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부자 다주택 수두룩, 있어도 ‘줍줍’ 기막힌 매도 타이밍…‘공무원 특별공급’ 투기 수단 악용 지적도
LH 직원들의 광명 시흥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제기된 뒤 관련 의혹을 규명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16일 오후 시흥시 과림동에 규탄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세종시는 18일 연서면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내 부동산 투기 여부를 자체 조사한 결과, 자진 신고한 공무원과 이들 가족을 제외한 다른 공무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특별조사단 단장을 맡은 류임철 세종시 행정부시장은 “산업단지 내 토지와 건물의 거래현황을 대조하여 조사한 결과 자진신고를 제외하고 시청 공무원 및 산단 업무 관련자의 직계존비속이 거래한 사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투기 의심자가 없다는 조사 결과를 시 안팎에서도 제대로 믿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2017년 6월 29일부터 2018년 8월 31일까지 세종시 연서면 스마트 국가산업단지를 매입한 시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정했다. 그러나 세종시 곳곳에서 10년 가까이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사 대상과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물려받은 땅”
실제로 일요신문이 2018~2020년의 공직자 재산 공개자료를 살펴본 결과, 연서면을 포함해 세종시 전역에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집과 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이들의 행위를 모두 투기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세종시에 부동산을 소유한 공직자와 시의원의 재산 내역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지역 내 유지로, 개발 인근 지역 땅뿐만 아니라 곳곳에 땅을 갖고 있던 ‘땅부자’이거나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셈법으로 재산을 증식해 온 ‘전략가’였다는 점이다.
시의원의 경우 땅부자가 다수였다. 김원식 더불어민주당 시의원은 세종시 연서면과 연동면, 조치원읍 일대에 1만 874㎡의 토지를 가지고 있으며 김 의원의 배우자는 2014년부터 조치원읍에 1195㎡의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서면 일대에 토지 2만 1703㎡을 가지고 있는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SNS를 통해 물려받은 재산임을 밝혔다. 홍 의원은 “부동산들은 대부분 1959~1974년 사이에 상속·증여받은 것”이라며 “형으로부터 1998년도에 2분의 1 지분을 증여받고, 2011년에 형의 사업자금을 지원해주고 전부 증여 받았다”고 밝혔다.
김선무 전 시의원도 연서면 와촌리 땅을 가지고 있다. 김 전 의원은 2010년 11월 와촌리 땅 1372㎡을 단독 매입해 현재까지 보유 중이다. 이 밖에도 연서면 기통리와, 전의면, 조치원읍 등에 7865㎡ 크기의 필지를 더 가진 것으로 신고됐다.
한편 세종시는 2018년 8월 연서면 와촌리, 국촌리, 신대리, 부동리 일대를 스마트국가산단 대상 부지로 선정했다. 개발이 완성되면 인근 땅값은 더 많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살지도 않는 아파트를 왜 샀을까?
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 498번지 밀마루전망대에서 바라 본 세종시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고위 공직자의 경우 땅보다는 집을 다수 가지고 있었다. 2010년 정부가 세종청사 이전 당시 공무원들의 이주를 돕기 위해 세종시 아파트를 우선분양 하는 ‘공무원 특별공급’ 정책을 시행한 까닭이다. 문제는 이들이 실거주와는 무관하게 아파트를 사들인 정황이 보인다는 것이다.
2020년 기준 관보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위원회 소속 공무원 A 씨는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반포리체아파트(85㎡)와 세종시 한솔동 첫마을아파트(115㎡)를 갖고 있다. 배우자 역시 반포동의 같은 아파트를 갖고 있다. 그러나 A 씨 부부는 반포동 아파트는 8억 원, 세종시 아파트는 1억 8000만 원에 임대하고 자신들은 보증금 2억 7000만 원에 반포동 소재의 또 다른 아파트를 임차해 살고 있다.
국토부 고위 공무원 B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세종시 나성동 세종SR파크센텀 도시형 생활주택(20㎡)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만수리 오송마을 휴먼시아 2단지(85㎡)를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청주시 아파트는 보증금 2억 2000만 원에 임대했다. B 씨는 배우자의 이름으로 보증금 3억 5000만 원에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아파트를 임차했다고 신고했다.
국토부 산하 공기업 임직원 C 씨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효자촌 아파트(94㎡)와 세종시 새롬동 새뜸마을 1단지(95㎡)를 재산 신고했는데, 세종시 아파트는 2020년 당시 보증금 2억 1000만 원에 임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사이 세종시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0년 12월 전국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2020년 세종시 집값은 ‘행정수도 이전론’에 힘입어 37.5% 상승해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세종시의 ‘공무원 특별공급’ 정책이 일부 고위공직자의 ‘투기’ 역할로 쓰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정부는 대상자 자격을 따로 두지 않고 기존 보유 주택 수나 처분 여부 등도 따지지 않았다.
오른 집값으로 이득을 본 사례도 있다. 국가보훈처 소속 고위 공무원 D 씨의 경우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는 세종시 일대 땅을 구입해 단독주택을 지었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D 씨는 2017년 9월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 일대 땅 757㎡을 1억 6000만 원에 매입해 단독주택을 지었다. 이후 아내와 거주를 하다가 2년 뒤인 2020년 7월에 단독주택은 2억 5000만 원, 토지는 2억 3000만 원에 매도했다. 즉, 산업단지 조성 발표 전에 토지를 구입해 발표 2년 만에 되팔아 시세차익을 본 셈이다.
이에 대해 D 씨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실거주를 위해 구입한 토지이며 집을 짓고 살다가 다주택자 처분 지시가 내려와 따른 것”이라며 “매입 당시 산단 지정이 될 줄 몰랐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