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대가 KCC와 사업 영역 겹치고 부동산 공급억제 영향도…현대백화점 “경영효율화 통한 질적 성장”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L&C의 2020년 매출은 별도기준 9410억 원으로 2019년(9691억 원)에 비해 2.9%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253억 원으로 2019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기는 했지만 피인수 영향으로 2018~2019년 일회성 비용 지출이 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익 또한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현대백화점그룹의 건자재 업체 현대L&C가 예상과 달리 부진한 성적표를 내놔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모건스탠리PE가 경영하던 2015~2017년 현대L&C의 영업이익은 250억~320억 원 수준이었다. 현대L&C는 한화첨단소재의 건자재 사업부였다가 2014년 물적분할된 후 모건스탠리PE에 팔렸다. 이후 현대백화점 계열사인 현대홈쇼핑이 2018년 10월 한화L&C 지분 100%를 3680억 원에 인수했다.
현대L&C의 경쟁사들은 대체로 좋은 실적을 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집콕족’이 늘어나면서 인테리어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업계 1위 한샘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1.7%, 66.7% 증가했고, KCC도 실리콘 업체 모멘티브 인수 효과가 반영됐다고는 하지만 매출이 86.9% 늘었다. LG하우시스 건자재 사업부의 매출은 0.79%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이 27% 늘었다. 이 밖에 매트리스 업체 지누스, 주방기기 업체 하츠 등 인테리어 업체들이 모두 호실적을 기록했다.
#‘오촌 당숙 회사’ KCC 영역 공략 쉽지 않네
2018년 현대백화점그룹이 한화L&C를 인수하겠다고 밝히자 증권가는 이구동성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오랜만에 시너지 효과가 확실시되는 거래가 나왔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그림이 확실히 나온다”며 “현대백화점그룹은 건자재와 가구, 부엌가구 등 토탈 인테리어를 온·오프라인으로 유통할 수 있는 회사가 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인수 2년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보면 시너지 효과는 크지 않다. 다수의 연구원이 현대L&C는 피인수와 동시에 매출 1조 원 돌파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1조 원 클럽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경쟁 관계이자 범 현대가 기업인 KCC의 존재가 부담 요인이 된 것 같다고 평가한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삼남인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아들이다. KCC는 정주영 회장의 막냇동생인 고 정상영 회장의 아들 정몽진 KCC 회장과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이 이끌고 있다. 정지선 회장 입장에서는 ‘몽’자 돌림을 쓰는 오촌 당숙의 사업에 개입한 꼴이 되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KCC와 현대L&C는 겹치는 사업 영역이 적지 않다. 특히 건설사에 공급하는 창호재와 바닥재, 인조 대리석 등이 겹친다. 현재는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HDC현대산업개발 등 범 현대 계열의 건설사들이 짓는 아파트에 사실상 자동으로 KCC의 제품이 들어간다. 현대L&C가 이 시장의 일부를 점유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생각 외로 난공불락이라는 후문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백화점 입장에서도 가족끼리 싸운다는 인식을 주면 곤란하기 때문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때마침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것도 현대L&C에게는 악재가 됐다. 시장이 커지는 국면이면 자연스레 현대L&C의 몫이 생길 수 있지만 정부의 부동산 공급 억제 정책으로 갑작스레 불황이 덮치면서 업계 내 경쟁이 치열해졌다. 현대백화점 측도 현대L&C만 실적 부진을 겪는 것이 아니라 업황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2019년부터 신규 주택 공급 감소 등 전방산업인 건설시장 불황 여파로 국내 건자재 업계 전체가 매출이 감소했다”며 “현대L&C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소폭 감소했으나 저가수주를 지양하는 등 경영효율화 작업 등을 통해 영업이익이 크게 개선되는 등 질적 성장을 이뤄냈다”고 전했다. KCC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현대L&C) 인수를 전후해 달라진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다르다” 현대리바트 경쟁력 높아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사진=현대백화점그룹 제공
현대리바트는 지난해 매출 및 영업이익이 모두 증가했지만 기대치는 밑도는 수준이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조 3846억 원, 371억 원으로 2019년 대비 11.74%, 55.23% 증가했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2~4분기 모두 기대치는 밑돌았다. 일부 증권사는 현대리바트의 연간 이익이 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이익 감소의 이유가 투자였기 때문이다. 김세련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4분기 이익률이 좋지 않았는데 이는 통합 온라인몰 리뉴얼 오픈 및 욕실(바스) 사업 신규 론칭, 부산 전시장 오픈과 용산점 리뉴얼 등에 따른 판관비 증가 때문이었다”며 “이와 같은 비용 증대는 소비자 시장 공략을 위한 투자이기 때문에 추후 매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또 올해 안에 스마트 물류센터가 가동하면 빌트인 가구를 대량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현대백화점이 그동안 인수합병(M&A)을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 능력을 입증한 것도 현대L&C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현대백화점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는 2011년 인수한 한섬이 있다. 한섬은 피인수 전인 2010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000억 원, 800억 원 선이었지만 현재는 매출 1조 원, 영업이익 10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패션 업체들이 대부분 고전하는 것과 달리 꾸준히 성과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한섬은 물론이고 본업인 백화점 또한 한섬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KCC와의 경쟁이 조만간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이 분할한 지 20년이 넘어가면서 이제는 각자의 영역에 대한 경계가 흐릿해졌다. 범 현대가 내에서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반복됐다. 그룹의 장자인 현대자동차그룹이 신흥증권(현 현대차증권)을 인수해 현대증권(현 KB증권)과 맞붙기도 했다. 특히 건설업계는 대부분 범 현대가가 부딪히고 있다. 2015년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HDC현대산업개발이 호텔신라와 제휴해 면세점 사업에 진출하면서 현재 현대백화점그룹과 경쟁 중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의 한 관계자는 “백화점·리바트 등 계열사 간 시너지 극대화를 통해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을 동시에 기대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더 큰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