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박철완 상무 배당액 올려 주주 설득 공세…삼촌 박찬구 회장 경영 성과 앞세워 방어
‘조카의 난’으로 불리는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지난 3월 9일과 10일 사이 조카 박철완 상무와 삼촌 박찬구 회장이 각각 패를 공개하며 주주 표심 잡기에 나섰다. 금호석유화학 본사가 위치한 서울 중구 시그니쳐타워. 사진=최준필 기자
#공세 수위 높이는 조카 박철완 상무
박철완 상무는 지난 1월 박찬구 회장과의 공동보유관계를 철회하며 경영권 분쟁을 예고했다. 이후 최근까지 주주명부열람가처분 신청과 홈페이지 개설, 의안상정가처분 신청 등으로 공세 수위를 높여왔다. 그는 이번 의결권 위임 권유 과정에서도 “보통주 1주당 1만 1000원, 우선주 1주당 1만 1050원을 배당할 것을 주주총회 당일 수정 동의로 제안할 예정”이라며 “회사(금호석유화학, 박찬구 회장 측)의 배당안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의결권을 위임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박철완 상무의 최종 목표는 이사회 장악을 통한 경영권 획득이다. 이를 위해 주주들에게 이번 주총을 기점으로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4명의 빈 자리를 본인 측근들로 채우는 제안을 했다. 현재 대표이사 회장이 맡고 있는 이사회 의장을 매년 사외이사 중에서 이사회 결의로 선임하고, 이사회 내에 내부거래위원회와 보상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도 내세웠다. 박철완 상무는 주총을 앞두고 주주들에게 이 제안들에 찬성하는 의결권을 위임해 달라고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박철완 상무는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가장 먼저 금호석유화학의 금호리조트 인수 결정을 백지화시킬 계획도 공개했다. 그는 금호리조트가 석유화학 업종과 연관성이 없고 부채비율이 400%에 이른다는 점 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박 상무는 “금호리조트 인수와 같은 부적절한 투자 의사결정, 현 경영진의 과거 배임 행위 등으로 인한 주주가치 리스크 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격 나선 삼촌 박찬구 회장
그동안 추이를 지켜봐 왔던 박찬구 회장은 최근 반격에 나섰다. 신사업 진출과 매출 확대 계획을 밝혔다. 배당을 더 올리고, 경영 투명성 강화에도 나선다고 했다. 박 회장도 주총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방안을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3월 9일 주총 안건을 발표하면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놨다. 핵심은 투자를 통한 매출 증대다. 2025년 매출 목표가 9조 원으로, 2020년 매출(4조 8000억 원)의 2배 가까이 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인수합병(M&A)을 통한 배터리, 바이오 등 미래 유망 사업에 진출하기로 했다.
배당 확대와 이사회 기능 강화는 주주친화 정책이다. 회사 대표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 선출하고 이사회 내부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내부거래, 보상 등 3개 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특히 박 회장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가 눈길을 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 심판 당시 파면 결정을 내린 이정미 변호사를 추천했다. 이 변호사는 사상 두 번째 여성 헌법재판관이자 헌법재판소장을 두 번 역임했다. 다른 사외이사로는 박순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최도성 가천대학교 경영대학교 석좌교수, 황이석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를, 사내이사로는 백종훈 금호석유화학 영업본부장 전무를 추천 후보 명단에 올렸다.
배당은 지난해 보통주 주당 1500원에서 올해 4200원으로 확대했다. 박찬구 회장 등 대주주는 일반 주주보다 적은 4000원을 배당받기로 했다. 우선주는 기존 1550원에서 4250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배당금 총액은 1158억 원이다. 작년 순이익(5826억 원)의 약 20% 수준이다.
#창과 방패 격돌, 승패는 주주가 결정한다
최근 경영권 갈등 판세는 박철완 상무는 공격을, 박찬구 회장은 수비를 하는 모양새다. 박 상무가 회사가 추진한 대규모 M&A인 금호리조트 인수에 제동을 걸고 금호피앤비화학 등 주요 계열사 상장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박 회장은 경영 성과와 전문성, 이에 따른 지속성장 약속을 방패 삼아 방어하는 식이다.
현재 금호석유화학 지분 구조상 한 쪽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 박철완 상무는 회사 개인 최대주주로, 경영권 분쟁을 본격화하면서 지분율을 기존 10%에서 최근 10.12%까지 늘렸다. 박찬구 회장의 지분은 6.69%지만 직계가족과 측근 임원 등의 지분을 더하면 14.87%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지분율 약 50%)들과 2대 주주인 국민연금(지분율 8.16%)이 주총에서 승자를 가려줄 것으로 보인다.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 사진=금호석유화학 제공
당초 회사가 주총 안건 상정을 거부하면서 배당안을 둘러싼 표대결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관측됐지만 최근 분위기가 반전됐다. 회사 결정에 반발해 자신의 배당안을 주총에 올리게 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낸 박철완 상무의 손을 법원이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송경근)는 지난 10일 박 상무가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낸 주총 의안 상정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1만 1000원’ 배당안을 이번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금호석유화학은 법원 판단에 따라 박 상무의 배당안을 주총에 올리기로 했다. 배당안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박 상무는 향후 이를 앞세워 주주 표심 잡기에 본격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사회 구성도 양측이 크게 대비된다. 박철완 상무는 1970년대생 인사들로 구성된 이사진으로 공격적인 진용을 갖췄다. 박찬구 회장은 법률적 전문성을 갖추고 여성 리더로서 상징성이 크거나 무게감 있는 인물들을 내세웠다. 이사 선임안은 양측 안건이 동시에 주총에 올라갔다. 젊은 인사들이 포진한 박 상무 측과 관록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박 회장 측 이사진을 두고 주주들이 선택하게 된다.
양측의 패가 모두 공개되면서 주총 직전까지 ‘표심 잡기’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철완 상무 측은 기존 전략대로 주총 전까지 금호석유화학 안팎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아직까지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은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구체화하면서 주주 설득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표대결에서 패하더라도 계속 경영권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인 만큼 지분도 꾸준히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찬구 회장은 이에 맞서 경영과 성과에 따른 이익 증대를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박 회장 측은 지난해 금호석유화학의 영업이익(7421억 원)이 2019년(3654억 원)에 비해 2배 넘게(103.1%) 늘었다는 점, 업종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 이익 창출에 대한 의지 등이 박 상무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회사 노조도 박찬구 회장 편에 섰다. 10일 금호석유화학 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박철완 상무에 대해 “사리사욕을 위한 분쟁으로 회사를 흔들고 있다”며 “회사를 위기로 몰아가는 박 상무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박 상무의 배당안에 대해 회사에 대한 어떠한 이해도 배려도 없으며 단순히 표심을 잡기 위한 수단이라고 규정했고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들도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있는 인물들로 회사를 위한 추천인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양측 다툼과 별개로 증권가에서는 이번 경영권 분쟁이 주주가치가 높아질 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주가는 박 상무의 지난 1월 ‘선전포고’ 이후 하락세지만 박 상무의 파격 제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배당률이 높아질 수 있고, 반대의 경우라도 회사 측이 과거보다는 강도 높은 주주 친화 정책을 제시하게 된 만큼 주주 입장에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