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앞둔데다 글로벌 경쟁 심화에 소송 장기화 부담…코나EV 화재 리스크도 변수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소송전에서 승소하면서 양사가 물밑 협상에 나설지 관심이 쏠린다. 서울 LG와 SK 본사 건물 모습. 사진=연합뉴스
LG에너지솔루션은 자사 배터리가 탑재된 현대자동차 코나 EV의 연이은 화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2월 15일 경남 창원에서 한 전기 시내버스가 주행 중 화재가 났는데, 이 버스 역시 현대차 코나 EV와 같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탑재됐다.
잦은 화재 사고로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양사 모두 책임 소재에 따라 신뢰도 훼손은 물론 재무적 타격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차는 코나 EV 배터리를 전량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상 차량은 현대차가 리콜한 2017년 9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제작된 전 세계 7만 7000여 대다. 업계에선 국토교통부가 조만간 코나 EV 화재 원인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토부는 당초 고전압 배터리의 배터리 셀 제조 불량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밝혔으나, LG에너지솔루션이 이를 부인하면서 현재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다.
배터리가 화재 원인으로 결론나면,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선 대형 악재가 된다. 코나 리콜에 배터리 교체 비용까지 부담하려면 비용은 1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양사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책임 소재를 따지고 비용 부담 정도, 조치 방안 등을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경쟁 심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도 양사 합의가 시급한 이유로 꼽힌다. 에너지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이달 초 발표한 지난해 누적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을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은 33.5GWh(기가와트시)로 2위를 기록, 1위인 중국 CATL(34.3GWh)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어 일본 파나소닉(26.5GWh), 중국 BYD(9.6GWh), 삼성SDI(8.2GWh), SK이노베이션(7.7GWh) 순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코나 화재가 LG 배터리 결함으로 결론이 나면 리콜 비용을 물어야 한다”면서 “양사가 끝까지 부딪치면 결국 SK는 배터리 사업을 접어야 할 테고, LG도 얻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합의 정당성이 커진다. 중요한 것은 결국 합의금 규모”라고 했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이 올해 상장을 앞둔 점도 불확실성을 없애야 하는 이유”라며 “소송 장기화는 한국 배터리 이미지를 훼손하고 중국 업체만 키워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도 합의는 필수다. SK이노베이션은 60일 내 미국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그러나 항소 기간 수입금지 및 영업비밀 침해 중지 효력은 지속되고, 이어지는 다른 소송도 ITC 결정에 영향을 받을 확률이 높다. 항소마저도 지면 소송비용에 더해 재판 결과에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하기에 손해가 더 커진다. 이와 관련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월 11일 입장문에서 “침해된 영업비밀에 상응하고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 가능한 합의안이 제시되지 않으면 ITC 최종 승소 결과를 토대로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품목에 대한 미국 내 사용 금지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지연 신영증권 연구원도 “SK는 미국 공장 가동을 당장 중단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고객사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배터리 사업에 대한 의지가 크기 때문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며 “LG도 합의금에 대한 이견이 있는 것이지 SK가 사업을 접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지 않느냐”고 관측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소송전에서 승소하면서 합의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15일 오전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승리한 LG화학과 패배한 SK이노베이션의 주가 향방이 엇갈리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물론 반론도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코나 화재가 LG 배터리 문제라고 결론나지 않았기에 배터리 소송 합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긴 힘들다. SK와의 배터리 소송과 코나 화재는 별개 사안으로 규모도 달라 연관 짓기 어렵다”며 “IPO도 ITC 승소로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호재로 작용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런 가운데 양사의 신경전은 지속되고 있다. 패소한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시장에서 철수해야 할 위기를 앞두고도 4년간의 유예기간과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ITC 판결 후 60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결국 소송 등으로 얽힌 실타래는 그룹 수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수장들의 회동을 점치는 목소리도 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4년간의 유예기간으로 숨통이 트이니 SK는 아직 뻣뻣한 태도이고, LG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높은 합의금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2년간 못한 합의를 2개월 안에 하기는 실무자들 차원으로는 안 될 것이기에 총수들이 만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