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경량화’ 위한 대규모 투자 필수…독립 꿈꾸는 정일선 사장 경영 능력 입증 기회
현대비앤지스틸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이기는 하지만 추후 계열 분리가 예상된다. 현대제철이 41.1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나 정일선 사장과 정문선 부사장, 정대선 HN 사장 등이 5.81%의 지분을 갖고 있다. 정일선·문선·대선 삼형제는 고 정몽우 현대알미늄 회장의 아들들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는 사촌지간이다. 막내 정대선 사장은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지분구조상 현대제철을 포함한 현대차그룹이 지원하기는 어렵고, 현대비앤지스틸 자체적으로도 연 이익이 300억 원대에 불과해 대규모 추가 투자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때문에 본계약 체결이 난항을 빚고 있다는 설도 있지만 늦어도 4월까지는 체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비교적 강성으로 분류되는 LG하우시스 노동조합의 반발 때문에 최종 계약이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때 주목받는 신사업이었으나…
LG하우시스의 자동차 소재 사업은 언더커버와 시트백, 루프렉, 범퍼빔 등 자동차 경량화 부품과 자동차원단(인조가죽) 생산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했던 것이 차량 경량화다. LG하우시스는 자동차 경량화 소재인 LFT(장섬유강화열가소성복합소재)와 CFT(연속섬유강화열가소성복합소재)에 대해 기술력을 갖고 있다.
LG하우시스가 자동차 소재에 전폭적으로 뛰어든 것은 2014년부터다. 회사 측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2014~2017년 자동차 소재 부품과 관련한 증설에만 1124억 원을 집행했고, 2017년 슬로바키아 업체 씨투아이(c2i)를 인수하는 데 약 500억 원을 썼다. 2005년 설립된 c2i는 탄소섬유 분야의 기술력을 보유한 업체다. 탄소섬유는 강철보다 단단하지만 무게는 훨씬 덜 나가 자동차 연비를 향상시키는 데 있어 필수 요소다.
2014년 미국 조지아주 어데어스빌에서 열린 LG하우시스 자동차 원단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회사 관계자 등이 첫 삽을 뜨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LG그룹 한 관계자는 “LG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전기차 시대를 준비해왔는데, LG하우시스의 차량 경량화 사업 추진도 같은 방침 아래 진행됐던 사안”이라며 “2017년만 해도 매해 1000억 원 이상 투자를 준비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LG하우시스의 자동차 소재 사업은 벽에 부딪혔다. 첫 위기는 중국의 사드 보복이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판매량이 대폭 줄어들면서 2017년 3분기부터 적자 전환했다. 2017년은 그래도 상반기에 벌어둔 것이 있어 자동차 소재 및 산업용필름 사업 부문은 120억 원의 흑자를 냈지만 2018년과 2019년, 2020년은 각각 90억 원, 220억 원, 45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사드 보복으로 시작해 과열 경쟁, 코로나19 사태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LG하우시스 입장에서 짐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LG하우시스는 지난해 초부터 자동차 소재 사업 부문 매각을 검토했다. 이 때문에 사내 분위기는 더 얼어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마침 LG하우시스는 LG그룹에서 계열분리 되는 구본준 회장의 LX그룹에 포함됐다. 매각이 공식화된 지난해 말에는 LX그룹으로 가는지, 현대차그룹으로 가는지를 두고 뒤숭숭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LG하우시스 한 직원은 “한때는 그룹에서 관심 갖는 신성장사업이라고 하더니, 어느 순간 어디로 넘어갈지도 모르는 신세가 되면서 많은 인력이 이탈했다”고 설명했다.
#자금력 충분치 않은데 자칫 적자 우려도
문제는 현대비앤지스틸이 자동차 소재 사업을 키울 수 있을지 여부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대비앤지스틸은 박한 이익률이기는 하지만 현대차, 기아차를 캡티브마켓(계열사의 내부 시장)으로 두고 있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회사”라면서 “하지만 차소재 사업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그만큼 공격적인 경쟁사들이 많기 때문에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현대비앤지스틸이 1년 가까이 인수 여부를 저울질하다가 끝내 인수하기로 결정한 만큼, 기본적으로 사업 추진에 자신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정일선 사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올해는 미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친환경 전기차와 수소차용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인수와 관련해, 현대비앤지스틸 한 관계자는 “현재 LG하우시스의 자동차 소재 부문 인수를 위한 내부 검토를 진행 중에 있다”면서 “비밀유지약정(NDA) 때문에 구체적인 사안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일선 사장 개인적으로도 이번 인수전은 반드시 성공 스토리로 만들어야 한다. 정의선 회장과 동갑인 그는 정의선 회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던 2005년 나란히 사장 승진에 성공했다. 불행한 삶을 살다 떠난 동생 정몽우 회장의 자녀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정몽구 회장의 의중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정일선 사장은 16년째 부회장 승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정의선 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정일선 사장의 자리는 위태로운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지만 일단 올해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에서 다시 한번 사내이사로 추천됐다. 그는 2006년부터 계속 현대비앤지스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정일선 사장과 동생들이 자립하려면 현대비앤지스틸을 인수할 정도의 자금과 함께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현대비앤지스틸은 현재 시가총액이 2800억 원대로, 30%의 지분을 확보한다고 해도 840억 원이 필요하다. 재계에서는 정일선 사장과 형제들이 이 정도의 자금 조달력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현대비앤지스틸이 품을 만한 회사냐는 점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비앤지스틸을 인수할 수 있는 것과 별개로 현대비앤지스틸이 인수할 만한 기업이냐는 점도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차량 경량화 사업을 성공시켜야만 그만한 가치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