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부 땐 친이·친박 갈등 중재도…현 정부 들어 장관급 격상 논의됐지만 흐지부지
“10여 년 전 이준석 대표님하고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1박 2일 템플스테이를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10년 만에 거대 정당의 대표가 될 거라고 짐작 못 했습니다만 축하드리고요. 이 대표님이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기 때문에 또 결과적으로 큰 성과를 낳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이철희 수석은 예방 내내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연신 이 대표를 치켜세웠다. 그러면서도 이 수석은 “경쟁할 때는 치열하게 하더라도 정부와 대면할 때는 협력할 건 협력하고 소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좀 하고 마무리 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며 웃는 얼굴을 잠시 멈추고 내심을 전달했다. 청와대와 야당 간 가교 역할을 하는 정무수석의 고충이 담긴 발언이었다.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은 차관급으로 대통령의 정무 참모다. 대통령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정무수석은 정치적으로 조언을 한다. 청와대와 여의도를 잇는 정치 해결사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대신해 여야를 막론하고 소통한다. 여야 정치인들의 지역 숙원사업 등을 들어주는 창구 역할을 한다고 해서 ‘여의도 민원수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회의원을 주로 상대해야 하다 보니 보통 중량감 있는 전·현직 국회의원이 정무수석에 등용된다. 이명박 정부 때는 6명 정무수석 모두 전·현직 국회의원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초대 이정현 수석 후임으로 박준우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정무수석으로 발탁했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정통 외교 관료의 길을 걸어온 인사를 기용한 것은 전례가 없었다. 당시 박 전 수석은 과거 밤이면 폭탄주를 돌렸던 다른 정무수석과 달리 제3의 길을 모색했다. 하지만 여의도에선 ‘도대체 박준우가 누구냐’며 배척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고 한다. 결국 박 전 수석은 10개월 만에 사임했다.
정무수석은 대통령 복심으로 통한다. 정무수석은 대통령 신임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대통령에게 보고하면서 일을 추진할 경우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어 먼저 일을 처리한 뒤 사후 보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이철희 카드’는 문재인 정부 첫 ‘비문’ 정무수석이라는 점에서 눈에 띄는 인사였다.
정무수석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청와대와 여당 간 소통이다. 역대 정권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불협화음으로 정국이 얼어붙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어왔다. 대통령 의지가 담긴 정책일지라도 국회 입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국정 수행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무수석들이 당청 소통 창구 역할을 원활히 하지 못해 경질되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 조윤선 전 정무수석은 사상 첫 여성 정무수석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요 국정 과제로 삼았던 공무원 연금 개혁 추진 과정에서 당청 갈등을 막지 못하며 낙마했다.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한 시점이었다. 당시 공무원 연금 개혁이 국민연금과 연계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의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정무수석은 여당에서 벌어지는 내홍을 중재하는 역할도 맡는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년 7월 ‘세종시 수정안’ 부결 여파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내부에선 분당설이 나올 정도로 갈등이 최고조로 달했다. 그러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진석 전 국회사무총장을 정무수석으로 임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 전 수석에게 ‘친이계’와 ‘친박계’의 가교 역할을 하라는 특명을 줬다고 한다. 스스로 친이계도 친박계도 아닌 ‘JP계(김종필 전 국무총리)’라고 말해온 정 전 수석이었다. 정 전 수석은 여러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시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청와대 회동을 성사시킨 것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라며 “이후 친이와 친박의 갈등이 봉합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협력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정무수석은 때론 여당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내기도 한다. 이철희 수석 또한 6월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민주당은) 변화하기보다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닌지 그 지점을 반성해야 한다”며 “다양한 세대가 들어와서 자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게끔 해주고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해주고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해주는 게 맞는 방식인데 ‘내가 해 줄게’, ‘내가 더 선의를 갖고 내가 더 잘 아니까 내가 풀어줄게’라는 방식으로 하다가 결국 당사자들한테는 거부당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어 이 수석은 “진보라는 세력, 특히 민주당이나 이쪽 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혁신을 포기했을 때는 더 이상 진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핵심인 만큼 정무수석 말실수는 정권에 타격을 주기도 한다. 강기정 전 정무수석은 2020년 1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부동산 매매가 단순한 살 집을 만드는 게 아니라 거의 투기이기 때문에 투기적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매매 허가제까지 도입해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주장에 우리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부동산 투기꾼에겐 매매를 제한하자는 취지였지만, 매매 허가제 언급을 두고 거센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는 곧바로 검토한 적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또한 “(강 수석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야당의 공세를 막을 순 없었다.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눈과 귀를 의심했다. 주택매매 허가제가 무슨 날벼락 같은 말인가”라며 “집을 사려면 정부 허락을 받으라는 것 아닌가”라고 공세를 폈다. 유승민 전 의원도 “무식도 죄”라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 유인태 전 정무수석의 경우 기자들과 술자리에서 잘못 내뱉은 말이 보도되자 “내 입을 미싱으로 박아버려야겠다”거나 “엑스(X) 자가 쓰여 있는 마스크를 써야겠다”고 말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 때 정식으로 만들어진 정무수석은 노무현 정부 때 잠시 폐지됐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5월 “정치권에 대통령이 간섭하지 않고 필요한 접촉은 각 장관에게 맡기겠다”며 정무수석 자리를 없앴다. 정치권과의 막후 타협을 하지 않겠다는 노 전 대통령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참패하고, 야당인 한나라당이 압승하자 2006년 8월 2년여 만에 정무수석에 준하는 ‘정무팀’을 신설했다.
최근엔 차관급인 정무수석을 격상해 정무장관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까지도 나왔다.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20년 5월 문 대통령에게 정무장관을 신설해달라고 제안했고, 이에 문 대통령은 노 전 비서실장에게 “의논해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장관급으로 격상한다면 오히려 그에 따라 부대비용이 커지고, 의전 등의 문제로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논의가 지속되지 않았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