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통신’ 스튜디오지니 구상, 실패했던 2012년 ‘미디어허브’와 닮은꼴…KT “과거와 다르다”
취임 1주년을 맞은 구현모 호 KT가 탈통신에 속도를 낸다. 향후 콘텐츠를 중심으로 디지코 기업으로 전환을 예고했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전경. 사진=일요신문DB
KT 주가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하락세를 보여 왔다. 등락을 반복하긴 했지만 10년, 20년 기준으로 보면 꾸준히 하향세를 그렸다. 상장 직후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고 20만 원선까지 주가가 오르고, 2000년 삼성전자보다 먼저 국내 시가총액 1위를 꿰찼던 것이 이제는 아득히 먼 과거의 일이다. KT는 현재 시가총액 6조 원 안팎을 기록하며 코스피 40위권에 머물고 있다.
통신사업 자체가 성숙기 산업으로 분류되면서 주가가 부진을 겪어 왔다. 구현모 사장이 공식 취임한 지난해 3월 30일 이후 10여 년 만에 최대 규모의 자사주(3000억 원)를 담고 임원진을 동원해 두 차례에 걸친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약속 등 몇 가지 시도를 했지만 시장은 화답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역사적’ 급등세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 지난해와 올해 초마저도 KT는 소외됐다.
그런데 최근 KT 주가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31일 2만 8250원까지 오르며 지난 1월 최저점에서 19.95% 상승했다. KT는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자신한다. 구현모 사장이 직접 “3만 원도 저평가됐다”고 자신하는가 하면, 증권가도 목표주가를 3만 원 중반대로 제시하고 있다.
시장이 반응하기 시작한 건 구현모 사장이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선언한 이후부터다. 미래 KT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줄 사업 부문에 힘을 싣고, 그동안 박한 평가를 받게 한 대표적 원인으로 꼽힌 사업들의 몸집을 과감히 축소시킨다는 전략이다. 특히 최근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 콘텐츠 사업 투자 계획 발표가 불을 지폈다. 정체된 통신사업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평가가 주가 상승폭을 더욱 키웠다.
지난 3월 23일 KT는 기자간담회와 투자자포럼을 차례로 열고 콘텐츠 제작에 직접 뛰어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구현모 사장이 직접 나서 지난 1월 250억 원을 투입해 만든 신설 콘텐츠 전문법인이자 사업 ‘컨트롤타워’로 불리는 KT 스튜디오지니를 통해 13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KT 미디어 플랫폼에 콘텐츠를 입혀 ‘디지코’에 한 발 더 가까이 가겠다고 밝혔다.
스튜디오지니에서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실시간 채널 스카이TV, 올레TV(인터넷TV·IPTV), 스카이라이프(위성방송) 등 그룹 미디어 플랫폼에서 유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이를 다시 콘텐츠에 투자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구 사장은 2023년 말까지 최소 4000억 원 이상 투입해 원천 지식재산권(IP) 1000개, 드라마 100편을 확보하겠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와 미디어업계에선 KT 미디어 사업이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콘텐츠까지 더해 강력한 플랫폼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한다. 코로나19로 콘텐츠 소비가 늘었고 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시장 장악력이 커지면서 국내 통신사들이 콘텐츠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지금이 오히려 사업을 확대할 적기라는 평가도 나왔다.
KT는 장기적으로 스튜디오지니를 중간지주사화해 스토리위즈(웹소설·웹툰 제작·유통 플랫폼), 시즌(온라인동영상서비스), 지니뮤직(음원 서비스·유통), 스카이TV 등 미디어 콘텐츠 계열회사들을 산하에 재편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년간 사업구조 개편의 준비 작업을 해왔던 구현모 KT 사장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탈통신 작업을 본격화한다. 사진=연합뉴스
구현모 사장의 이 같은 구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KT가 콘텐츠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앞선 시도가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KT는 2012년 이석채 전 회장 시절 ‘글로벌 미디어콘텐츠 기업’ 전환을 선언하고 KT미디어허브를 설립했다. 당시에도 거창하게 추진했던 탈통신 전략의 일환이었다. KT미디어허브가 IPTV 사업을 운영하고, 자체 콘텐츠 제작을 병행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계획이었다. 김주성 전 CJ엔터테인먼트 대표를 KT미디어허브 대표로 기용하는 등 콘텐츠 전문가를 영입했다. 1000억 원가량의 콘텐츠 펀드 조성, 중소미디어 기업 직접 투자도 병행했다. 최근 KT의 콘텐츠 사업 시도 모습과 닮아 있다.
결과적으로 KT미디어허브 중심의 사업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룹 내에서 임원들간 잡음이 흘러나왔고 2014년 8월 김 전 대표가 돌연 사의를 표하고 퇴사했다. 남규택 당시 KT 마케팅부문장이 KT미디어허브 대표를 겸직했으나 이석채 전 회장이 퇴임하면서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콘텐츠 제작은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고 콘텐츠 수급만 대행하다가 차기 회장으로 취임한 황창규 전 KT 회장이 경영 효율성을 앞세우면서 KT미디어허브는 2015년 3월 본사로 합병됐다.
KT가 신사업을 꾸준히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던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 KT에서는 새 수장이 부임하면 전임자의 사업이 뒤집혔던 사례가 적지 않았던 만큼 기대감이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콘텐츠 사업은 열 번 시도해서 한두 번 성공하는 사업”이라며 “성공보다 더 많은 실패가 전제돼 있어 꾸준히 사업을 이끌어 나가고 결과에 책임지는 리더가 있어야 안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기자간담회와 투자자포럼 등에서는 신사업에 대한 밑그림은 나왔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애널리스트는 “큰 틀의 계획은 제시했지만 장기투자 가능 여부, 기존 KT 조직 문화가 콘텐츠 사업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질문에는 명확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며 “지배구조상 내년 대선 이후 경영진 교체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공개되지 않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KT 측은 과거와 상황이 크게 다르다는 입장을 보인다. 앞선 시도 시점엔 콘텐츠를 유통할 수 있는 IPTV 사업이 안정화되지 않았지만, 현재는 OTT의 등장으로 시장 규모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그동안 자체 역량도 충분히 키웠다고 설명한다. KT 관계자는 “1300만 명 이상을 보유한 유료방송 가입자의 실시간 시청정보 등 빅데이터를 통해 흥행 예측모델을 구축하는 등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안정적으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