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주식 투자내역 공개, 알고 보니 ‘조작’…유사수신 등으로 피소, 피해액 200억 원 이상 추정
이 씨가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진 건 2018년 무렵이다. 매매일지를 계속 올리면서 정확한 타점에 저점 매수, 고점 매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꾸준한 수익을 인증했다. 이 씨는 ‘단 하루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손절매도 없다’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다른 종목 갈아타면 더 빨리 많이 벌 수 있으니 시간이 아까워 손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지만, 하루를 결산한 인증에는 수익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씨를 알게 됐다는 최 아무개 씨는 “2019년에도 손실을 전혀 보지 않아 주식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가끔 사기라며 저격을 당하기도 했지만, 해프닝으로 넘어갔다”며 “어쨌건 주식 투자하는 인스타그램 유저는 대부분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새롭게 뛰어든 ‘주린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지난 5월 이 씨가 주식 강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씨의 주식 강의 선언은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상하게 받아 들여졌다. 올 2월만 하더라도 이 씨는 “배우더라도 가르치는 사람 정도밖에 안 될 텐데 걔가 누군지 알고 배우겠느냐”며 “시간이 지나 알고 보면 (진리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내용이다. 그걸 돈 받고 가르치라면 난 못한다”고 올렸기 때문이다.
이 씨의 오프라인 강의는 무려 1회에 330만 원이었다. 이 씨가 강의 전 내민 계약서에 따르면 녹음이나 녹화도 불가능하다. 강의는 대구 한 호텔에서 약 4시간에 걸쳐 진행되며 끝나고 뷔페를 제공했다. 강의를 들은 익명을 요구한 수강생은 “이 씨의 말이 장황해서 잘 알아듣지 못했다”며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돌려받지 못했다”고 실망을 드러냈다.
지난 6월 19일 이 씨가 오프라인 강의를 한다는 걸 본 유튜버이자 투자자인 ‘소재한방’ 채널이 이 씨를 저격했다. 소재한방은 “이 씨가 ‘걔가 누군지 알고 배우느냐’고 한 게 얼마 전이다. 이 씨가 누군지 알기 위해 인증을 해 달라. 월별 손익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면 1000만 원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씨는 이 간단한 요구에 답이 없었다.
이 씨 팬들은 “이 씨가 왜 그런 요구에 일일이 반응해야 하냐”며 분개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의심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간단한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는 이 씨가 못 미더웠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7월 2일 갑작스러운 일이 터졌다. 이 씨 강연을 도와주거나 채팅방 관리를 하는 스태프들이 이 씨를 찾아가 홧김에 휴대전화를 빼앗아 이 씨 계좌내역을 확인했다. 그런데 항상 인증하던 ‘지지 않는 투자자’ 이 씨 계좌내역에는 1년 동안 17억 원을 손실 봤다고 기록됐다. 스태프들은 이 계좌내역을 이 씨가 운영하던 텔레그램에 올려버렸다.
채팅 참여자들은 말 그대로 멘붕이 됐다. 채팅 참여자 중에서는 돈을 관리해주겠다는 이 씨에게 돈을 맡긴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강연뿐만이 아니라 고리 이자를 약속하며 투자를 유도했다. 알고 보니 이 씨의 하루도 잃지 않는 계좌는 포토샵으로 만들어진 조작된 내역이었다. 앞서의 최 씨는 “인스타그램 지인들끼리 얘기해보니 돈 맡긴 사람이 한둘이 아니더라. 2018년 이 씨가 내게도 돈 맡기라는 제안을 했는데 수상해 보여 거절했다. 돈을 맡긴 사람도 너무 많은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놀라운 점은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팬이나 친구들뿐만 아니라 오랜 주변 지인들에게도 투자를 받았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 아무개 씨는 이 씨와 현실에서부터 알던 사이다. 정 씨는 “이 씨가 돈을 맡기라는 말은 인스타그램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2014년부터로 안다. 이 씨는 친구나 지인의 지인, 가족의 지인에게 원금을 보장하면서 돈을 맡기면 내가 관리해주겠다고 말했다. 이율도 다 달라서 월 2%에서 많게는 월 20%도 있었다. 지금 보면 급하게 막을 때는 고이율을 약속하며 투자라고 받아 간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주변에 이 씨에게 오래 맡긴 사람은 10억 원이 넘는 사람도 있다. 이 씨가 월세 살고 전세 보증금 맡기면 이득이라고 해서 맡긴 사람도 있다. 항상 지인들에게 ‘자리가 하나 있는데 들어올래?’라고 했다. 한참을 의심하다 돈을 굴리며 오랜 기간 운영해오고 있어 믿고 맡기게 됐다. 그래도 기분이 안 좋아서 일부 ‘급하게 쓸 데가 있다’며 돌려받았는데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정 씨는 “이 씨 주변은 돈 맡긴 사람이 워낙 많아 초토화 상태”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 말을 종합해보면 이 씨가 관리하겠다며 가져간 돈은 2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정 씨는 “올 2분기에 가져간 돈만 5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추측했다. 피해자들의 관심은 이 돈은 어디로 갔는지다. 정 씨는 “이 씨가 본격적으로 명품 백을 사거나 사치를 시작한 게 2019년”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말을 종합해보면 이 씨는 명품이나 금붙이를 좋아해 과도하게 사들였고 차도 BMW i8이나 벤츠 S클래스 등을 탔지만 그 많은 돈을 다 쓸 정도는 아니었다. 현재 이 씨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피해자들은 이 씨 재산 가운데 현금화해서 피해 회복에 쓸 수 있는 재산은 최근 이 씨가 제주도에 매입한 별장과 차량 정도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들 일부는 이 씨를 대구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나머지 피해자들도 곧 이 씨를 상대로 사기 혐의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 사건이 수면에 오르기 전 사건을 인지해 수사 중이었고 현재 이 씨의 은닉 자산이 있다고 보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피해자들은 “이 씨뿐만 아니라 공범이 더 있다. 최소한 피해자 돈으로 호의호식한 가족들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이다. 7월 이 씨는 피해자들에게 계좌에 돈이 아예 없다며 통장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은 이 씨가 “2억~3억 원만 있으면 매매를 통해 재기할 수 있다”며 돈을 달라고 한 카톡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편 일요신문은 이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