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경선서 나경원 꺾은 기세로 단일화 승리, 서울 모든 지역 득표율 박영선에 앞서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오세훈 국민의힘 당선인. 사진=사진공동취재단
4월 7일 오후 8시가 넘어선 시점 국민의힘 당사 내부에 마련된 선거 상황실이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방송3사(KBS·MBC·SBS)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였다. 조사 결과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이 적지 않은 격차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는 ‘오세훈 59.0%, 박영선 37.77%’였다.
개표가 시작된 뒤 오 당선인은 박 후보를 시종일관 앞서갔다. 서울 25개구 모두에서 우세를 점했다. 오 당선인은 박 후보 지역구였던 구로구에서 승리했을뿐 아니라 21대 총선에서 쓴맛을 봤던 광진구에서도 이겼다. 여권의 전통적 강세 지역으로 꼽히던 지역인 금천구, 관악구, 강북구, 중랑구 등에서도 박 후보보다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
4월 8일 오전 1시 30분 오 당선인은 당선을 확정 지었다. 최종 개표 결과 오 당선인은 279만 8788표(득표율 57.5%)를 얻어 190만 7336표(득표율 39.18%)를 얻은 박 후보를 89만 1452표 차이로 꺾었다.
오 당선인은 자정이 넘어선 시점 개표상황실에서 당선 소감을 밝혔다. 오 당선인은 “정말 기뻐해야 하는 순간인데 코로나19와 경제난 때문에 고통을 겪는 분들을 어떻게 챙길지 생각하면 크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면서 “가슴을 짓누르는 엄중한 책임감을 주체할 수 없다”고 했다.
오 당선인은 “위중한 시기에 제게 다시 기회를 준 건 산적한 과제들을 능수능란하게 빠른 시일 내에 하나씩 해결하라는 지상명령”이라면서 “지난 5년 간 머리로 일을 했다. 이제는 약속한대로 뜨거운 가슴으로 일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오 당선인의 서울시장 컴백 과정은 험난했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부터 오 당선인은 ‘언더독’으로 분류됐다. 국민의힘이 여성 후보에게 10%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침을 정하면서 오 당선인이 나경원 전 의원에 비해 불리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당내 경선은 100% 국민 여론조사로 진행됐다. 3월 4일 여론조사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반전이었다.
3월 4일 당내 경선 승리 이후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감을 밝힌 오세훈 당선인. 사진=박은숙 기자
오 당선인은 득표율 41.34%를 기록해 36.31%를 득표한 나 전 의원을 5%p 차이로 앞섰다. 당직자들 사이에선 대이변이라는 말이 나왔다. 오 당선인 본인조차 놀란 눈치였다. 오 당선인은 3월 4일 당내 경선 승리 이후 “마음 정리가 안 돼 있었다”면서 “결과 발표 장소에 올 때까지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랐다”고 했다.
기쁨은 잠시였다. 오 당선인은 야권 단일화라는 과제를 눈앞에 뒀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제3지대 경선을 치러 승리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맞상대였다. 오 당선인과 안 대표는 실무 협상을 통해 야권 단일화 방식을 논의했지만, 쉽지 않았다. 야권 단일화 협상이 실무진 선에서 난항을 거듭하던 찰나, 오 당선인과 안 대표는 ‘톱다운 방식’으로 협상을 풀어냈다.
3월 21일 안 대표가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 양보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고, 오 당선인은 안 대표 측이 제안했던 무선 100% 여론조사 방식을 수용했다. 100% 시민 여론조사로 진행된 야권 단일화 경선 결과를 두고 “안철수가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게 돌았다.
한 야권 관계자는 “중도 표심을 쥐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하는 시민 여론조사에서 유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내곡동 땅 보상 특혜 의혹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네거티브를 시작한 상황이 안 대표에게 조금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면서 “포털사이트에서도 안 대표에 대한 호감 여론이 적지 않게 보여 주의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 당선인은 제1야당 조직망을 앞세운 총력전을 펼쳤다. 다시 한번 ‘불리하다’는 여론을 뒤집고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3월 23일 오 당선인은 야권 단일 후보가 됐다. 양측 합의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보궐선거 개표 상황실에서 나란히 서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세훈 당선인.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야권 단일화 이후 오 당선인은 자신이 경선에서 이겼던 맞상대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선거 운동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비롯해 나경원 전 의원,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전폭적으로 오 당선인을 지원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렇게 쿨한 단일화가 있었나 싶다”면서 야권 인사들의 전폭적 지원 의미를 되새겼다.
안 대표는 4월 7일 오 당선인이 당선 소감을 발표하는 순간까지 함께할 정도였다. 안 대표는 “야권이 단일화를 하고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교체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오 당선인 당선을 축하했다. 오 당선인은 “선거 기간 저와 치열하게 경쟁을 했지만 단일화 이후부터 최선의 노력을 다해 야권 승리를 위해 노력한 안 대표에게 감사 인사를 보낸다”고 화답했다.
야권 단일화 이후 본선거에 돌입한 뒤에도 오 당선인에겐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결전에서 마주한 네거티브 공세였다. 박 후보는 ‘내곡동 땅 보상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오 당선인을 압박했다. 생태탕, 페레가모 등 키워드를 띄우며 의혹을 증폭시켰다. 오 당선인 측 관계자에 따르면 국민의힘 내부에선 ‘네거티브 반격 자제론’이 부상하면서 박 후보의 도쿄 아파트에 대한 공세를 하지 않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치열한 선거전은 선거 당일까지 이어졌다.
선거 당일 오 당선인은 4·7 보궐선거를 마친 뒤 꽃다발을 받는 입장이 됐다. 당내 경선, 야권 단일화, 본선거까지 1달이 넘는 기간 사이 펼쳐진 3연전에서 모두 승리한 셈이다. ‘언더독’으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던 오 당선인은 다시 서울시청으로 출근할 수 있게 됐다.
오 당선인은 “이제 시작”이라면서 “야권이 시정을 맡으면 겸허하면서도 영리하다는 걸 시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 당선인은 “야권의 책임 있는 분들이 정권교체를 위해 혁신·단합하고 힘을 합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