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전 정치 원로들과 식사하며 조언 구해…4월 재보선 결과 따라 신당과 국민의힘 입당 행보 갈릴 듯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떠나며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신현수 전 민정수석의 이른바 ‘인사 패싱’ 논란으로 어수선하던 2월 중순. 여권 내부에선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설이 고개를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곧 사의를 표명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사퇴 압박을 받을 때마다 윤 전 총장은 “임기를 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거취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던 3월 2일 윤석열 전 총장은 국민일보 인터뷰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다음 날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날을 세웠다. 이틀 간 윤 전 총장은 “직을 걸겠다” “중수청 법안은 졸속” “민주주의 후퇴” “헌법정신 파괴” 등과 같은 발언을 쏟아냈다.
이를 두고 사실상 윤석열 전 총장이 사퇴를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더 나아가 정치 출사표로 해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윤 전 총장과 친분이 있다는 한 국민의힘 의원은 3월 3일 오후 “윤 전 총장 발언은 누가 보더라도 ‘정치인의 메시지’”라면서 “사퇴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윤석열 전 총장은 3월 4일 “검찰에서 할 일은 여기까지”라면서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밝히며 사의를 표명했다. 윤 전 총장은 이 문구를 작성하기 위해 발표 직전까지 지인들과 머리를 맞댄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반응은 엇갈렸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전 총장은 오로지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에 충성하며 이를 공정과 정의로 포장해 왔다”고 평가절하했다. 반면,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검찰총장의 회한이 짐작된다”면서 “(윤 전 총장 사퇴는) 정권 폭주를 막을 마지막 브레이크가 없어지는 셈”이라고 했다.
윤석열 전 총장 사퇴는 여권의 중수청 설치 추진이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이어 중수청까지 설치될 경우 검찰 수사권이 완전히 박탈된다고 주장했다. 사퇴의 변에서도 “(중수청으로)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전 총장이 3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현관에서 총장직 사퇴 의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다른 시선으로 본다. 윤석열 전 총장이 정치적 선택을 했다는 데에 무게가 실린다. 명분은 중수청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사퇴할 ‘타이밍’을 골랐다는 얘기다. 국민일보 인터뷰, 반정부 성향이 가장 강한 대구 방문에 이어 사의 표명 발표까지 연일 언론의 주목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장면은 사실상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로 읽혔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 설명이다.
“윤석열 전 총장이 초조해진 것 같다. 최근 들어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지 않았느냐. 추미애 전 장관과 같은 싸움 파트너가 없어지니 덩달아 윤 전 총장 힘도 빠졌다. 만약 지지율이 예전 수준이었다면 굳이 사퇴할 이유가 없었다고 본다. 대선에 늦게 나올수록 매도 덜 맞고 검증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반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사퇴 표명으로 순식간에 정가 이슈의 중심에 섰다. 아마 지지율도 반등할 것이다.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판단된다.”
여의도 일각에선 윤석열 전 총장이 현재 국회에서 발의된 이른바 ‘윤석열 방지법’을 의식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윤석열 방지법은 검사 또는 법관이 선거에 출마하려면 1년 전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윤 전 총장이 내년 3월 대선에 출마하려면 늦어도 3월엔 물러나야 한다. 시기만 놓고 보면 공교롭게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윤석열 전 총장의 차기 대선 출마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이를 묻는 질문에 윤 전 총장은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해 대검 국감 때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퇴임하고 나서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 이번 사퇴 발표 때는 “어떤 위치에 있든 국민 보호에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치 도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윤석열 전 총장 주변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윤 전 총장과 오래 알고 지낸 한 원로 변호사는 “지난해 윤 전 총장에게 정치 도전 의사를 물어본 적이 있다. 윤 전 총장이 ‘어휴 안 된다. 그동안 했던 게 정치 때문인 것으로 비치면 어떻게 하느냐’며 손사래를 쳤다”면서 “윤 전 총장이 대선에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최근 윤석열 전 총장과 연락한 검찰 ‘특수통’ 출신 변호사는 “(윤 전 총장의) 생각이 바뀐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이 최근 일관되게 민주주의와 헌법 등을 얘기하고 있다. 말 그대로다. 윤 전 총장은 나라가 위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정치가 답이라면 피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전 총장 대선 도전을 기정사실로 본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까진 윤 전 총장이 정치를 안 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윤 전 총장이) 자전거에 올라탄 형국”이라면서 “윤 전 총장이 정치를 한다고 선언을 했을 때의 지지율을 봐야 하겠지만 어찌됐건 지금 (보수 야권의) 유일한 대안임엔 틀림이 없다”고 했다.
사퇴를 표명한 윤석열 전 총장이 3월 4일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실제 윤석열 전 총장은 올해 초부터 사퇴 발표 직전까지 자신과 인연이 있는 몇몇 정치권 인사들과 식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 윤 전 총장이 먼저 제안했다. 이 자리에선 검찰 관련 사안뿐 아니라 정치적 현안 등도 폭넓게 논의됐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윤 전 총장이 이른바 ‘식사 정치’를 통해 사퇴 여부, 차기 도전 등의 조언을 구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윤석열 전 총장으로부터 식사 자리 요청을 받았다는 한 정치권 인사는 “나는 일정이 안 맞아 못 만났다. 알고 봤더니 나뿐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에게도 제안이 갔고, 실제 만났다더라. 대부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원로들”이라면서 “윤 전 총장 말대로 중수청 때문에 그만두는 것이라면 법조계 선배들을 만나야지 왜 우리 같은 정치인에게 연락을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장외 우량주’였던 윤석열 전 총장의 상장이 임박해지자 정가는 들썩거리고 있다. 당장 4월 재보선에서 윤 전 총장 사퇴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지금 사퇴를 발표한 것은 재보선 정국을 앞두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노림수도 담겨 있다고 본다”면서 “윤 전 총장이 재보선에 관여하진 않겠지만 유권자 표심에 어떻게 작용할지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야권에선 반색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보수 후보 중 차기 주자 선호도가 가장 높은 윤석열 전 총장으로 인해 ‘반문’ 지지층이 결집하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의 키를 쥐고 있는 중도층과 무당층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선 “윤 전 총장이 장외에서 가끔 문 대통령을 비판해주기만 해도 표가 늘어날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어떤 정치적 구상을 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사퇴 후 바로 정치권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또한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도 낮게 점쳐진다. 우선 국민의힘 내부에서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을 주도한’ 윤 전 총장에 대한 비토 기류가 여전히 높다. 또 국민의힘으로 들어갈 경우 확장성 측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3지대 신당’ 시나리오가 힘을 얻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윤석열 전 총장을 돕고 있는 법조계 및 정치권 인사들은 사실상 창당 쪽으로 결심을 굳히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채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재보선을 관망하면서 3지대 세력을 최대한 규합하는 게 최우선 목표다. 서울시장 후보이기도 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과 손을 잡을 것이란 관측도 뒤를 잇는다. 정가에선 4월 신당 창당 소문까지 돌지만 윤 전 총장 측근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윤석열 전 총장 정치 행보의 1차 변수는 4월 재보선이다. 1야당인 국민의힘이 승리할 경우 윤 전 총장의 3지대 움직임도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를 둘러싼 윤 전 총장 측과 국민의힘 간에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펼쳐질 전망이다.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윤 전 총장은 집권 여당 공공의적이다. 여의도로 오자마자 대대적인 검증과 공격이 예상된다. 과거 대선에 도전했던 비정치인 주자들은 모두 이를 견디지 못했다”면서 “윤 전 총장이 1야당 우산 아래로 들어오는 게 차라리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패배하면 야권 정계개편이 불가피해진다. 이는 윤석열 전 총장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윤 전 총장이 정계개편 키를 쥘 수 있기 때문이다. 또 3지대 인사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쳐 서울시장에 나와 이긴다면, 윤 전 총장 측이 이를 ‘벤치마킹’할 것이란 관측도 확산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