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단죄하는 악인” 공권력에 대한 불신 반영…“부지불식간 복수 정당성 심어줘” 비판론도
tvN ‘빈센조’의 빈센조(송중기 분)는 악인이다. 이탈리아 마피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감금, 폭행, 협박을 넘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사진=tvN ‘빈센조’ 홈페이지
#악을 이기는 악에 열광하는 세상
빈센조는 악인이다. 이탈리아 마피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감금, 폭행, 협박을 넘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CF 제안이 안 들어온다”며 톱스타들이 꺼렸을 만한 인물이지만 한류스타 송중기의 컴백작으로 주목받았다.
역시 15% 안팎의 시청률을 거두고 있는 SBS ‘모범택시’ 역시 사적 복수가 주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을 대신해 가해자들을 처벌해주는 택시 운수업체의 이야기가 주된 골자다. 그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악당들을 처단하고 사설 감옥까지 운영하며 사회로부터 그들을 격리시킨다.
‘마우스’는 더 극단적이다. 사이코패스 유전자 검사를 갖고 태어난 순경 정바름(이승기 분)은 거듭되는 살인 충동을 억제하기도 어렵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는 그는 결국 살인자 등 사회악을 없애기로 마음먹는다.
SBS ‘모범택시’도 사적 복수가 주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을 대신해 가해자들을 처벌해주는 택시 업체의 이야기가 골자다. 사진=SBS ‘모범택시’ 홈페이지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그들이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힘 있는 자들에게 상처 입은 약자들을 보호해준다는 명분 때문이다. ‘모범택시’ 무지개운수의 사훈은 로마서 12장 21절에서 따온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다’다. 그들은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대신 해결해 드립니다’라고 쓴 명함을 쓰고, 이를 받은 피해자들은 “복수를 원하냐”는 그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를 대중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현실 세계의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염증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누군가를 해하는 역할은 배우 입장에서는 마뜩지 않다. 하지만 송중기, 이제훈, 이승기 등 톱스타들이 이런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충분히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며 “결국 판타지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중기 역시 ‘빈센조’ 종방 인터뷰에서 “나쁜 인물에 대한 지지와 공감이 좀 헷갈리기도 했다”며 “하지만 현실에 악랄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어두운 영웅에게 시청자들이 통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극악무도한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소신을 밝혔다.
#모방 범죄 위험은 없나
사적 복수를 소재로 담은 드라마들에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서 법망을 피해가는 권력자들을 익히 봐왔기 때문이다. ‘빈센조’에서 유명 로펌이 법적 지식을 활용해 의뢰인인 재벌 2세의 죄를 감싸는 모습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돈의 유무, 유능한 변호사의 고용 여부에 따라 형량이 크게 달라지는 모습은 대중에 큰 좌절감을 줬다. 사람에 따라 같은 죄의 무게가 달랐기 때문이다.
tvN ‘마우스’의 순경 정바름(이승기 분)은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는 그는 결국 살인자 등 악인을 없애기로 마음먹는다. 사진=tvN ‘마우스’ 홈페이지
빈센조는 자신을 믿어달라는 검사에게 한 면이 썩은 사과를 들고 이렇게 말한다. “여기 사과가 하나 있다. 이쪽은 썩고, 저쪽은 썩지 않았다. 반은 썩고, 반은 먹을 만하다. 이 사과는 썩은 사과일까, 아닐까. 우린 반쯤 먹을 만한 사과가 아니라 ‘썩은 사과’라 한다.” 이는 현재 검찰에 대한 불신을 풍자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하지만 문화 콘텐츠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부지불식간 사적 복수의 정당성을 대중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12월 아동을 무참히 성폭행해 수감됐던 조두순이 출소하자 온갖 유튜버들이 교도소와 조두순의 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유튜버까지 가세해 “조두순을 직접 벌하겠다”고 하자 네티즌은 열광하고 그들이 내보내는 실시간 동영상을 지켜봤다. 하지만 폭력, 고성방가, 경찰 업무 방해 등으로 8명이 입건됐다. 조두순 집 근처 주민들은 불편함을 호소하는 민원을 잇달아 제기했다. 사적 복수는 이루지 못한 채 애먼 피해자들만 양산한 모양새다.
‘모범택시’ 제작발표회에서 이제훈은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나쁜 놈들을 단죄한다. ‘다크 히어로’라는 설정이라 배트맨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트맨 역시 결국은 만화책이나 영화 속 주인공일 뿐, 실존 인물은 아니다. 개개인이 모든 정보를 알고 완벽한 판단을 내릴 수 없기에 법이 존재하고 사법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뛰어넘겠다는 설정은 작품 속에서나 가능할 뿐, 실제로는 범법 행위일 뿐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