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직권남용도 당장 수사 어려워…‘검찰 견제’ 위한 존재 필요성 입증에 집중하는 듯
하지만 공수처가 잇따른 입건으로 얻은 점도 있다. 9건의 사건을 모두 곧바로 수사하지 못하겠지만, 거꾸로 공수처의 수사 대상 및 범위를 대내외에 알렸다는 분석이다. 특히 4호부터 9호까지 검사 관련 사건들을 입건하면서 ‘검찰 비리 견제’를 위한 공수처 필요성을 보여줄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이다.
6월 16일 현재까지 공수처는 9개 사건을 입건했다. 입건해 사건 번호를 부여한 기준인데, 1·2호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특별채용 의혹, 3호는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의혹이다. 4호는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이고, 5호는 문홍성 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등 검사 3명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 6호는 광주지검 해남지청에 있는 현직 검사의 직권남용 의혹을 배당했다. 그리고 6월 초에는 7·8호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 고발 사건을, 또 부산 엘시티 수사 관련 검찰 부실수사 고발 사건을 9호로 입건했다. 같은 의혹에서 불거진 분리된 사건 접수를 고려하면 대략 7건이다.
하지만 공수처가 이를 모두 일제히 수사할 것이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공수처의 현재 수사 여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처장과 차장을 제외한 검사 정원이 23명인데 현재 10명은 공석이다. 처장과 차장을 제외한 검사 13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법무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이 교육 후 복귀해도 공소 유지를 위한 부서를 제외한 수사 가능 부서(2부와 3부) 소속 검사는 9명뿐이다. 입건한 사건 9건을 수사한다고 가정하면, 1명당 1건의 사건을 담당해야 한다. 입건만 했을 뿐, 곧바로 수사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심지어 검사와 손발을 맞추는 수사관도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해 경찰에 추가 파견을 요청하기도 했다.
숙련된 검사와 수사관으로 구성된 서울중앙지검의 반부패수사부는 보통 1년에 사건을 크게 2건 정도 처리한다. 이마저도 혐의 입증을 위한 내사가 잘 이뤄진 경우이고, 만일 언론 등에서 의혹이 제기돼 시작되는 경우 압수수색과 소환 조사, 구속 및 기소까지 6개월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미 공수처 1호 사건으로 입건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관련 의혹은 5월 18일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압수물 분석 등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공수처가 추가로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에 착수할 여력은 1건도 채 안 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는 “사건 성격이 단순하다고 하더라도, 빠른 시일 안에 사건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4~5명의 검사가 한 사건에 주말 없이 쉬지 않고 수사를 진행해야 가능하다”며 “이 가운데 검사 1명을 다음 사건 수사의 기초 자료 확보 등을 위해 제외한다고 하면 사건당 최소 한 달에서, 많게는 네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공수처는 왜 수사 여력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사건 번호를 부여하며 입건을 하고 있는 것일까. 법조계는 공수처 존재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함이라고 풀이한다.
검찰은 고소나 고발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형제 번호’를 부여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수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공수처는 고소·고발 사건이 들어오면 직접 수사 필요성을 검토한다. 대부분의 사건은 다시 경찰이나 검찰로 이첩하지만, 직접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공제 번호를 붙이고 입건한다. 때문에 9건의 입건은 공수처의 시선에서 ‘중대한 범죄’라고 볼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반영된 것이다.
실제 1·2호 사건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혜채용 의혹을 제외하곤 모두 전·현직 검사들이 수사 대상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건 관련 수사를 1호 사건으로 낙점했다가, 정치적으로 비판을 받은 뒤 ‘검찰 견제’를 위한 공수처 필요성에 집중하고자 했다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공수처 소식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공수처가 원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건을 하고자 했으나, 내부에서 다른 의견들이 나와 검찰 외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희연 사건을 놓고도 적절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그 후 검사들의 비위나 수사 과정의 의혹으로 방향을 돌린 것은 궁극적으로 공수처가 처음 탄생하게 된 계기인 ‘검찰 권력 견제’를 추구하겠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검찰 고위직 관계자도 “사건 내용을 모두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아는 내용이 사건의 전부라면 일부 사건들은 무혐의가 나올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수처도 사건 내용을 살펴봤을 텐데 그럼에도 입건한 것은 ‘검찰은 확실하게 견제하겠다’는 것을 알리려는 공수처의 판단이 들어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시점, 윤석열 사건
하지만 검사 사건만 계속 입건하는 과정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건을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선정한 것을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감찰 방해 의혹은 법무부 징계위원회에서 무혐의 결정을 내렸던 사안이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추미애 법무부도 무혐의 내렸는데…’ 윤석열 향한 공수처 양날의 검). 윤 전 총장이 징계 복귀 뒤 사건을 배당하는 과정에서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직무 배제됐다”며 반발하기도 했지만, 사건 자체만 봤을 때는 입건 자체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대충 사건만 훑어봐도 무혐의로 판단하는 게 상식적인 사건인데, 이를 입건한 것은 정치적으로 윤석열 전 총장이 더 입지가 확대될 때 공수처의 칼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정치적 독립성을 지향하며 출범한 공수처가 오히려 정치적으로 판단한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어 “과거 검찰이 정치인 관련 사건을 캐비닛에 가지고 있다가 집권 권력 및 검찰의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선택해 수사한 것으로 비판받았는데 지금 공수처는 제2의 검찰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사건 입건보다는 공수처가 조희연 교육감 사건에 이어 2호 사건을 무엇으로 골라 공개수사에 나서는지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