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사장’ 1인 9땅 알짜배기 싹쓸이…지역 세력과 LH 정보력 결합 의심 정황도
수도권 3기 신도시 등에서 토지를 매입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선릉로 LH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공인중개사 등 신도시 투기 의혹에 분노하는 시민들이라고만 밝혔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LH 직원 1만 4000명을 대상으로 한 1차 정부 합동 조사가 끝났다. 1차 조사 결과에서 발표된 투기 의심자는 20명이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지난 2일 투기 의혹을 제기했던 13명에서 7명이 추가 적발된 것이다. 토지 거래는 주로 광명·시흥 지구에 집중되었으며, 다른 3기 신도시 지구에서도 투기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 20명은 모두 LH 소속으로 2급이 3명, 3급이 9명, 4급 이하 8명이었다.
추가 7명에 대한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초 의혹이 제기된 13명은 소속까지 어느 정도 드러난 상태다. 13명 가운데 8명은 과거 과천사업단이나 과천의왕사업본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고 4명은 전북지역본부, 나머지 한 명은 홍보부 소속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가운데 다수가 주거복지사업처 혹은 토지보상 업무를 담당했거나 하고 있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땅 투기에 달려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합동조사단은 적발된 20명을 1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에 수사 의뢰했다. 13명은 이미 경찰에 입건된 상태다. 국수본은 LH 직원 20명의 금융거래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1인 1땅부터 1인 9땅까지
4일 오후 LH 직원 투기 의혹이 제기된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재활용사업장 인근 토지. 해당 토지에는 관리가 필요 없는 묘목들이 심어져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문제는 1차 조사의 범위가 국토부와 LH 직원 본인으로만 한정돼 실제 투기 세력을 잡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두 필지 이상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3월 2일 참여연대와 민변이 투기 의혹을 제기한 지역은 시흥시 과림동과 무지내동 일대인데 투기 의혹을 받는 13명 가운데 두 필지 이상 매입한 직원이 4명이었다.
실제로 LH 투기 관련 조사가 확대되면서 과림동과 무지내동 말고도 정왕동과 옥길동, 노온사동, 매화동, 가학동 등 곳곳에서 LH 직원들의 이름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땅을 가진 이는 투기 연루자 13명 가운데 1명인 강 아무개 씨다. 강 씨는 과림동과 무지내동 외에도 여러 개의 땅을 매입한 이른바 알짜배기 투자자였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3월 9일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LH 직원이면서 ‘강 사장’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2017년 1월 시흥시 정왕동 118-2 도로와 1100㎡, 850㎡ 규모의 밭을 경매로 낙찰받았다”고 주장했다.
취재결과 강 씨의 땅은 정왕동 외에 옥길동과 매화동에서도 발견됐다. 옥길동의 경우 단독 매입이었고 매화동은 지인 3명과 함께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매화동은 신도시 외곽지역에 개발제한구역으로 소위 말하는 ‘잘 팔리는 땅’이 아니었음에도 강 씨의 선택을 받았는데 이는 신도시가 들어선다면 인근 지역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매화동의 위치 특성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강 씨가 노른자 땅과 그 주변 땅까지 모두 사들여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으려 한 것이 아니냐고 보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강 씨는 최소 9개의 필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말 20명이 끝? 곳곳에서 LH 직원 이름 발견
LH 직원들의 광명 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해당 지역의 토지 거래가 정부 부동산 대책 발표 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정보 유출이 의심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이 밖에도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땅 매입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일요신문이 △2017~2019년 △경기도 광명·시흥 지역 △공유자가 2인 이상인 필지 △대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농지(전답) 매입 △LH 직원과 이름·근무지·주소지 동일 등 조건의 사람을 찾은 결과 여러 명이 추가로 발견됐다. 다만 이들이 1차 정부 합동조사에서 추가로 밝혀진 직원 7명에 포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전북에 사는 A 씨는 2019년 12월 광명시 노온사동에 4298㎡ 크기의 임야를 배우자와 함께 매입했다. 노온사동 일대 산과 밭에는 A 씨의 지인과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의 땅이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A 씨는 LH 전북지역본부 소속 직원의 이름과 같았다.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으나 성이 매우 특이해 이름과 주소지까지 들어맞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역시 전북지역본부 직원으로 추정되는 B 씨도 2019년 12월 노온사동 5023㎡를 쪼개어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땅의 지분 공유자는 총 20여 명이다. 개인이 아닌 주식회사 형태의 법인을 끼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기획부동산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경기지역본부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보이는 C 씨도 가학동 일대 땅을 지인 3명과 함께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모임 만들어 쇼핑하듯 매입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투기 의혹을 받는 LH 전‧현직 직원과 이들의 가족 그리고 지인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쇼핑하듯 땅을 골라 산 정황이 보인다는 점이다. 친척이나 형제자매, 지인 등 차명으로 땅을 사들이면 실명 대조의 방식으로는 투기 여부를 알 수 없다. 또 LH 직원 혹은 공무원에게 얻은 내부 정보로 이득을 본 이들의 지인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수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일요신문이 부동산등기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 지역 세력과 LH의 정보력이 만난 케이스도 보였다. LH 경기지역본부 소속 직원으로 추정되는 D 씨와 함께 땅을 산 E 씨는 취재 결과 광명시 일대 땅부자로 확인됐다. E 씨는 2015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광명시 인근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사들여 옹기종기 모여 있는 땅의 크기만 3000㎡에 달한다.
특이한 점은 지분 공유자 사이의 관계가 가족이 아님에도 여러 건의 거래에 함께했다는 것이다. 4~5개 필지 등기부에 적힌 지분 공유자 구성원은 E 씨를 포함해 모두 같았다. 매번 같은 멤버가 모여 여러 개의 땅을 함께 산 셈이다. 이른바 투기 모임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던 E 씨가 2020년 모임을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해 3000㎡가가 넘는 토지를 쪼개 구매하는데, 이때 D 씨가 새로운 지분 공유자로 등장한다. 이를 두고 지역 세력과 정보력을 가진 LH 직원이 만나 투기 모임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람이 아니라 거래 형태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20년 경력의 공인중개사 손 아무개 씨는 “실명으로 땅을 거래한 LH 직원들은 오히려 순진하다고 할 수 있다. 땅 좀 사 봤다는 아주머니들은 위험한 땅을 살 때는 가족 이름으로도 안 산다. 가족관계증명서만 떼면 바로 잡힌다는 걸 안다. 최소한 성이 다른 조카나 정말 친한 지인 명의를 들고 온다. LH 투기 직원 가운데 최소한 셋 중 한 명은 차명으로 매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수본 역시 이번 조사 결과가 LH 직원 본인의 명의로만 이뤄진 거래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가족·지인 명의의 거래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합동조사단은 1차 조사에 이어 인천·경기 및 기초 지자체의 개별 업무담당자, 지방 공기업 전 직원 9000명을 대상으로 2차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