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유언 따르기로 합의…“동교동 사저 지자체가 사들여 기념관 조성” 추측
김대중평화센터 등에 따르면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김홍업 이사장, 삼남 김홍걸 의원, 장남 고 김홍일 전 의원의 부인 윤 아무개 씨는 서울 동교동 사저에서 만나 김 전 대통령 부부가 남긴 유산 문제에 대해 고 이희호 여사의 유언을 따르기로 합의했다.
김성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도 6월 10일 이희호 여사 2주기 추도식에서 “6월 9일 저녁 김 전 대통령의 세 아들(측)이 동교동 사저에 모여 화해하고 이희호 여사 유언대로 사저를 기념관으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성재 이사장은 “그동안 유언 집행 과정에서의 견해차와 갈등이 유산 싸움처럼 비쳐 자녀들이 곤혹스러워했고 많은 국민들이 염려했다”며 “앞으로 모든 진행은 김홍업 이사장이 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분쟁의 발단은 이희호 여사가 2017년 2월 작성한 유언과, 이에 따라 재산을 처분하겠다고 삼형제가 서명한 ‘확인서’ 때문이다. 유언장에는 노벨평화상 상금 8억 원을 김대중기념사업회에 전부 기부해 김대중 대통령 뜻을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동교동 사저를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동교동 사저를 지자체나 후원자가 매입해 기념관으로 사용할 경우 보상금 3분의 1은 김대중기념사업회에 기부하고, 나머지 3분의 2는 삼형제가 균등하게 상속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삼형제는 “이희호 여사 유언 취지를 받들어 성심성의를 다하여 유지하고 사용할 것임을 합의한다”는 합의서도 작성하고 날인했다. 하지만 김홍업 이사장 측은 김홍걸 의원이 생전 이 여사의 뜻과 형제의 약속을 어기고 유산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동교동 사저 부동산등기부를 보면 김홍걸 의원은 2019년 6월 10일 상속에 따른 소유권 이전을 이희호 여사 별세 4개월 후인 같은 해 10월 29일 접수했다. 또 이 여사가 김 전 대통령 서거 후 하나은행에 예치해놓았던 노벨평화상 상금 8억여 원도 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홍업 이사장은 같은 해 12월 김홍걸 의원을 상대로 동교동 사저에 대한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김대중기념사업회(이사장 권노갑)도 김 의원에 “인출해간 노벨평화상 상금 8억 원을 재단에 돌려달라”고 수차례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김홍걸 의원 측은 민법 규정을 근거로 본인이 이 여사의 유일한 법적 상속인이라 자연스럽게 상속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삼형제 중 첫째 김홍일 전 의원과 둘째 김홍업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과 첫째 부인 차용애 여사 사이 소생이고, 김홍걸 의원은 이희호 여사가 낳은 아들이다. 민법에 따르면 부친이 사망하면 전처 출생자와 계모 사이의 친족관계는 소멸, 계모자 관계에서는 상속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 사망 후 이 여사와 김홍일·홍업 형제의 상속관계는 이어지지 않았다.
분쟁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이희호 여사 1주기 추도식에서는 김홍업-홍걸 형제는 나란히 앉아서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따로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이후 1년간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2주기를 앞두고 형제 간 극적인 화해가 이뤄졌다. 형제가 합의에 이른 것은 동교동 사저 기념관 추진 등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김홍업 이사장과 김 의원 모두 사저를 기념관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런데 사저에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 등 법적 제약이 걸려있으면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서 김 의원은 김 이사장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법원에 이의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판단을 유지했다. 따라서 형제 간에 뜻을 모아야 동교동 사저 기념관 조성 추진이 가능했던 셈이다.
김 이사장은 “김홍걸 의원이 소유권을 이전하면서 문제가 불거지자 서울시가 가족 간 협의를 해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의원 측 관계자도 “김대중 전 대통령, 이희호 여사의 유지를 받들어 하루 빨리 기념관을 만들어 국민들께 돌려드려야 한다”며 “관련 담당자를 만나는 등 기념관 추진은 계속 진행해왔다. 동교동 사저 국가 문화재 등록을 위해 교수들이 실사까지 나와 둘러보고 갔다”고 전했다.
김홍걸 의원이 상속세 마련에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김 의원은 동교동 사저를 상속 받으며 세금 16억 원이 발생, 국세청에 5년에 걸쳐 분할 납부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공개된 국회공직자 정기재산변동신고 공개목록에 따르면 김 의원은 3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일부 상환했다. 하지만 예금은 2억 2313만 원에서 2234만 원으로 2억여 원이 감소했고, 금융채무는 9000만여 원이 늘어 9930만 원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 측은 상속세 납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회공직자 재산공개에서 노벨평화상 상금 8억여 원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형제들 합의에 따르면 노벨평화상 상금은 김대중 전 대통령 뜻을 계승할 수 있도록 사용돼야 한다. 김홍업 이사장도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노벨평화상 상금은 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도 생전에 노벨평화상 상금은 그 취지에 맞게 쓰여야 한다고 사용하지 않았다. 김 의원이 상금을 복원시켜놓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6월 김 의원 측 법률대리인 등은 기자회견에서 “노벨평화상 상금 중 일부가 상속세로 납부하는 데 사용됐다”고 밝혔다.
김 의원 측도 현재는 노벨평화상 상금이 남아있지 않다고 전했다. 김 의원 측 관계자는 “8억 원을 상속 받으며 이미 세금으로 절반을 냈다. 동교동 사저 상속세로도 사용됐다”며 “또 사저를 기념관으로 만드는 준비를 하면서 소방시설 등 설치 수리에 5000만 원 정도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올해까지는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는 쉽지 않다”고 고충을 표했다.
따라서 동교동 사저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매입 후 기념관 조성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매각금 중 김홍걸 의원 몫으로 다시 노벨평화상 상금을 충당한다는 것이다. 실제 앞서 기자회견에서 김 의원 대리인들은 “지자체가 기념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저를) 매입하면 다시 (상금을) 원위치시키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이번에 형제간 합의는 큰 틀에서만 논의가 오가고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앞으로 제반사항 진행은 김홍업 이사장이 직접 챙길 것으로 보인다. 김홍업 이사장 역시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김대중평화센터와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홍업 이사장은 “이번 문제가 형제 간 분쟁으로 그려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예가 실추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이번에 대화를 나눠보니 주변에서 일을 부추기고 확대시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