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상고 신청 사유에 맞지 않지만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사건임은 인정
11일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모임 대표가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문상현 기자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3월 11일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확정 받은 박 씨의 비상상고심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앞서 확정된 판결에 법 위반이 있다고 판단되면 검찰총장은 비상상고를 통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
재판부는 원판결 법원이 박 씨의 특수감금 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해 무죄 판결을 내린 근거가 내무부훈령 410호가 아닌 ‘정당행위’를 다루는 형법 20조나 상급심 재판의 기속력에 관한 법원조직법 8조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비상상고의 사유로 정한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가 밝힌 기각사유다. 앞서 검찰은 2018년 비상상고 신청의 이유로 현재는 위헌이 된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들었다.
일부 사건의 경우에는 파기된 판결이라는 점에서 비상상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도 했다. 박 씨의 주간감금 혐의가 과거 항소심에 무죄가 선고된 뒤, 대법원에 의해 파기된 바 있는 까닭이다.
재판부는 “이번 비상상고는 ‘비상상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재판에 대해 제기된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검찰은 박 씨의 주간감금 행위를 무죄로 판단한 2심 판결에 대해서 비상상고를 했는데, 해당 판결은 상고심에서 파기돼 효력을 상실했다. 상급심의 파기판결에 의해 효력을 상실한 재판의 법령위반 여부를 다시 심사하는 것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법령의 해석·적용의 통일을 도모하려는 비상상고 제도의 주된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비상상고심 결과와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회복’은 별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된 사건”이라며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은 아무런 힘도 없이 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하더라도 저항하지 못하고 자기의 불행이 타인의 기분이나 감정에 맡겨진 삶을 살아왔다”며 “피해자들에게 특별한 권리를 창설해 줄 것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으로 이들의 당연한 권리를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 활동으로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되어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준영 변호사 “형제복지원 비상상고 기각 결정은 아쉽지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문상현 기자
2020년 10월 공판에서 피해자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준영 변호사는 이날 “아쉽지만 법원의 판결에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기각 사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오늘 대법원은 국가의 조직적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이는 이번 사건의 소멸시효가 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대법원의 판단에 담긴 의미가 피해자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 도움이 됐으면 됐지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2020년 통과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에 따라 12월에 출범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의 1호 사건으로 재조사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위원으로 추천한 정진경 변호사가 과거 교수 시절 성추행 의혹으로 자진사퇴하면서 출범하고 3달이 넘도록 진상 조사도 착수하지 못 하고 있는 상태다. 국회는 2월 26일 이순동 전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정 변호사 후임으로 선출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