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마 4두에 대상경주 3회 우승 등 ‘초라’…숱한 명마 배출 메니피와 달리 ‘질보다 양’ 승부
한센은 지난해 씨수말 랭킹 1위에 올랐지만 내용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물론 다른 일반 씨수말과 비교하면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도입 당시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한센은 당시 세계 최고의 경주마였고, 혈통적으로도 기대치가 아주 높았다. 2세마 시절 북미 챔피언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경주마였다. 부마 태핏은 북미 최고의 교배료를 기록할 정도로 우수한 혈통이다. 국내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큰 뉴스였고 그만큼 기대가 컸다. 당시 국내에서 당대 최고의 씨수말로 평가받고 있는 메니피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적은 너무 실망스럽다. 메니피와 ‘비교 불가’일 정도로 참담한 수준이다.
2017년부터 자마들이 데뷔, 지금까지 모두 207두가 경주마로 활약했거나 활약 중이고, 1군에 올라간 마필은 단 4두(1.9%)에 불과했다. 신의명령, 닥터카슨, 영희시대, 런닝스톰 등이고 포입마 다이나믹스타를 포함시켜도 5두에 그친다. 국내에 도입될 당시에 상상도 못했던 결과다. 2군까지 진출한 마필도 10두(4.8%)에 그쳤고, 3군에도 29두(14%)만이 올라가 있다. 통상적으로 3군까지는 올라가야 마주들의 표현으로는 ‘제 밥벌이 이상을 하는’ 성공한 자마로 평가받는다. 한센의 경우 총 207두 중 43두(21%)만이 3군 이상에 올라갔다.
반면 2012년부터 6년 연속 리딩사이어에 오른 메니피는 476두가 활약했거나 활약 중이다. 1군에 모두 54두(11.3%)의 자마를 진출시켰다. 2군에는 82두(17.2%), 3군에는 80두(16.8%)가 진출했다. 모두 216두가 3군 이상 진출하며 45.3%의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 전 부문에서 메니피가 더블스코어 차이로 앞선다고 볼 수 있는 수치다.
한센은 2020년 리딩사이어를 차지했다. 씨수말 순위는 자마들의 총상금으로 결정된다. 한마디로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 하지만 자마들의 몸값을 올리려면 질 또한 중요한데 한센의 경우는 내용면에선 1위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울 정도다. 출전 횟수당 평균상금에서 한센이 519만 원, 메니피가 658만 원으로 메니피가 앞섰다. 출전 두당 평균상금에서도 한센이 1921만 원인 반면, 메니피는 2420만 원이었다.
메니피는 파워블레이드(사진) 등 숱한 명마를 배출했지만, 한센은 아직 대형마를 배출하지 못 했다.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그럼에도 한센이 리딩사이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출전 두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한센은 총 161두가 출전한 반면, 메니피는 118두에 그쳤다. 결국 총상금에서 약 2억 원 차이로 메니피가 2위로 밀려났다.
대상경주에서도 메니피가 압도적으로 앞선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센 자마 중에서 대상경주에서 우승한 마필은 3두에 불과했고, 대상경주 숫자도 3개뿐이었다. 영광의시크릿(경남신문), 닥터카슨(경남도민일보), 화이트퀸(루나스테이크)이 전부다. 총 207두 중에서 3두(1.5%)만이 대상경주 우승을 맛봤다. 경주 거리도 1200m, 1400m, 1600m로 장거리 경주는 한 차례도 없었다. 또한 3개 모두 급이 낮은 대상경주였다.
반면에 메니피는 총 25두(5%)가 53개의 대상경주에서 우승했다. 경주거리도 단거리부터 중장거리까지 다양했다. 특히 대통령배(파워블레이드), 그랑프리(경부대로), 코리안더비(스피디퍼스트) 등 최고 수준(GⅠ)의 대상경주에서 수많은 우승을 거두며 한센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대상경주 우승에서 알 수 있듯 한센은 소위 ‘로또’라고 할 수 있는 초특급 대형마를 단 한 두도 배출하지 못했다. 반면에 메니피는 숱한 명마를 배출했다. 트리플나인의 뒤를 이어 ‘역대 2위’의 명마로 평가받는 파워블레이드를 비롯해 경부대로, 스피디퍼스트, 우승터치, 파이널보스 등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 상당수다.
메니피와 한센 자마 중 상금 랭킹 1위부터 3위까지 비교해보면 극명한 차이를 알 수 있다. 메니피 자마 상금 1위인 파워블레이드(31억 원)는 3세 때 삼관경주를 모조리 석권했고, 그랑프리를 포함, 대상경주에서만 8승을 거뒀다. 2위 경부대로(24억 원)도 대통령배와 그랑프리 등 대상경주에서만 6회 우승했고, 3위 파이널보스(13억 원)도 코리안더비를 포함해 네 번의 대상경주 우승을 기록했다.
반면에 한센 자마 상금 1위인 신의명령(6억 원)은 대상경주 우승 없이 2위만 3회를 기록, 파워블레이드와는 비교 불가였다. 2위 닥터카슨(4억 8000만 원)과 3위 영광의시크릿(3억 9000만 원)은 대상경주에서 한 번씩 우승했지만, 역시 비교할 수준은 못된다.
또한 우승거리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한센 자마들은 당초 장거리에서도 좋을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재까지는 대부분 단거리에서 우승했다. 신의명령은 1200m가 넘는 거리에서는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고, 닥터카슨도 1200m가 한계였다. 영광의시크릿은 1400m에서 우승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반면에 메니피 자마들은 거리에 상관없이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현역 시절 성적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센은 경주마 시절 1700m에서 4승을 거뒀고, 1800m에서는 2위를 기록했지만, 2000m에서는 9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반면 메니피는 1800m에서 2승, 1900m 2위, 2000m에서도 2위 2회와 3위 1회를 기록하며 장거리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한국마사회 혈통사이트에서는 한센의 평균 우승거리가 1580m로, 메니피(1500m)보다 길게 나오지만 평균 우승기록은 특정거리에 집중적으로 출전하는 경우 왜곡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거리적성은 장거리만 따져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분석이다. 이렇게 볼 경우 사실은 메니피의 거리 적성이 훨씬 더 긴 셈이다.
일각에선 아직 한센을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의견도 있지만 자마들이 활약한 지 4년이 넘었고, 지금까지 207두가 경주마로 활약한 상황이라면 그 실체가 거의 드러났다고 봐야 한다. 물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현재 상황을 바꾸려면 새로운 씨암말을 찾아야 할 듯하다. 지금까지 시도했던 씨암말은 가급적 피하고 새로운 계열의 씨암말과 신방을 차려보는 게 어떨까. 한 시대를 풍미할 초특급 대형마를 기대한다면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
이병주 경마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