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에서 피해자 된 유제니 모습에 현실 ‘학폭’ 투영…“공감 가되 극단적이지 않도록 주의”
SBS 금토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유제니 역을 맡은 배우 진지희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다졌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저도 시즌3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웃음). 제가 시즌1 종영 소감 때 말씀 드렸던 게 엄마가 세신사인 걸 알면 제니도 엄마한테 배신감이 들어서 엄청 뭐라 할 것 같고, 모녀 사이가 틀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시즌2에서 저의 예상과 정반대로 바로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고 오히려 딸로써 엄마를 더 챙기는 모습을 작가님이 그려주시더라고요. 대본을 보고 ‘어, 내가 생각했던 것이랑 다르네’ 싶었던 게 너무 많아서(웃음). 그래서 시즌3도 시즌 2의 모습이 연장선이 될지, 또 다시 제니가 독해질지 궁금증이 너무 많아요.”
‘펜트하우스’ 시즌1 종영 때와 마찬가지로 진지희에게 가장 먼저 쏟아진 질문은 “시즌3에서는 대체 어떻게 되냐”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이 알지 못하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배우는 알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지만, 휘몰아치는 전개로 유명한 김순옥 작가이다 보니 역시 배우들에게도 힌트조차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시즌2에서 배로나(김현수 분)의 사망 신이 나왔을 때 본인도 큰 충격을 받았을 정도로 스토리 전개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게 진지희의 이야기다.
진지희는 ‘펜트하우스’ 시즌 3에서 그간 애증 관계였던 배로나(김현수 분)와 절친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건 제 개인적인 희망사항인데요, 시즌3에서는 다시 제니와 로나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로나를 싫어한 게 아니라 제니는 로나를 너무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엄마가 감옥에 가게 돼 원망이 생긴 건데 그게 너무 좋아해서 생긴 원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제니가 나중에 그걸 이해한다면 다시 로나와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둘이 예쁜 대학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로나의 절친이 되고 싶어요(웃음).”
진지희가 연기한 시즌2에서의 유제니의 모습은 최근 현실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된 ‘학교폭력 이슈’와도 맞물린다. 불편한 모습을 그려내야 한다는 점에서 어깨가 무거울 법도 했다. 이에 대해 진지희는 “공감을 얻기 위해 연기하되,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설명했다.
“심각한 일이고 또 예민한 부분인지라 학교 폭력의 단적인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제니라는 캐릭터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제니라면 어떻게 이 상황에 대처했을까, 거기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제니의 모습을 보여드리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뀐 제니의 모습이 어떤 분들은 ‘아유 속 시원하다’ 하실 수도 있고, ‘제니가 너무 불쌍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저는 제니가 피해자가 되면서 로나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을 것 같아요. 그 부분을 좀 더 보여드리고자 감정선에도 많이 신경을 썼어요.”
감정에 가장 신경 썼던 만큼 진지희에게 시즌2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바로 그 감정들이 폭발한 ‘따돌림 고백 신’이었다고 했다. 유제니가 자신의 마음을 유일하게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엄마의 앞에서, 시즌1에서부터 쌓아왔던 감정을 그대로 털어놓으며 “나는 사실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이었다. 연기하는 본인조차 그렇게까지 오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는 그 신은 시청자들에게도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제니의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거든요. 협박에 의해서 로나를 어쩔 수 없이 괴롭혔다가, 심적으로는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충돌이 부딪쳐서 결국 마지막에 용기 내 왕따를 고백하는 장면이었죠. 진짜 그날 하루에 감정을 다 소비했던 거 같아요. 또 제가 그렇게 감정을 터뜨릴 수 있었던 건 신은경 선배님 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엄마의 눈빛을 제가 받고, 엄마한테 말 못 했던 아픔들이 그때 터지면서 그런 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지 않나… 하지만 제가 잘 소화해 냈다곤 말 못 하겠어요(웃음). 그저 최대한 많은 노력을 해 봤다 정도로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2003년 아역 데뷔 후 2009년 ‘지붕 뚫고 하이킥’의 정해리 역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진지희. 요즘은 전문직 여성 캐릭터 연기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사진=SBS ‘펜트하우스’ 제공
자신이 꼽은 최고의 장면을 상대역인 신은경 덕으로 돌릴 정도로 진지희는 함께하는 배우들에게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정말 가족이 된 기분”이라는 게 그의 이야기다. 2003년 아역으로 데뷔한 뒤 2009년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진지희 주변에는 또래 연기자들보다 까마득한 선배들이 훨씬 많았다. 그런 만큼 또래 연기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호흡할 수 있었던 ‘펜트하우스’가 그에게는 의미가 클 수밖에 없었다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선배님들이랑 연기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마다 현장에 대한 센스나 호흡적인 부분, 상대방과의 소통 같은 부분을 선배님들께 많이 배웠어요. 이번에는 또래 언니오빠들과 함께하니까 신선함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지 못했던 자극되는 부분도 생기고, 이 장면을 이렇게 풀어도 재밌겠다 했던 부분이 또래 동료들이 더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내놓으면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흐름으로 갈 때도 있었거든요. 그 흐름에 자극을 받으면서 더 좋은 제니의 흐름으로 탄생할 때도 있었고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성공적으로 아역 이미지를 벗어내야 한다는 조바심과 부담감은 어린 나이에 데뷔해 큰 인기를 끌었던 아역 배우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올해로 스물둘, 성인 연기자로의 변신이 우선돼야 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학생을 연기하는 것에 진지희는 조바심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이 질문을 두고 진지희는 “옛날보다는 조금 더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답했다.
“옛날엔 ‘빨리 하자, 얼른 해야 해’ 이런 마음가짐이었는데 지금은 조금의 여유가 생겼어요. 각자의 속도가 있는 거고, 나는 지금 내가 하는 것에 행복하면 된 거야 같은 마음. 물론 그러면서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도 공존하지만, 조금 더 저에게 여유를 주려고 해요. 또 이번에 ‘펜트하우스’를 통해서 배우 진지희라는 사람이 이런 연기도 되고, 저런 연기도 되고.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모습도 있다는 걸 장기적으로 보여드릴 수 있게 됐잖아요? 저도 많이 성숙해지고, 연기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대중들께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언젠가는 ‘비밀의 숲’의 배두나 선배님이나 ‘시그널’의 김혜수 선배님 같은 시크한 전문직 여성도 해 보고 싶어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