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7년 ‘달려라 하니’ 마침표…나를 찾는 여행서 ‘주영’ 만나…배우로 첫발 ‘두근두근’
EXID의 하니에서 배우 안희연으로 한 걸음을 내디딘 그는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거리의 청소년 주영 역을 맡아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사람들이 왜 저를 캐스팅했냐고 감독님께 많이 물어보신대요. 감독님이 그 답으로 ‘좋은 배신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워낙 밝아 보이고 업(Up)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익숙해서 ‘굳세어라 금순아’ 같은 건실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주영 역을 맡으면 ‘이런 면이 있었나’라는 좋은 배신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스크린을 통해 대중과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하게 된 안희연은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집을 나온 지 4년이 넘어가는 ‘거리의 청소년’ 주영 역을 맡았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된 또 다른 거리의 청소년 ‘세진’(이유미 분)의 성공적인 유산을 위한 여정에 함께한 주영은 이제까지 하니의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오랜 기간 거리를 떠돌며 정돈하지 못해 길고 푸석푸석해진 머리와 팔 다리에 대충 새겨진 타투, 담배와 약에 취해 흰자를 드러낸 채 웅얼거리는 주영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안희연을 보고 있자면 ‘좋은 배신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출연 제의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저는 소속사도 없고, 나를 찾기 위한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을 수 있는 굉장히 용감한 상태였어요(웃음). 감독님과 이야기를 한 번 하고 나서 전작 ‘박화영’도 보게 됐고요. 영화는 너무 아팠지만, 뭔가 저를 두근거리게 하는 게 있더라고요. 이 사람이라면 내 안에 뭔가를 끄집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환 감독은 정돈을 못해 거칠고 길게 자란 머리와 팔다리의 타투, 약과 담배에 취한 주영의 모습을 통해 안희연으로 하여금 대중들에게 ‘좋은 배신감’을 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사진=‘어른들은 몰라요’ 스틸컷
이환 감독의 전작 ‘박화영’은 가정과 학교로부터 배제돼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의 삶을 어떤 가감도 미화도 없이 보여준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의 ‘문제작’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런 그의 차기작인 ‘어른들은 몰라요’ 역시 어른들이 외면하거나, 혹은 자기 좋을 대로 이용해 온 문제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강렬한 메시지를 관객들의 눈앞에 주먹처럼 들이대고 있는 영화인 만큼 출연을 결정하는 것에는 그의 말대로 용기가 필요했을 터다.
“‘박화영’을 보고난 뒤에 감독님께 그랬어요. 나는 내가 앞으로 뭘 할지, 어떤 회사에 들어갈지 아무 것도 결정한 게 없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내가 뭘 할진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간에 내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줬으면 한다. 이 영화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냐. 그랬더니 감독님이 ‘이 영화 하나로 뭐가 바뀔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도 그런 꿈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시더라고요. 그 말이 제게 크게 다가왔어요. 바로 악수하고, 다음날부터 워크숍에 들어갔죠(웃음).”
3개월여 동안 모든 출연진이 함께하는 워크숍을 통해서 안희연은 연기의 A부터 Z까지 배웠다. 이환 감독의 디렉팅은 배우들의 감정이 충분히 자연스럽게 차오를 때까지 기다린 뒤에 마음이 가는 대로 연기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것이었다. 연기를 제대로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심지어 대사의 절반이 욕설인 ‘비행 청소년’ 역할을 한다는 것에 안희연은 “처음엔 정말 멘붕(멘탈 붕괴)이었다”라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주영이 되어 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안희연의 대사는 욕설이 절반 이상이었다. 대사를 하는데 어색해서 ‘멘붕’이 왔다고. 사진=리틀빅픽쳐스 제공
하나씩 배워가며 인간 안희연의 새로운 선택지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스스로를 “경주마처럼 살아왔다”고 말한 안희연은 최근 자신의 삶의 속도를 두고 ‘습습 후후’ 호흡법에 맞춰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세운 골인 지점만을 향해 달려가던 이전과는 달리 느리고 안정적인 호흡에 맞춰 주변을 돌아보며 천천히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원래는 굉장히 목표지향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이었는데, 언젠가 친구가 제게 러닝할 때 가르쳐준 ‘습습 후후’ 호흡법을 통해서 바뀌었어요. 두 번 쉬고, 두 번 뱉으며 숨 쉬는 것에만 집중하니 목표지점만 바라보고 달리지 않아도 어느 샌가 그곳에 도착해 있더라고요. 엄청난 충격이었죠(웃음). 저는 전 소속사에서 7년 동안 있었는데 계약이 끝나고 나면 보통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선택지가 적다고들 해요. 연기를 하거나 솔로 가수를 하거나. 그런데 그렇게 적은 선택지로만 제게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이제 스물아홉 살이고, 뭔가 새로 시작하기에 늦지 않은 나이니까요. 뭐가 됐든 저는 일단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거예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