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정서에 한국만의 독특한 소재 담아…‘김씨네 편의점’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등 인기
캐나다의 인기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은 2016년 CBC를 통해 첫 방송된 후 시즌5까지 제작된 인기 시리즈다. 토론토를 배경으로 한국인 이민 가족이 편의점을 운영하며 정착해가는 과정을 보여준 이 드라마는 한국계 캐나다 극작가 인스 최의 연극 ‘김씨네 편의점’이 원작이다. 사진=‘김씨네 편의점’ 공식 홈페이지 캡처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뿌리내려
캐나다의 인기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은 2016년 CBC를 통해 첫 방송된 후 시즌5까지 제작된 인기 시리즈다. 토론토를 배경으로 한국인 이민 가족이 편의점을 운영하며 정착해가는 과정을 보여준 이 드라마는 한국계 캐나다 극작가 인스 최의 연극 ‘김씨네 편의점’이 원작이다. 아빠 역의 폴 선형 리, 엄마 역의 진 윤 등도 모두 한국에 뿌리를 둔 배우들이다. 대전에서 태어났지만 캐나다로 이민 간 뒤 2019년 4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폴 선형 리는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작가는 이민 생활을 먼저 경험한 이민자 교포 2세”라며 “직접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굉장히 현실성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덕분에 출연진이 사회적 장벽이나 어려운 편견에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제니 한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2018년 첫 시즌을 공개한 후 어느덧 세 번째 시즌에 접어드는데 이 영화의 인기가 높아지자 세 번째 시즌은 한국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다. 제니 한 작가는 1월 국내 언론과 나눈 간담회에서 “한국이 가진 스토리텔링은 특별하다. 한국 드라마는 다른 콘텐츠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이 있다”며 “비주얼적 완성뿐 아니라 한국 드라마의 ‘무언가’ 때문에 함께 울고 웃고 사랑에 빠진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이삭 감독은 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에서 출발해 ‘미나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과거 인천 송도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는 정 감독은 “사무실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면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할머니들이 보였다”며 “할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회상했다. 결국 이런 정 감독의 기억이 ‘미나리’ 속 할머니 캐릭터를 구축하는 씨앗이 됐다. 또한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자라는 성질을 가진 미나리라는 식물을 이 영화의 주요 모티브로 삼은 것 또한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자신의 가족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정 감독은 설명했다.
2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제니 한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사진=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홍보 스틸 컷
#왜 이 시점에 ‘한국’일까
그들이 단순히 ‘한국계’ 크리에이터여서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주목하는 건 아니다. 그들이 ‘한국’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그 안에서 다양한 주제의식으로 이끌어낸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는 최근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의 활약과 위상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기생충’은 2019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등 4관왕에 올랐다. 당시 지구촌 전체의 문제로 부각되던 계급 갈등을 계단으로 상징화하고 ‘반지하’(Semi-basement)라는 이미지에 덧댄 건 글로벌 관객에 충격과 재미를 줬다.
K-팝의 강세 또한 한국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꽁꽁 얼어붙는 상황 속에서도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는 승승장구했다. 동양의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아티스트들이 팝시장을 호령한다는 것은 생경하면서도 신비로운 장면이었을 법하다. 또한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킹덤’ 역시 조선을 배경으로 삼은 ‘K-좀비’ 신드롬을 몰고 왔다.
한 영화 관계자는 “따지고 보면 한국은 독특한 나라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고, 매번 국제면을 장식하는 북한이라는 나라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일례로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된 뒤 엄청난 인기를 누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남북 분단 상황을 그리며 남한의 여성, 북한의 남성이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설정은 외국인들의 시선으로 볼 때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며 “게다가 이 작은 나라가 문화적으로는 엄청난 성과를 보이고 있으니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해외 제작자 입장에서는 한국의 이야기와 이를 그릴 수 있는 한국계 크리에이터들에게 관심이 가게 된다”고 분석했다.
윤여정이 최근까지 캐나다에서 촬영한 동영상 플랫폼 애플TV플러스의 드라마 ‘파친코’ 역시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윤여정 외에 배우 이민호 등이 참여하는 이 드라마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일본과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 이민자의 삶을 그린다. 이런 이야기들은 한국을 넘어 동양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각을 바꾸고 있다. 인종과 언어는 다르지만 그들이 가진 보편적 정서는 어디서든 통한다는 것을 입증하며 동양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깨고 있는 셈이다.
정이삭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 6개 후문 후보에 오른 뒤 미국 매체 ‘데드라인’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점”이고 “‘미나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발걸음이 되길 빈다”며 아시아를 바라보는 폭력적인 시선이 걷히길 기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