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의 새로운 지평 열었다” 김여진 연기 인생 전환점될 캐릭터로 ‘우뚝’
“어디에도 없는 ‘빌런’ 캐릭터”라는 최명희를 연기하기에 앞서 김여진은 그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듭했다고 했다. 캐릭터의 일상성과 악함을 공존시키면서 균형을 잡는 것이 특히 어려웠다고.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 중 가장 접근하기 어려웠다. 저 역시 어디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악역”이라고 최명희를 소개한 김여진에게서 듣는 ‘빈센조’의 후일담과 최명희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해 봤다.
최근 종영한 tvN 토일 드라마 ‘빈센조’에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빌런 최명희 역을 맡은 배우 김여진. 사진=tvN 제공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방송이 다 끝나야 실감이 나지 않을까 싶다. 정말 배우들, 스태프들과 친하게들 지냈다. 지금도 떠나지 못하고 붙들고 있다. 저 역시 그렇다. (웃음) 최명희에 대해서는 후련한 느낌이 있다. 이제야 떠나보내는 느낌이 든다. 방송을 끝내고 나면 굉장히 허전할 것 같다. 빈 자리가 크지 않을까 싶다.”
― 기존 악녀와는 다른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다. 최명희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 중 가장 접근하기 어려웠다. 저 역시 어디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악역이었다. (최명희는) 악녀라고 칭하기 어렵고 굉장히 무성적이다. 여성적이지도, 남성적이지도 않고, 아주 아줌마 같으면서도 아저씨 같기도 했다. 연기를 하면서 중점을 뒀던 점은 (최명희가) 정말 꼴 뵈기 싫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기존 작품에서의 악녀들은 섹시하면서 치명적인 매력을 갖추고 있거나 어떠한 사건과 사고로 악행을 하는 이유가 그려짐으로써 연민의 감정을 자극하는데, 최명희는 이러한 등등을 배제하면서 일상성과 악함을 공존시켜야만 했다.”
― 사투리도 장안의 화제였다.
“초중고를 마산에서 나와 (사투리는) 내게 자연스러운 언어였다. 최명희도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표준말을 본인이 쓴다고 하지만 (경상도) 억양이 세게 남아있고, 서울말도 아닌 것이 사투리가 아닌 어색하면서도 듣기 싫은 말투를 쓰려고 노력했다. 준우랑 이야기할 때 표준말로 말하지만, 무시하는 사람 싸워야하는 사람일수록 사투리 억양이 더 많이 나오는 등 이러한 디테일한 부분들을 살리려고 했다.”
최명희를 연기하기 위해 김여진은 캐릭터의 일상성 속에 섬뜩한 악함을 집어넣었다. 사진=tvN 제공
― 밥을 먹으며 살인청부를 지시하는 장면(일상적인 행동 속 섬뜩한 행동들)은 시청자들을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인 점이 있다면.
“저도 이 장면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홍유찬 변호사를 죽일 때 쌈을 입안 가득히 넣으면서 일상적으로 말을 툭 내뱉는다. 이전까지는 (최명희가) 나쁜 사람인지, 착한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컸는데, 그 신에서 반전이 드러난 것이다. 저도 대본을 보면서 충격적이었다. 먹는 모습에서 오히려 최명희의 허기, 탐욕스러움이 드러났던 것 같다. 최명희의 약육강식 세계관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 줌바 댄스 여왕으로 처음에 확 이미지 변신하지 않았냐. 평범한 중년에서 빌런의 면모까지 선보였는데, 이 간극을 위화감 없이 그려내기 위한 노력이 있었는지.
“줌바를 해보진 않았고, 라틴 살사 댄스를 배운 적 있다. 줌바 댄스가 중년 여성들을 많이 움직이게 만드는 아주 신나는 댄스다. ‘이렇게 음악을 좋아하고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리의 선입견일 수 있다. (최명희는) 교묘하게 일상과 끔찍한 범죄를 잘 버무려서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를 자신의 일상으로 스며들게 만드는 새로운 인물이다. 그래서 가끔 아무렇지 않다가 섬뜩한 느낌을 주는 굉장히 매력 있는 캐릭터였다.”
― ‘빈센조’ 속 가장 기억에 남은 명장면, 혹은 대사가 있다면.
“마지막 회를 꼭 보셨으면 좋겠다. (웃음) 최근 홍차영과의 술집 씬이 좋았다. 조금 아쉬운 건 차영이랑 좀 더 많이 만났으면 어땠을까 싶다. 제가 전여빈 배우도 좋아하고, 홍차영 캐릭터도 정말 매력 있어서 둘이 만나서 싸우고 기싸움도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장면에서 ‘누가 센 똥인지 끝까지 해보자’는 대사가 두 축을 설명하는 이야기 같더라. 누가 착하고 깨끗한지가 아닌 둘 다 나쁘다는 것. 빈센조 측도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에 누가 더 굵고 센 똥인지 겨뤄보는 게 맞는 거다. 서로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부딪힐 때 선악을 따지기보다 누가 더 강한지를 겨루는 게 이 드라마의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때 차영이를 보면서 ‘너랑 나랑 닮았구나. 네가 20년 살면 나처럼 될 걸’이라는 생각이 들며 웃음이 나더라. 그런 점이 스스로 섬찟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이가 있고 여러 가지 생각하게 만드는 신이었다.”
김여진은 최명희에 대해 “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될 캐릭터”라고 정의했다. 사진=tvN 제공
― ‘빈센조’를 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게 어렵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사실 제가 웃음이 되게 많은데, 조한철, 곽동연 배우가 정말 웃기다. 난 심각한데 계속 웃기니까 집중해서 가기가 힘들더라.(웃음) 웃겨서 괴로운 현장이었다. 아주 즐겁고 행복한 현장이었다.”
― ‘최명희’는 김여진이라는 배우에게 어떤 캐릭터로 기억될 것 같은지.
“제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이 역할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빈센조’는 듣지도 보지 못한 작품인 것 같다. 상상초월 하는 순간이 계속 생기고, 아주 진지함과 잔인함, 깊은 어둠이 있는데 엄청 웃긴다. 모든 장르가 섞여있다. 마지막까지도 혼란스러운데, 그게 이 작품의 큰 매력적이다. 우리의 삶이나 인생이 그렇지 않나. 반면, 오히려 고민을 안 하려고도 했다. 닫혀있던 사고방식을 열어보려고 했다. 제 생각에는 다음 작품에서 제 연기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빈센조’가 새로운 변화를 꿰찰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웃음).”
― 마지막으로 ‘빈센조’와 최명희‘를 사랑해주신 시청자들분께 한마디.
“대본을 보고서 최명희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제가 걱정이 많았다.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과 코미디와 판타지 같은 이야기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고민했는데 기우였다. 시청자분들이 새로움과 낯섦에 재밌어하더라. 한국 드라마 발전시키는 힘이 우리나라 관객의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을 배척하지 않고 빠르게 흡수하고 열광해주시는 것 때문에 한국 드라마가 무궁무진하게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자분들께 감탄했다. 저 역시 같은 시청자로서 재미있게 ‘빈센조’를 봤기에 아쉽다. ‘빈센조’와 최명희는 제게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과 캐릭터다. 시청자분들에게 그런 작품과 캐릭터였으면 좋겠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