거든요. 제 삶에 있어서 그때그때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 걸 가꾸면서 최선을 다하는 편이에요. 어느 것을 먼저라고 생각할 순 없고 주어진 사랑에, 주어진 일에 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의 사명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그리고 ‘그분’은 제 생각에 대한민국에서 정말 로맨틱 코미디를 잘하는 선배이자 배우인데, 그런 분이 제가 늘 물어볼 수 있는 친근한 자리에 있다는 게 제가 가진 축복인 것 같아요(웃음). 많은 아이디어도 주고, 도움도 주고 있죠.”
열두 살이던 2002년 데뷔 후, 2007년부터 소녀시대 수영과 배우 최수영으로서 숨 가쁘게 달려온 그는 이번 ‘런 온’을 두고 “기다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라고 꼽았다. 사진=메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을 드러낼 만큼 최수영은 이미 단단하게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 20년 가까이 소녀시대의 수영과 배우 최수영을 오가며 숨 가쁘게 달려왔던 만큼 그의 ‘뚝심’이 누구보다 단단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긴 길을 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한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어떤 직업이든 처음 마음가짐을 그대로 가진 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은 그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랜 시간 이 업계에 있었지만 ‘이 길을 걷길 정말 잘했다’고 자신을 칭찬해 줄 지점까진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자신의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만난 작품이 ‘런 온’이라는 것에 감사한다고, 그동안 기다리길 잘했다고 스스로의 어깨를 두드리기도 했다.
“이 업계에 정말 오래 있었단 생각을 하긴 해요. 20년이 다 돼가니까요. 여기서 일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유형을 봤고, 그래서 제 마음을 닫아보기도 하고 열어본 척하기도 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굉장히 많은 우여곡절을 넘었었죠.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내가 기다려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믿어주면 그걸 해내는 팀이 있구나. 연예인 수영으로서 믿었다가 약간 상처 받았던 경험, 상처 받을까봐 완벽히 열정을 쏟아보지 못했던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저도 회의적으로 변해가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이렇게 따뜻하고 무해한 드라마를 만나면서 배우가 작품에 최선을 다했을 때 그 열정과 사랑에 기꺼이 100퍼센트 보답해주는 제작진을 만난 작품을 경험하며, 그게 배우로서도 연예인으로서도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하면서 ‘기다려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들었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