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블록스 흥행 속 네이버 등 국내 기업들도 뛰어들어…게임 비롯 산업 전반 뒤흔들지 주목
3차원 가상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가 IT업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의 3D 캐릭터들 모습. 사진=네이버 제공
#가상세계 아바타로 콘서트도 관람한다고?
메타버스는 가상·추상을 의미하는 ‘메타’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로 증강현실(AR)·사물인터넷(IoT), 안면인식, 통신,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들을 결합해 가상공간에서 시공간 제약 없이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화면으로 가상현실을 보는 것에서 나아가 아바타 등을 활용해 가상세계를 직접 제작·참여하고, 현실세계처럼 상품을 거래하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미국 메타버스 게임 로블록스가 최근 미국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것도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로블록스는 레고 모양의 아바타로 가상세계에서 게임을 탐험하고 이용자 간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이용자가 게임도 개발할 수 있어, 벌써 800만 명 이상이 개발자로서 수익을 얻고 있다. 이용자들은 자신이 만든 게임을 하고 아이템을 구매하면 게임 내 가상화폐가 쌓이는 구조로, 현금 인출도 가능하다. 지인과 모임을 열거나 콘서트도 진행할 수 있다. 현대차증권에 따르면 로블록스는 하루 평균 이용자(DAU)만 3260만 명으로, 지난해 매출은 1조 328억 원이다. 이용자들의 일 평균 이용시간은 156분으로 유튜브의 3배, 페이스북의 7배에 달한다. 그 결과 5일(현지시간) 시가총액은 약 44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플랫폼으로 제페토가 있다.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3D 아바타 기반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이용자들은 자신과 닮은 아바타를 설정해 꾸미고 여러 가상공간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으며, 함께 게임을 하거나 춤추고 아바타 일상을 공유할 수도 있다. 최근엔 엔터테인먼트사와 제휴 확대로 이용자들이 제페토에서 블랙핑크 등 한국 가수들의 팬 사인회와 콘서트에 참석하고 뮤직 비디오를 관람하기도 했다. 이용자들이 만든 콘텐츠를 게시하고 ‘제페토 스튜디오’를 통해 의상과 아이템을 제작·판매하는 것도 가능해, 국내 플랫폼 중 메타버스를 가장 충실히 구현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누적 이용자만 2억 명으로, 이용자의 90%가 해외로부터 나오고 이용자의 80%가 10대다.
엔씨소프트의 팬 커뮤니티 ‘유니버스’도 메타버스에 방향성을 두고 있다. 유니버스에는 가수들의 아바타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는 물론, 팬들이 좋아하는 가수 아바타를 직접 꾸미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기능도 있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로블록스는 일반인이 로블록스 스튜디오라는 개발 엔진을 통해서 로블록스 플랫폼에서 통용되는 콘텐츠를 제작해 공급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이러한 양방향성이 플랫폼을 급속도로 팽창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페토는 빅히트, YG, JYP로부터 지분투자까지 받은 만큼 K팝 콘텐츠를 앞세운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높다”며 “유니버스는 게임사의 장점을 살려 론칭 시점부터 다양한 월정액 서비스 도입, 랭킹시스템, 아바타 등 향후 메타버스 플랫폼으로의 전환이 용이하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메타버스는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 큰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로볼록스 캐릭터들. 사진=로블록스 사이트 캡처
#메타버스의 인기몰이, 명암은?
메타버스의 급부상 배경은 디지털 기술과 콘텐츠의 성장에 있다. 산업적으로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했던 VR과 AR이 빠른 통신 속도와 고도화된 그래픽 기술, 다양한 콘텐츠 등과 접목돼 현실감 있는 가상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아울러 코로나19 장기화로 외부활동과 대면접촉이 힘들어지자 가상공간의 가치가 부각됐다. 소통에 갈증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젊은 층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와 알파세대(2011~2015년 태어난 세대) 사이에서 메타버스가 큰 인기를 끄는 이유다.
현재는 개념조차 학계에서 분분할 만큼 초기 단계지만, 이용자와 플랫폼이 늘고 생태계가 조성되면 메타버스 경제 규모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메타버스 시장 규모를 2025년 28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단순 게임과 엔터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취미 활동, 업무, 커머스 등 모든 영역으로 메타버스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고나 패션 뷰티업계는 메타버스 내 광고와 입점을 통해 홍보와 판매를 진행하고, 기업은 메타버스로 업무회의나 사업설명회를 진행할 수 있다. 네이버는 올 2월 구찌와 협업해 제페토 유저가 아바타로 구찌 옷을 입어보며 세계 각국 유저들과 소통 가능한 서비스를 내놨고, 제페토 사옥을 3D 지도로 구현하고 신입사원 연수를 열기도 했다.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과거에도 싸이월드나 심즈, 동물의 숲 등의 비슷한 가상세계 서비스가 있었지만, 메타버스는 이들의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는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취업이나 연애, 경제 문제 등 현실세계의 좌절감이 커지고, 인간관계의 소통이 어려워지는 만큼 가상세계를 통해 현실적 결핍과 불만을 해소하려는 욕구가 증폭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의 ‘나’가 가진 신체적 한계를 극복 가능할 뿐 아니라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기에 기존 가상세계와 차원이 다른 가상세계를 경험하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직 초기임에도 벌써 토지 매매나 다양한 비즈니스 사업을 메타버스에서 시작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난다. 향후 많은 디지털 콘텐츠 업체들이 진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가상자산 투기와 사기, 정보 격차에 따른 부작용 등은 우려할 요인이다. 최화인 에반젤리스트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세대·지역·계급 간 정보격차가 심화할 것이며, 메타버스도 이런 갈등 요소의 한 지점이 될 것”이라면서 “정보 격차를 포함한 디지털 영역으로의 ‘접근격차’ 해소가 향후 중요 정책과제로 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폭행과 성폭행 등 가상세계에서의 범죄 피해 문제도 대두된다. 한국게임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 교수는 “아바타에는 감정이 이입되기에 자신의 아바타가 범죄를 당했을 경우, 실제 자기가 당한 것처럼 인식돼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가상세계 내 캐릭터를 대상으로 일어나는 범죄들을 어떻게 룰을 세팅해 통제·제어할지 플랫폼사의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메타버스 시장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가상공간에서 무슨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오프라인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온라인 가상공간에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각에선 메타버스가 이전의 VR 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최근 메타버스라는 플랫폼들은 과거 가상세계 게임 심즈와 마인크래프트, 세컨드라이프 시절에도 제공했던 기능에서 진보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VR이 AR 기술, 플랫폼과 합쳐지면서 가상세계 구현에 대한 가능성이 더 열렸다고 볼 수는 있지만, 로블록스 등 최근 메타버스라 불리는 플랫폼들은 디자인이나 그래픽 기술 측면에서 오히려 과거 가상세계 플랫폼을 따라가지 못하고 기능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새로운 것이 아닌 기존의 연장선인데 새로운 이름으로 리패키징하는 건 투자자들에 있어 위험한 부분”이라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