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분쟁 특수한 상황 속 3%룰 효과 발휘…1명 제외 감사위원 선임은 대주주 입김이 좌우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타이어가(家)의 장남과 차남이 30일 잇따라 열린 지주사와 주력 계열사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서로 한 번씩 승리했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왼쪽)과 차남 조현범 사장. 사진=연합뉴스
#‘3%룰’로 결과 뒤집은 첫 사례
지난 3월 30일 오후 한국앤컴퍼니는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선임 등 안건을 결의했다고 밝혔다.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자리에 이한상 고려대 교수가 김혜경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를 누르고 선임됐다. 앞서 최대주주로서 회사의 경영 실권을 쥐고 있는 차남 조현범 사장은 김혜경 교수를 추천했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은 경영권 분쟁 논란에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 사임 의사를 밝히며 직을 걸고 이한상 교수를 추천했다.
이번 한국앤컴퍼니 주총은 3%룰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2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대주주·특수관계인 의결권 3%로 제한(3%룰)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조현범 사장과 조현식 부회장의 의결권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시 3%로 제한됐다.
조현식 부회장은 ‘3%룰’ 덕분에 낮은 지분율로 조현범 사장을 상대로 승리한 셈이다. 주총 전 국민연금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는 독립성 등을 이유로 조 부회장 측에 힘을 실었다. 여기에 소액주주 표심까지 조 부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앤컴퍼니 지분은 △조현범 사장(42.90%) △조현식 부회장(19.32%) △차녀 조희원 씨(10.82%) △국민연금(5.21%) 등의 순으로 보유하고 있다.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0.83%) 등 나머지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모두 합쳐도 1% 미만이다.
3%룰을 적용하기까지 순탄치는 않았다. 지난 2월 조현식 부회장은 조현범 사장이 장악한 한국앤컴퍼니 이사회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이한상 교수의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선임 안건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조 부회장은 주주제안 제도를 활용한 끝에 주총 안건에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선임 건이 상정됐다.
3월 30일 오전에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정기 주총이 진행됐다.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을 놓고 조현범 사장과 조현식 부회장이 표 대결을 벌였다. 국민연금은 조 부회장의 감사위원 선임안에 찬성하고 조 사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했다. 하지만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다. 조 사장 측 감사위원 후보인 이미라 제너럴일렉트릭(GE) 한국 인사 총괄이 84%의 득표율로 압승했다. 조 부회장이 제안한 이혜웅 비알비 코리아 어드바이저스 대표이사는 득표율 16%에 그쳤다. 조 사장은 사내이사 연임에도 성공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지분은 한국앤컴퍼니 30.67%, 조양래 회장 5.67%, 조희경 이사장 2.72%, 조현범 사장 2.07%, 조희원 씨 0.71%, 조현식 부회장 0.65% 등의 순으로 보유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본사가 위치한 서울 중구 시그니쳐타워. 사진=최준필 기자
3월 28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시총 50대 기업의 주총 안건 등을 분석한 결과, ‘3%룰’을 염두에 둔 주주제안이 나온 곳은 2곳에 불과했다. 한국앤컴퍼니와 금호석유화학이다. 이를 고려하면 ‘3%룰’이 주총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금호석유화학 주총에서 3%룰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지난 3월 26일 정기 주총에서 박철완 금호석유 고무해외영업 상무가 제안한 고배당과 사내·사외이사 선임 등의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특히 3%룰 적용으로 승산이 있다고 본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건도 이변은 없었다. 반면 박찬구 금호석유 회장이 제안한 배당과 사내·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임안 등은 모두 주총에서 가결됐다. 이후 3월 30일 박 회장에 맞서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박철완 상무는 해임됐다.
올해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최소 1명의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지만 이마저도 대주주·특수관계인이 각각 3%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나머지 감사위원은 여전히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방식으로 선임된다. 이사를 먼저 선임하고, 그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것이다. 이사를 선임할 때는 의결권 제한이 없다. 결국 대주주·특수관계인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인사를 이사로 선임해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 경제개혁연대가 2019년 12월 말 기준 자산 2조 원 이상의 비금융 상장회사 109곳을 분석한 결과, 대주주·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것보다 ‘개별 3%’를 적용하면 LS와 GS는 의결권을 80% 이상 더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65.49%), GS건설(60.67%), OCI(57.43%), LG(51.34%) 등도 50% 이상 의결권이 확대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당초 정부는 대주주·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기로 했으나, 개별 3%로 수정하면서 입법 취지가 퇴색됐다. 향후 3%룰이 지주사에 영향을 끼치긴 어렵다. 한국앤컴퍼니는 경영권 분쟁 때문에 3%룰이 효과를 낸 특수한 상황”이라며 “재계에서 3%룰로 인한 투기자본의 경영권 침해를 우려하지만, 감사위원 한 명 선임하려고 자산 2조 원 이상의 기업에 3%씩 쪼개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말했다.
3%룰로 의결정족수가 부족해 감사위원을 선임하지 못하는 사례도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2019년도 12월 결산사 정기주총 부결 현황‘에 따르면, 2029개사 중 340개사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안건이 부결됐다. 이 중 감사(위원) 선임 안건이 315건으로 전체의 92.6%를 차지했다. 대주주·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됐기 때문에 의결정족수인 전체 발행 주식의 25% 이상을 채우기 어려웠다.
하지만 올해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이 같은 우려를 말끔히 해소했다는 평가다. 전자투표를 도입하면 감사 선임 시 주주총회 의결정족수 25% 이상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 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의 과반수 요건만 갖추면 된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