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야구연봉보다 상금 높았는데 지금은 야구의 10분의 1 ‘사실상 후퇴’
일본 상금랭킹을 좀 더 들여다보면 이치리키 료 9단이 4860만 엔(약 5억 1300만 원)으로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1위 이야마와의 차이는 더블 스코어 이상, 차이가 크다. 3위는 4740만 엔(약 5억 원)의 시바노 도라마루 9단이었다.
세계 상금랭킹 1위와 2위가 공교롭게도 최근 열린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만났다. 신진서(왼쪽)가 이야마 유타에 승리했다. 사진=한국기원
한국에서는 2020년 다승과 승률, 연승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한 신진서 9단이 총 10억 3800만원으로 첫 10억 원을 돌파했다. 올해 처음으로 상금왕에 오른 신진서는 LG배 우승상금 2억 원과 삼성화재배 준우승상금 1억 원 등 세계대회에서만 4억 1000만 원을 획득했다. 여기에 GS칼텍스배, 쏘팔 코사놀배 등 국내대회 3억 2000만 원, 이밖에 KB바둑리그와 중국 갑조리그 출전을 통해 3억 400만 원의 수입을 추가해 10억 고지를 넘어섰다.
일본 1위 이야마와 약 3억 차이가 나는데 신진서가 훨씬 많은 대회에서 우승하고도 이야마를 넘지 못한 것은 4500만 엔의 기성전, 3000만 엔의 명인전, 2800만 엔의 본인방전 우승상금 등 일본 내 기전의 상금이 세계대회 우승상금보다 많기 때문.
한편 신진서는 2001년의 이창호 9단, 2014년 이세돌 9단, 2018년과 2019년의 박정환 9단에 이어 국내에서 연간상금 10억 원을 돌파한 네 번째 프로기사가 됐으며, 역대 연간상금 최다 랭킹에서는 은퇴한 이세돌 9단의 14억 원(2014년), 박정환 9단 12억 900만 원(2018년)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한국과 일본의 상금랭킹을 살펴보면 공통으로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바로 여자 기사들의 랭킹 톱10 진입이다. 한국에서는 최정 9단의 상금 2억 원이 눈에 띈다. 여자기사의 톱10 진입은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후지사와 리나 4단 2700만 엔(약 2억 8000만 원), 또 우에노 아사미 4단도 1700만 엔(약 1억 8500만 원)을 기록하며 한 자릿수 랭킹에 진입했다.
다만 최정이 KB한국바둑리그 홍일점 출전 등 남녀기전을 오가며 액수를 쌓아올리는데 반해 후지사와와 우에노는 주로 여자기전 출전 성적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한국과 일본의 상금랭킹이 투명하게 공개되는데 반해 중국은 정확한 발표가 없어 수입을 일목요연하게 알 길이 없다. 중국은 국내기전보다 국제기전에 치중하는 형태여서 국내기전의 개수는 한국과 일본보다 적다. 대신 단발성 이벤트 대회가 많고 바둑리그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게 강점이다. 중국리그는 기사들의 층이 두터워 갑조 을조 병조 정조 4단계로 나뉘어 진행 중이며 여자바둑리그도 갑조리그, 을조리그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한국과 일본에 비해 스포츠적 요소가 더 가미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중국리그는 해외용병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때문에 그동안 한국 기사들이 재미를 많이 봤다. 용병의 경우 승리할 경우 대국료를 지급하는 게 관례인데 지난해 신진서나 박정환의 경우 판당 약 8만 위안(약 136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이세돌 9단의 경우 10만 위안(약 1650만 원)에 중국리그 팀과 계약한 적이 있었다.
중국 기사들의 경우 랭킹 1위 커제가 5만 위안(약 860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당연히 최고액이다. 이 때문에 다른 기사들의 불만도 크다고 한다. 한국은 바둑리그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있는데 실력이 못하지 않은 중국 기사들이 역차별을 받는 게 아니냐는 것. 다만 중국리그는 프로축구단처럼 구단과 기사가 연봉계약과 대국료 지급을 혼합하고 있는 형태여서 지면 한 푼도 받지 않는 한국 기사들과의 계약을 단순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상금랭킹을 발표하지 않는다. 다만 2019년 딱 한번 랭킹 1위 커제의 총 상금 액수가 620만 위안(약 10억 원)을 넘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중국바둑계는 규모면에서 한국과 일본에 못 미쳤지만 이젠 거의 대등하거나 한국과 일본을 넘어섰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만 한중일의 상금 규모가 줄어들거나 수십 년째 정체돼 있는 것은 문제다. 일본은 이미 90년대에 일인자가 10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고 한국도 이창호 9단이 10억 원 고지를 넘은 것이 2000년대 초반이다. 그러니까 약 20년 이상 상금이 제자리걸음이니 바둑계 상금은 물가대비 심각한 후퇴라고 봐야 할 것이다. 90년대 바둑 상금은 프로야구 최고 연봉자보다 많았지만 지금은 거꾸로 10분의 1 수준도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바둑 지망생들에게 실망을 주는 수치이며, 프로기사 전체의 생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에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의 공동대처가 시급하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