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일단락됐지만 ‘지역주민과 상생’ 내세운 사업 정체성엔 의문 남아
서울 창신동 사회주택 건설 현장과 토지가 맞닿은 뒷집 대문 앞에서 집주인인 심 아무개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공사 현장과 맞붙은 담장에는 빨갛게 래커칠이 돼 있고, 측량을 표기하는 줄은 심 할머니의 집 대문 안쪽을 넘어 에어컨 실외기에 매달려 있었다. 심 할머니의 옆집에 사는 임 아무개 씨의 집 벽에도 측량용 나사가 박혀 있다. 임 씨는 사회주택 건설 과정에서 비롯된 지속적인 갈등과 관련해 여러 기관에 민원 글을 올려 왔다. 창신동 사회주택은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토지를 매입한 뒤 민간의 사회적 기업에 토지를 임대해서 사업을 맡기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다.
서울 창신동 사회주택 건설을 두고 주민들과 잡음이 일기 시작한 것은 철거 작업이 시작된 2020년 10월부터다. 사회주택 신축을 위해 원래 있던 건물을 허무는 과정에서 인접한 임 씨와 심 할머니의 건물 일부가 파손됐다. 사진=이종현 기자
#철거부터 측량까지, 갈등의 연속
창신동 사회주택 건설을 두고 주민들과 잡음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20년 10월, 철거 작업부터였다. 사회주택 신축을 위해 원래 있던 건물을 허무는 과정에서 인접한 임 씨와 심 할머니의 건물 일부가 파손된 것. 이때부터 임 씨는 수차례 시행사인 사회적 기업 측에 연락을 취했다. 거듭된 통화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시행사에 피해 사실을 담은 내용증명을 보냈고, 그제야 ‘철거업체 측으로 청구하라’는 공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임 씨는 보상비를 받았지만 심 할머니는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으며 관련 절차도 잘 알지 못해 자비로 철거 과정에서 무너진 보일러실 측면을 보수했다.
심 할머니와 임 씨에 따르면 측량을 하며 허락 없이 심 할머니의 집 대문 안에 있는 에어컨 실외기에 끈을 달았고, 임 씨의 건물 구석에도 측량용 나사를 박았다. 사진=이종현 기자
임 씨와 심 할머니는 ‘철거 협박’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측량 결과 두 집이 사회주택 부지의 토지 경계를 침범했다는 이유에서다. 심 할머니는 일련의 과정이 ‘협박’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벽에 래커칠을 한 것에 대한 보상 요구를 현장 소장이 거절한 데다 계속해서 대문 안까지 들어오며 기한 내 철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시공사 측이 심 할머니와 임 씨에게 보낸 내용증명에도 ‘미 철거시 현장에서 철거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장 소장은 “잠겨있는 대문을 열어주셔서 들어가 대화를 나눴고, 심 할머니가 집 안까지 들여보내줘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며 “협박이 아닌 협의였다”고 답했다. 측량에 대해서도 진행 전에 주민들에게 입회 의사를 물었다고 덧붙였다.
심 할머니와 임 씨는 수십 년 동안 살아온 곳에 대한 철거 요구가 부당하며, 래커칠과 관련해선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입장이다. 심 할머니는 “1988년도 올림픽 할 적부터 등기하고 살던 집”이라며 “답답하다”는 심경을 전했다. 임 씨는 래커칠과 관련해 현장 소장을 재물손괴로 고소한 상태다.
계속 갈등만 심해지던 상황은 최근 어느 정도 해결됐다. 임 씨는 SH, ‘민주주의서울 플랫폼’ 등에 거듭 관련 민원을 제기했으며 최근 답변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성배 서울시의회 의원이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 의원은 4월 26일 시의회에서 창신동 사연을 사진과 함께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에게 질의했고, 서울시 측은 민법상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SH, 시행사, 시공사 측과 해결을 위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해결은 빠르게 진행됐다. 시공사 대표는 심 할머니를 만나 문제에 대해 듣고 사과했다. 시공사 대표는 “할머니의 사연과 이야기를 들어보고 일부 시정하기로 했다”며 “할머니 집 보일러실을 철거하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를 수정하기로 시행사와 협의했다”고 전했다. 측량 상황만 보고 접근했을 때와는 다른 결론을 내게 되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래커로 칠해진 부분에 대해서도 며칠 내로 원상복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갈등은 일단락 됐지만…
사회주택 사업 시행사도 창신동의 갈등 상황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공사, SH와는 달리 현장을 직접 찾아 주민들을 만나보지는 않았다. 임 씨는 기존 건물 철거 문제가 불거진 2020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시행사 대표와 연락이 닿기를 원했으나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시행사 대표는 “직접적으로 철거를 담당하고 보상할 수 있는 곳이 철거 업체이기 때문에 해당 업체로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장에 직접 가서 주민들과 만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이번에는 관련된 기관이나 업체가 많아 소통 채널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합의 하에 대표가 현장에 방문하게 됐다”며 “주민들이 직접 만나 이야기하기를 원한다면 현장에 방문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측량 과정에서 심 할머니와 사회주택 부지가 공유하던 담벼락에 ‘60cm 뒤로’ 등이 래커로 표기돼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창신동 사례처럼 일어나는 현장 갈등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SH 관계자는 “시공사와 직접 계약 관계가 아니므로 (공사 현장에 대한) 직접적인 권한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최대한 주민의 안전을 우선해달라고 부탁드렸고, 비슷한 일이 재발될 경우에도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내부에서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건의 해결과는 별개로 사회주택의 정체성이 훼손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사회주택이란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주거 관련 사회적 경제주체에 의해 공급되는 민간임대주택’이다. 창신동에 지어질 사회주택의 경우 입주자뿐 아니라 ‘지역주민’이 함께 이용 가능한 공간을 조성하고 커뮤니티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 내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주민과의 갈등이 몇 달 동안 지속됐다는 점에서 ‘지역’과 ‘약자’를 주된 가치로 삼는 사회주택과 그 사업자인 사회적 기업의 행태를 두고는 의문의 시선이 뒤따른다. 이성배 시의원은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집을 지으려 오랫동안 살아오신, 더 약자일 수 있는 할머니와 같은 분들이 내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차례 민원 글을 온라인상에 올린 임 씨 또한 ‘민주주의서울 플랫폼’ 게시물에서 지역주민이 배제된 사업 형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임 씨의 해당 게시물은 4월 29일 현재 시민들로부터 377개의 ‘공감’을 얻었다.
김영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