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 5년 지나 두각, 두 달 새 랭킹 14계단 상승 ‘대세남’…“초일류 욕심 없어요, 조급하면 다치니까”
이창석 7단의 올해 전적은 17승 6패. 그중에는 10연승도 끼어있다. 사진=월간바둑 제공
그런데 바둑계에도 역주행 스토리가 존재한다. 요즘 핫한 이창석 7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15년 늦은 나이인 스물에 입단한 이창석은 그동안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입단 후 5년이 지난 지난해 11월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년 전 40위에 머물던 랭킹은 11위까지 치솟았고 GS칼텍스배, 쏘팔코사놀, 명인전, 용성전 예선을 차례로 통과했다. 연말연시에 줄지어 열린 이 4개 기전의 예선을 모두 통과한 기사는 이창석이 유일하다.
올해 전적은 17승 6패. 그중에는 10연승도 끼어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대세남’이고 동료들은 이런 그를 반농담조로 ‘바둑의 신’이라 부른다. 지난 10일 있었던 KB바둑리그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소속팀 포스코케미칼을 대표해 나온 이창석 7단을 현장에서 만나봤다.
“바둑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배웠습니다. 늦게 접한 셈이죠. 두 살 위 형이 먼저 바둑교실에 다녔는데 나중엔 저만 배우게 됐어요. 장수영 바둑도장으로 옮긴 건 4학년 2학기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동네 바둑교실에서 최강이어서 어디 더 센 상대는 없나 찾던 중이었고, 그러다가 바둑도장을 발견한 것이었는데 정말 충격이었어요. 제 바둑은 바둑도 아니었죠. 이런 세상이 있나 했으니까. 저보다 두 살 어린 상대에게 2점 깔고 시작했어요(웃음).”
늦게 배운 만큼 입단도 남들보다 꽤 늦었다. 2015년 나이 스물에 겨우 프로가 됐다. 프로바둑계에선 ‘입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이 있는데 조훈현 9세, 이창호 11세, 이세돌 12세 등 전설적인 기사들은 모두 10대 초반에 프로가 됐다. 늦어도 15세 전에는 프로가 돼야 대성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바둑계다.
“저는 제가 생각해봐도 좀 거북이 스타일인 것 같아요. 바둑도 늦게 배웠고 도장도 늦게 들어갔고 그래서 입단도 늦었고….”
그렇다고 지나간 시간들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이창석은 처음 다녔던 바둑교실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한다. 재미있는 바둑을 마음껏 둘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기는 재미를 알았다. 늦게 들어간 바둑도장도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실력은 남보다 못했지만 하나하나 따라잡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연구생 이후 입단하기까지의 과정은 고통스러웠다고 표현한다.
“연구생이 됐으니까 꼭 입단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입단은 늦어지고. 항상 불안하고 초조해서 사는 게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스무 살에 겨우 입단하면서 속으로 생각한 것이 있었어요. 좋아하는 바둑을 천천히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자.”
이창석 7단은 초일류 욕심은 없지만 세계대회 성적은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월간바둑 제공
“과거에는 이창호 9단이나 이세돌 9단 같은 일인자들의 수법이 절대적이었어요. 하지만 검증할 수는 없었죠. 그런데 인공지능은 확실한 100점짜리 답을 줘요. 제겐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른 감각이 있다고 느꼈는데 그래서 사실 고민이 많았습니다. 속으론 주눅 들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그건 이미 의식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인공지능에 확인해보니 제 감각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자신감을 갖게 됐죠. 그렇다고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루 종일 인공지능을 끼고 산 건 아니에요. 하루 한 시간이나 될까. 오히려 기보 연구를 철저히 해요. 먼저 제 생각대로 분석해보고 동료 기사들에게도 많이 물어봐요. 그런 다음 맨 나중에 인공지능으로 확인하는 거죠. 솔직히 인공지능으로 인해 바둑이 갖고 있던 낭만은 많이 퇴색했다고 봐요. 하지만 실력향상이 목적이라면 과거보다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게 됐죠.”
현재 이창석의 국내랭킹은 11위다. 최근 두 달 사이에 14계단 상승했다. 20위권 기사가 단기간에 이처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적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이 페이스라면 초일류의 척도라는 5위권 이내 진입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또 세계대회 우승도.
“성적이나 초일류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조급하면 다치니까. 즐거우면서 랭킹이 올라가면 좋겠지만 어렵겠죠. 신진서, 박정환, 신민준, 변상일 등 한국 1~4위는 이젠 중국 최상위권을 넘어섰다고 생각해요. 특히 신진서 9단은 한국과 중국을 통틀어 압도적으로 강해요. 차원이 다릅니다. 커제 9단도 내리막이라고는 하나 큰 승부에 강하고 승부감각이 좋죠. 저는 아직 멀었어요. 하지만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내보고자 하는 꿈은 있어요.”
이창석의 화려한 돌출은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바둑TV 해설의 김영삼 9단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이창석과 최근 석 달 사이의 이창석은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다. 한 꺼풀도 아니고 세 꺼풀쯤 벗은 것 같다”고 감탄하면서 “실력도 크게 상승했고 계속 이기면서 자신감도 충만하고 대국수가 많아서 감도 계속 유지할 수 있어 날개를 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역주행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창석 7단을 스승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 7단이 가장 존경한다는 장수영 9단에게 연락해봤다.
“솔직히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우리가 모르는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겁니다. 바둑에서 늦은 나이에 두각을 나타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늦게 도장에 입문했고 늦은 만큼 처음엔 실력도 신통치 못했습니다. 바둑도장은 실력으로 겨루는 곳이고,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에게 자꾸 지면 그 나이 때는 자존심이 상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창석 7단은 참 긍정적이었어요. 항상 웃는 얼굴에 주변에 친구들도 많고. 그렇지만 가만히 보면 나중에 하나씩 하나씩 제치더니 결국엔 자기 자리를 찾더라고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부모님도 이 7단과 똑같았어요. 단정한 모습과 품행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7단도 집에서 교육을 참 잘 받은 것 같다, 그렇게 느낀 기억이 있습니다.”
이창석 7단의 역주행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팬들은 한국바둑의 새로운 스타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생겼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