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1위 시절과 입장 변화 지적 나올 듯…이낙연 측 “지도부가 결정할 문제” 공 넘겨
5월 17일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바이든 시대 동북아 전망과 한국의 역할’ 심포지엄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88조는 “대통령 후보자 선출은 대통령 선거일 전 180일까지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차기 대선후보를 내년 3월 9일 180일 전인 오는 9월 초까지는 확정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경선 연기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친문계 의원들이 경선 연기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서더니, 김두관 이광재 박용진 의원 등 잠룡들이 다시 제기하고 있다.
이광재 의원은 5월 20일 “시합을 앞두고 경기 규칙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고 본다”면서도 “(경선 연기는) 결국 당 지도부와 1위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결심에 달린 문제”라고 공을 넘겼다. 박용진 의원은 “당 지도부가 후보자들 간 의견이 합의된 뒤 결정한다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며 “대선기획단을 하루 빨리 마련하고 일정을 변경해야 하면 변경하고, 아니면 기존 일정에서 세게 붙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당 지도부의 빠른 결단을 촉구했다.
반면 여권 내 대선주자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 측에서는 경선 연기에 대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는 5월 12일 한 정책 토론회에서 경선 연기론에 대해 “원칙대로 하면 제일 조용하고, 원만하고, 합당하지 않느냐”며 “당헌에 따라 경선을 치르는 방식이 바람직하고 내부 잡음도 없을 것”라고 밝혔다.
이낙연 전 대표는 당 지도부가 결정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전 대표는 5월 1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원칙은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당내에서 (경선 연기) 논의가 나오고 있으니 지도부가 빨리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운동선수들한테 시합 규칙을 물어보면 안 된다”며 “경선 일정 조정을 후보들에 맡기는 것 자체가 썩 온당한 태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낙연 전 대표는 올해 초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제기했다가 역풍을 맞으며 지지율이 급감, 현재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한 자릿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전 대표 입장에서도 경선을 늦추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가 경선 연기를 주장하기에는 힘든 속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는 지난해 8월 ‘20대 대선 후보자 선출 규정’ 관련 특별당규를 제정했다. 당시에도 당헌에 정해진 대선 180일 전 후보 선출 시한을 연기하는 내용을 검토했다. 180일 전이 아닌 100일 전으로 변경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해찬 당시 당대표는 “먼저 대선후보를 확정했을 때 본선에서 승리했다”며 당헌 유지를 고수하는 입장을 냈다. 안규백 당시 전준위원장 역시 “대선 100일 전 후보를 선출할 경우 2021년 가을 정기국회와 일정이 겹쳐 국회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선 연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특별당규 제21조는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선거일은 당헌 제88조 제2항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당무위원회의 의결로 정한다”고 담았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특별당규는 지난해 8월 29일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함께 투표가 진행돼, 개정이 이뤄졌다.
당대표로 출마한 이낙연 당시 후보는 이러한 경선 룰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당시 이낙연 후보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40%대를 기록하며, 여야 후보군을 통틀어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 전 대표 입장에서는 경선이 빨리 치를수록 유리했던 셈이다. 이에 당시는 경선 연기 주장이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한 견제 심리가 발동한 것으로 해석됐었다.
따라서 이 전 대표가 이제 와서 경선 연기 주장하면 본인 유·불리에 따라 입장 바뀐다는 역풍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해 8월 당대표 후보로서 경선 연기 논의에 대해 입장을 밝힐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여론조사 압도적 1위로 경선을 일찍 치르는 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경선 연기를 주장하면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원론적 입장밖에 못 밝히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이낙연 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4·7 재보궐 선거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기 위해 전당원 투표를 통해 당헌을 개정한 바 있다. 당시 전체 투표율은 26.35%를 기록, 3분의 1 이상이라는 당헌상 유효 투표에 미치지 못해 효력 논란이 일었다. 더욱이 비판을 감수하며 후보를 낸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참패를 기록하면서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었다. 이 전 대표 입장에서는 경선 연기를 위해 다시 당헌 개정을 주장하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낙연 전 대표 측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이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이미 당헌이 있고, 이에 대한 변경은 당 지도부가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 이 전 대표 입장의 요지”라며 “지난해와 입장이 배치돼 곤란하다, 곤란하지 않다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5월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을 위한 국회 포럼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당 지도부는 현행 경선 일정 유지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송영길 대표는 “당헌·당규상 경선룰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지도부는 단 한 번도 원칙을 어떻게 하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면서도 “1등 후보부터 대부분의 후보가 건의하면 당에서 바꾸는 작업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여지를 두는 듯한 발언을 했다.
당 지도부와 대선주자들이 경선 연기에 대해 서로에게 공을 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경선 연기가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재명 지사 측 관계자의 말이다.
“지도부는 후보 간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지면 논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재명 지사의 입장은 단호하다. 당헌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합의는 이뤄질 수 없다. 경선 연기를 말하는 이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일정대로 대선후보 경선을 치르면 흥행이 어렵다고 하는데, 11월까지 집단면역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또한 범야권은 대선주자 선정을 위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안철수 대표 등과 단계별 단일화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럼 민주당은 어느 일정에 맞춰 진행해야 하는지도 결정하기 힘들다. 정해진 경선 일정대로 갈 수밖에 없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