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치료제·백신 호언장담 무색…“소유·경영 분리 약속 빛바래” 2세 승계 눈총
올해 들어 주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셀트리온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회사와 서정진 명예회장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정진 명예회장이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국난극복-K뉴딜위원회가 주최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 동향 및 임상결과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시장에서 셀트리온 주주들은 주가가 하락세를 보일 때도 먼저 회사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는 다른 종목들의 주주들과 달리 서정진 명예회장과 회사의 대응을 기다리며 결속력을 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서정진 명예회장과 회사에 대한 믿음을 꾸준히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셀트리온 소액주주들 사이에서 “주주친화적 행보를 보이던 서정진 회장이 물러난 이후 회사가 주주들이 고생하는 것을 방관한다”는 지적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연이은 주가 하락에도 셀트리온이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을 내비친다.
실제로 셀트리온 토론방을 중심으로 모인 ‘셀트리온 주주연합회’는 지난 27일 오전 셀트리온헬스케어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회사 관계자와 면담을 가졌다. 이날 소액주주들은 셀트리온에 주주가치 제고와 소액주주와의 소통을 촉구하고 치료제 수출 및 승인절차, 자사주 매입, 액면분할 계획 등에 대해 질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직접 회사 IR부서에 전화해 주주가치 제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12월 7일 종가 40만 3500원으로 사상 최고점을 찍은 이후 연이은 하락세로 지난 4월 29일 종가 26만 8500원을 기록했다. 지난 1월 13일 셀트리온은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의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했지만, 주가가 1월 14일과 16일 이틀 연속 -7.6%, -6.67% 급락했다. 당시 셀트리온이 발표한 지표가 통계적 유의성 확보에 한계가 있었고 백신의 등장으로 치료제에 대한 기대가 꺾이며 ‘렉키로나주’의 실적 개선 효과를 두고 시장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대한 서정진 회장의 호언장담이 빗나간 것도 셀트리온에 부담이 됐다. 백신 위탁생산(CMO)으로 주가가 상승하는 다른 제약·바이오주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셀트리온은 4월 26일 렉키로나주 임상 3상 환자 모집과 투약을 완료했다고 밝혔지만, 주가를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셀트리온이 2세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천 송도 셀트리온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셀트리온은 지난해 2월 발 빠르게 ‘렉키로나주’ 개발에 뛰어들었다. 서정진 명예회장은 지난해 11월 12일 한 포럼에서 “올해 연말쯤 투약 후 4~5일 만에 몸 속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소멸시키는 항체치료제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 봄쯤 마스크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달 25일 또 다른 포럼에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진단검사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렉키로나주 시판 첫날인 지난 2월 18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는 돌연 ‘백신 기술 주권’을 언급하며 백신 개발 가능성을 언급했다. 서정진 명예회장은 “산불을 끄려면 불을 따라가지 말고 방화벽(백신)부터 지어야 한다”며 “한국이 방화벽 구축에 실패하면 어쩔 수 없이 셀트리온도 백신업계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백신 수급 골든타임을 놓친 데는 서정진 명예회장의 이 같은 발언들이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서 명예회장이 시장과 투자자, 국민들을 상대로 백신 개발을 언급하는데, 백신은 바이오시밀러보다 훨씬 연구력이 축적된 이후 가능한 기술로서 회사 역량을 정확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국내 기업이 있는 이상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렉키로나주에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최근 실제 투약환자 수는 정부 예상치의 25%에 불과하다. 전봉민 무소속 의원이 최근 질병관리청에서 받은 ‘렉키로나주 투약환자 현황’에 따르면 렉키로나주는 지난 2월 17일부터 4월 9일까지 총 1325명의 환자에게 투여됐다. 일평균 25명이다. 정부는 당초 일평균 102명의 환자에 렉키로나주를 투약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셀트리온이 2세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면서 일각에서는 “서정진 회장이 약속했던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거짓말이었느냐”는 비난도 나온다. 최근 서정진 명예회장의 장남 서진석 셀트리온 수석부사장은 셀트리온홀딩스 사내이사에 선임돼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차남 서준석 셀트리온헬스케어 이사는 셀트리온헬스케어홀딩스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서진석 부사장은 지난해 9월 셀트리온헬스케어홀딩스 신설 당시 서정진 명예회장과 함께 사내이사로 선임된 터여서 셀트리온 통합지주사에서도 서 명예회장을 대신해 이사회 의장을 맡을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에서는 그룹 통합 과정에서 입지를 다진 두 형제가 합병 이후 서 명예회장의 통합지주사 지분을 이어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여러 지적에 대해 셀트리온 관계자는 “이사회와 경영진의 역할이 다르다”며 “승계에 대해 회사에서 전혀 언급한 바 없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