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때 일인데다 공소시효 지나 법적 책임 한계…학폭 지목 연예인 결백 입증도 쉽지 않아 ‘평생 꼬리표’
#학폭, 왜 예체능에 집중되나
학폭은 2018년부터 불거졌던 ‘미투’ 혹은 ‘빚투’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과거 성폭력을 당했다는 미투와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는 빚투는 전방위적으로 터져 나왔다. 미투 의혹은 유력 정치인들마저 낙마시키며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학폭은 유독 스포츠스타나 연예인에 집중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왜일까.
학폭 논란에 휘말린 지수는 KBS 2TV 드라마 ‘달이 뜨는 강’에서 중도하차했다. ‘달이 뜨는 강’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지수. 사진=KBS 제공
결국 대중의 인기를 기반으로 존재하는 이들이 겪는 ‘유명세’라 볼 수 있다. 물론 선수들에게는 경기력, 배우에게는 연기력, 가수에게는 가창력 등이 중요하다. 여기에 긍정적 이미지가 겹치면 소위 ‘스타’로 발돋움한다.
이런 면에서 정치인이나 경제인의 경우 범 대중적 인기가 없어도 단단한 지지 기반을 갖추거나 재력이 뒷받침되면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스포츠스타나 연예인은 다르다. 제 아무리 빼어난 실력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대중이 등을 돌리면 설 자리가 없다.
학폭은 법적으로 다루기 힘든 영역이라는 측면에서도 미투, 빚투와 다르다. 이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법적인 처벌을 주장하기 어렵다. 결국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게 학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선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도 직접적인 보상보다는 “나를 괴롭힌 학폭 가해자가 TV를 통해 얼굴과 이름이 노출될 때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며 “그들이 활동을 중단하길 바란다”고 외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몇몇은 학폭 폭로의 진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활동이 중단됐다. 배우 박혜수의 경우 KBS 2TV 주연작 ‘디어엠’의 편성이 보류됐다. 걸그룹 에이프릴 멤버 나은이 출연한 CF도 비공개로 전환됐다. 두 사람 모두 학폭 가해자라는 폭로를 부인하고 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이미지 손상을 입은 뒤다.
배우 박혜수의 경우 KBS 2TV 주연작 ‘디어엠’의 편성이 보류됐다. 사진=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미투나 빚투의 경우, 성폭력 특례법 혹은 사기 등의 혐의로 상대방을 형사 고소하고 이로 인해 실제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학폭은 다르다. 대다수 학창 시절 벌어진 일이어서 폭행의 공소시효(5년)가 끝나 법적 책임을 묻기 힘들다. 게다가 미성년자 시절에 발생한 일이라 그들이 형사법 대상이 아닌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가해가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책임을 지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가해자로 지목받은 이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통해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이 역시 부담은 크다. 명예훼손은 크게 사실 적시와 허위사실 적시로 나뉜다. 당연히 연예인들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주장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과거의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듯, 가해자로 지목받은 이들이 가해 사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행보다.
한 변호사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 이익으로’라는 말이 있다. 명예훼손 소송에서는 학폭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이 피고인이 되는데, 가해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 입증하지 못하면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연예인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학폭 논란, 어떻게 마무리될까
학폭 폭로 중 명백히 사실로 드러난 경우는 손에 꼽는다. 이재영 이다영 자매 사례와 TV조선 ‘미스트롯2’에서 중도 하차한 진달래와 지수 정도가 이를 인정하며 활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유명인 입장에서 최선은 법의 판단을 통해 억울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법이 그들의 손을 들어주면 향후 활동을 재개하는 과정에서 큰 걸림돌은 없애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훼손된 이미지까지 돌이키긴 어렵다. 또한 반대 판결이 나온다면 현재 정서상 더 이상 대중 앞에 서는 활동은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법원에서 유리한 판결이 나와도 이미지를 원래대로 돌려놓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미 학폭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긍정적 이미지가 동반돼야 하는 CF 출연 등도 힘들다. 계속 유명인으로 살아간다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 생긴 셈”이라고 씁쓸해 했다.
이런 논란은 학폭에 대해 사회적 경종을 울렸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이 시작돼도 과거 자신의 행적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SNS가 보편화되면서 세상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공론화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반면 거짓 학폭 폭로에 대한 처벌 역시 강해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학폭 가해자라는 굴레가 씌어지는 순간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가 이를 악용해 또 다른 누군가를 음해하려 하는 행위 역시 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