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한 총장 후보들 사직할 필요 없어…이성윤·조남관 새 정권 총장 노려볼 수도
과거에는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명되면 함께 후보군에 올랐던 검사들은 검찰을 떠나는 게 관례였지만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명돼 23기에서 20기로 후진하는 검찰 최초의 기수 역전 검찰총장이 탄생하면서 23기와 24기들이 굳이 사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사진=최준필 기자
2019년 6월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문무일 검찰총장(사법연수원 18기)의 후임으로 봉욱 대검찰청 차장검사(19기), 김오수 법무부 차관(20기), 이금로 수원고검장(20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23기) 등 4명을 후보로 추천했다. 18기인 검찰총장의 후임으로 19·20기 3명이 이름을 올린 것은 무난, 23기인 윤석열 전 총장은 파격으로 보였다. 그리고 결국 후임은 윤석열 전 총장으로 확정됐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 가장 유력하게 본 후보는 봉욱 전 차장검사와 김오수 전 차관이었다. 윤석열 전 총장은 문무일 전 총장과 무려 5기수 차이로 이런 파격적인 인선이 이뤄지면 고검장급도 24~25기로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파격 인사가 이뤄졌고 검찰 내부는 요동을 쳤다. 그리고 봉욱 전 차장검사와 이금로 전 고검장은 윤석열 전 총장 취임을 즈음해 검찰을 떠났다. 법무부 차관으로 검찰을 떠나 있던 김오수 전 차관만 그 자리를 유지하다 지난해 4월 사직했다.
김오수 전 차관 역시 “지난해 6월부터 그만둘 때를 고민했다”며 “훌륭한 장관님이 취임하시고 총선까지 끝난 지금이 이 자리에서 물러날 가장 적절한 시점인 것 같다”고 사직 이유를 밝혔었다.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21기), 김호철 전 대구고검장(20기), 박정식 전 서울고검장(20기), 정병하 전 대검 감찰본부장(18기) 등도 2019년 6~7월 사이 대거 검찰을 떠났다.
최근 김오수 전 차관은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로써 검찰총장은 18기에서 23기로 훌쩍 내려갔다가 다시 20기가 됐다. 이번에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다른 후보는 구본선 광주고검장(23기), 배성범 법무연수원장(23기),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24기) 등이다. 비록 4명의 후보에 거론되진 않았지만 유력한 후보였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23기)도 있다.
과거에는 검찰총장 후보자가 지명되면 함께 후보군에 올랐던 검사들은 검찰을 떠나는 게 관례였지만 이번엔 23기에서 20기로 후진하는 검찰 최초의 기수 역전 검찰총장이 탄생하면서 23기와 24기인 후보들이 굳이 사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들에게는 다시 검찰총장 자리를 노릴 기회도 남아 있다. 게다가 이성윤 지검장은 아예 4명의 후보에도 오르지 않아 차분히 차기 검찰총장 자리를 노릴 수 있게 됐다.
당장은 김오수 신임 검찰총장 지명자가 검찰 내부를 단속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개의 경우 신임 검찰총장의 선배 기수나 동기들이 검찰을 떠나는 것이 관례였고 그 자리에 총장의 사람들이 승진하면서 조직 장악이 이뤄졌다. 윤석열 전 총장의 경우 무려 5기수를 뛰어 넘는 파격 인사였던 터라 19~22기가 대거 검찰을 떠나며 그 자리를 자기 사람들로 채울 수 있었다.
반면 현재 상황은 20기 검찰총장이 나왔지만 이미 20기는 물론 21·22기도 검찰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23·24기 고검장들이 검찰을 떠날 이유가 사라졌다. 김오수 총장 지명자는 내 사람을 중용하는 ‘물갈이’를 통한 리더십 확보를 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 관여돼 기소 위기에 놓여 있지만 이 고비만 잘 넘긴다면 충분히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다. 사진=이종현 기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올해 하반기 인사 폭이 클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23~24기 고위직 검사들이 검찰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 인사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좌천성 인사로 사직을 유도할 수도 있지만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버티기에 들어가는 고위직 검사들이 대거 나올 수도 있다 .
문재인 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사실상 임기가 1년여밖에 안 되는 김오수 총장 지명자는 이제 자신과 검찰총장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인 다른 후보자들과 1년 동안 검찰 내에서 동행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벌써부터 검찰 내에서는 차기 검찰총장이 누가 될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로 뒤숭숭하다.
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4명의 후보에 들지 못한 이성윤 서울지검장은 만약 동기나 후배인 구본선 광주고검장(23기), 배성범 법무연수원장(23기),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24기) 가운데 신임 검찰총장이 나왔다면 검찰을 떠나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20기에서 검찰총장이 나오면서 검찰을 떠날 이유가 사라졌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 관여돼 기소 위기에 놓여 있지만 이 고비만 잘 넘긴다면 충분히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다. 정권이 교체되지 않는다면 차기 검찰총장 자리가 더욱 유력해진다.
게다가 그는 대선을 앞둔 레임덕 시즌에 청와대와 여권을 향한 검찰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있다. 만약 기소가 되는 등 부침을 겪어 서울중앙지검장 자리가 흔들리게 된다면 대검 차장으로 자리를 옮겨 김오수 신임 총장과 호흡을 맞출 수도 있다. 법무부 차관 자리도 있다.
조남관 차장은 검찰 조직 안정화를 위한 적임자라는 평을 받고 있어 정권이 교체돼도 차기 총장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사진=이종현 기자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24기) 역시 충분히 차기 검찰총장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다. 전북 남원 출신인 조 차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 사정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내는 등 윤석열 전 총장 징계 사태 당시 공개적으로 징계 청구 철회를 호소하기 전까지는 현 정부와 가까운 검찰 인사로 분류돼 왔다.
게다가 조남관 차장은 검찰 조직 안정화를 위한 적임자라는 평을 받고 있어 정권이 교체돼도 차기 총장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법조계에서는 하반기 검찰 인사에서 조남관 차장이 좌천돼 검찰을 떠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으로 분류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