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의심만으로도 고발 가능…“지나친 보험사 이익 대변” vs “왜 그런 조치 했나 살펴봐 달라”
일부 보험사가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을 근거로 보험 소비자들에 대해 ‘묻지마 법적대응’을 해 논란이다. 사진=연합뉴스
인천에 거주하는 A 씨는 2020년 12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자영업을 하던 A 씨는 자신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당혹스럽다고 했다. A 씨가 조사를 받은 혐의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이었다. A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A 씨는 2020년 10월 26일 오후 후진하던 중 운전 중인 차량을 담벼락에 들이받았다. 단독 사고였다. A 씨는 보험사에 사고접수를 했다. 펜더(차량 바퀴를 덮는 부분)와 범퍼 손상에 대한 보험처리를 요청했다. 그리고 지인이 운영하는 공업사에 차량을 맡겼다. 보험처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보험사 측은 사고현장 기울기와 고저, 피의자 차량 높이 등을 고려할 때 해당 부위가 사고 장소에서 일어날 수 없는 구조라고 판단했다. 차량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지 않은 점, 펜더 손상뿐 아니라 범퍼까지 보험처리를 요청한 점, 보험조사부 직원이 사고현장에서 차량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 것을 A 씨가 거절한 점 등도 보험처리가 이뤄지지 않는 데 영향을 미쳤다.
A 씨는 “보험조사부 직원이 사고현장에서 차량을 보여 달라고 요청한 것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업무 중이어서 나가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씨는 “업무가 끝난 뒤 보험사 직원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A 씨는 보험사 측에 보험 처리가 왜 되지 않는지에 대해 문의했다. A 씨의 말이다.
“보험사 담당자가 ‘OOO 공업사에 차를 맡겼기 때문에 보험처리를 해줄 수 없다’고 했다. OOO 공업사와 보험사의 사이가 좋지 않은데 내가 해당 공업사에 차를 맡겼기 때문에 보험처리를 해주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
보험 처리 관련 민원인이 피고발인이 돼 경찰 조사를 받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사진=최준필 기자
A 씨는 사고 나흘 만에 금융감독원에 ‘금융분쟁조정 신청’ 민원을 제기했다. 그때까지 보험처리 여부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보험사 담당자 태도가 불친절한 부분을 감독기관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금융감독원은 2020년 11월 8일 민원을 처리했다. 민원 처리 내용은 이랬다.
“귀하 요구와 관련해 불편을 초래한 담당 직원에 대해 재발방지 교육을 실시하고 상호 적정한 시간을 정해 귀하에게 상세하게 안내하겠다고 알려왔으니 자세한 내용은 보험사에 피신청인(보험사) 담당자에 문의해 안내받길 바란다.”
금감원 민원 제기 이후 A 씨는 보험사로부터 사고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 아무것도 안내받지 못했다. 오히려 경찰 조사를 안내받는 상황이 됐다. 금감원으로 민원 관련 내용을 통보받은 보험사가 A 씨를 고발한 까닭이었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차량 수리를 의뢰했으나 보험사로부터 어떤 안내도 받지 못하고 전화 통화로 ‘보험처리 불가’ 통보를 받았다”면서 “너무 억울하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관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억울함을 증명하기 위해 꼭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A 씨는 일요신문과 만나 “생업에 종사하는 상황에서 그저 보험처리를 받고자 했을 뿐인데 이런 사건에 휘말려 굉장히 당혹스럽고 난감하다”고 했다. A 씨는 “전문적인 법무팀을 가동하는 보험사를 상대로 피보험인은 전전긍긍하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40대 남성 B 씨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B 씨 차량은 2020년 11월 10일 오전 거주지 앞 노상에 주차돼 있었다. 이때 다른 차량이 B 씨 차량을 살짝 들이받아 펜더가 훼손됐다. B 씨는 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려고 차에 탑승하려다 훼손된 차량 부위를 확인했다. B 씨는 자신의 차를 들이받은 차주와 대화를 나눴고, 보험 처리를 요청했다.
그런데 보험사는 차를 들이받은 차주가 B 씨 차량 연락처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 등 여러 정황 사항을 고려해 보험 처리 중단을 통보했다. B 씨는 “해당 차주는 내 연락처 확인에 앞서 보험사에 먼저 전화를 했고 그래서 내 연락처를 확인하지 않았다”면서 “차주가 현장을 떠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현장에 도착해 연락을 하지 않고도 차주와 협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보험사 측은 이 대목을 ‘공모’라고 봤다”고 했다.
B 씨는 차량을 공업사에 맡기고 가해 차량 차주 보험사로부터 렌터카를 지급받았다. 그런데 보험사 측이 돌연 렌터카를 반납하라고 통보했다. B 씨 주장에 따르면 보험사 측은 “차를 수리 맡긴 공업사가 분쟁업체라며 공장에서 이유 없이 수리를 하지 않고 있다. 렌터카를 반납해야 한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B 씨는 사고가 난 뒤 열흘 뒤인 11월 20일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금감원은 “민원은 직원 업무처리 및 불친절 불만 건으로 금융회사 내부 경영 관련 사항”이라면서 “해당 금융회사에서 직접 민원을 처리하는 것이 신속하고 적절하다고 판단된다”고 민원 처리 결과 내용을 B 씨에게 보냈다. B 씨는 금감원 통보를 받고 보험사 측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B 씨 역시 경찰에 출두해 조사받는 신분이 됐다. B 씨 역시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의심만으로도 보험 가입자를 고발 조치 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2월 10일 B 씨가 차량을 맡긴 공업사 측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업사 관계자는 “보험사 측이 몇몇 공업사를 찍어놓고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보험사 측은 수리비용을 최소화하려 하고, 공업사는 고객 안전에 초점을 맞춰 최대한 안전한 수리를 하려 한다”면서 “그 과정에서 마찰이 불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문제는 그 불똥이 아무 죄 없는 보험 소비자에게 튀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들이 몇몇 수리공장을 ‘과잉 수리하는 곳’이라고 낙인찍어 놓은 뒤, 해당 공장에 차를 맡겨 놓은 피보험자들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제정된 뒤로는 ‘특별조사팀’ 등을 꾸려 공업사와 피보험자를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민원인이 피고발인이 돼 경찰 조사를 받는 사례를 지켜보면 ‘우리(공업사)가 잘못한 건가’라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A 씨와 B 씨를 고발한 보험사 측은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을 악용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면서 “세부적인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다. 왜 보험사가 그런 조치를 했는지 과정을 먼저 살펴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자동차 정비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제정 이후 보험사들이 피보험자를 고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법에 따라 보험사가 보험사기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피보험자에 대한 고발이 가능한데, 이 경우에 고발할 수 있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 피보험자들의 경우 보험사로부터 ‘괘씸죄’를 적용받아 고발 조치 당하고 있다. 금감원 민원이 여러 차례 제기될 경우 해당 보험사는 금융 당국으로부터 페널티를 받을 수 있고, 보험 담당자는 인사 페널티를 받을 수 있다. 보험사가 페널티를 받을 경우 ‘악성 채권’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보험사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다. 보험사가 피보험인을 고발할 경우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페널티 완화뿐 아니라 보험금 지출을 줄여 실적 증가에 기여할 수 있다. 최근 한국 시장에서 발을 떼려는 외국계 보험사 일부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피보험자를 대상으로 법적 대응을 일삼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국회 본회의장으로 기사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은숙 기자
관계자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은 전적으로 보험사 입장에서 만들어진 법”이라면서 “보험 가입자 입장에서 보험사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법은 없다. 그러니 피보험자가 보험사가 놓은 덫에 속수무책으로 걸려드는 구조가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은 19대 국회에서 입법됐다. 19대 국회 후반기 정무위원회는 2016년 3월 2일 20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의 핵심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공공기관과 더불어 보험회사가 보험계약자를 고발·수사의뢰하는 걸 의무화해놓은 점이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제6조는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자 등의 행위가 보험사기 행위로 의심할 만한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 관할 수사기관에 고발 혹은 수사의뢰하거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직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행법상 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면 의심만으로도 고발조치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보험료를 꼬박꼬박 받아오다가 보험금을 지급해줘야 할 때가 오니 가입자에게 보험사기를 혐의를 덮어씌우고 보험금 지급을 피하려는 행위”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험금 지급을 최소화하는 건 보험사의 당연한 조치이긴 하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혐의로 보험 가입자를 고발하면, 보험 가입자가 자신의 무혐의를 입증하더라도 보험사에 또 다른 대응을 하기 어렵다. 이 법의 존재로 보험 가입자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묻지마 법정대응’을 하는 보험사를 상대해야 한다.”
한편, 21대 국회에서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은 총 4건이 계류돼 있는 상황이다. 20대 국회에선 보험사기방지특별법 8건이 임기만료 폐기됐다.
수도권 지역 자동차정비협동조합 관계자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에 대한 정치권 관심이 적은 것도 문제지만, 발의되는 개정안들이 현장에서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실효성이 있는지 여부에도 물음표가 붙는다”면서 “보험사, 소비자, 정비업체 등 법 당사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입법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