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통증 약 달라” 병원 25곳서 처방…유통·투약 10대 42명 검거
5월 20일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 매매 등의 혐의로 A 군(19)을 구속하고 같이 마약을 투약한 10대 4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A 군은 2020년 6월부터 지난 4월 말까지 부산·경남의 병원과 약국 등에서 펜타닐 패치를 허위 처방받아 이를 다른 10대들에게 판매하거나 직접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친구나 선후배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펜타닐은 모르핀과 같은 아편 계열의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다. 진통을 억제하는 효과는 모르핀의 80배에 달한다. 주로 패치 형태로 유통돼 말기 암 환자나 디스크 수술 환자 등 장시간 지속적인 통증을 느끼는 환자들이 1매당 72시간 동안 피부에 붙여 사용한다. 내성과 의존성이 빠르게 생기고 호흡기능 저하 등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헤로인 대용 마약으로 자리 잡아 매년 2만~3만 명이 사망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고 있다.
문제는 악용될 위험이 있는 마약성 의약품을 청소년들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펜타닐 패치는 의사 처방만 있으면 합법적 틀 안에서 구매할 수 있다. 검거된 42명 가운데 상당수가 일반 병·의원에서 “디스크 수술을 앞두고 있다” “허리 통증이 심하다” 등의 거짓말로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았다. 타인의 명의를 도용하거나 주운 신분증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병·의원에서 신분증 대조와 같은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10대들은 부산과 경남 병원을 다니며 펜타닐 패치를 처방해주는 곳을 SNS 메신저 등을 통해 공유했다. 약을 처방해준 병원은 25곳에 달했다. 이들은 이렇게 구한 펜타닐 패치를 은박 호일에 올려 열을 가한 뒤 들이마시는 방식으로 투약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병원들이 고의로 펜타닐 패치를 처방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법상 마약성 의약품 처방 시 의사가 환자에게 주의를 줄 의무는 있으나, 환자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약을 요구할 경우 처방은 의사의 재량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의사회·약사회 등에 청소년 상대 마약성 의약품 처방에 주의를 당부하고 식약처에는 마약성 의약품을 처방할 때 봉인 여부 및 과거 병력 확인을 의무화하도록 제도 개선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소년들이 마약에 접근할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사전 예방 교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원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경남지부장은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이번 사례도 청소년들이 SNS를 통해 친구들과 마약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거래하는 형태였다”며 “마약류 처방 시 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고 학교 내 마약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0대 사이에서 진화하는 수법을 사전에 파악하고 막기 위해서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를 대상으로 현실적인 교육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은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