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후 “드라마 속 아이유 되길” 가해자들 소년부 송치…피해자 “사과도 합의도 없었는데…” 분노
지난해 5월 청학동 서당에서 탈출하듯 퇴소한 학생 A 군의 말이다. A 군은 최근 국민적 공분을 샀던 청학동 서당 엽기 폭행의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다. 지난해 2월 남학생 두 명인 B 군과 C 군이 A 군에게 체액을 먹이거나 소변을 뿌리고 유사성행위를 하는 등 엽기적으로 괴롭혔다. 가해학생들은 입을 양말로 틀어막고 항문에 립스틱과 변기솔 손잡이를 넣기도 했으며, 뺨을 때리는 등 상습 구타도 일삼았다.
A 군은 청학동 엽기 폭행 피해자 가운데 가장 먼저 고소했고 창원지검 진주지청은 가해 학생 2명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2020년 12월 기소했다. 지난 7월 8일은 가해 학생들의 판결이 선고되는 날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뜬금없이 드라마 ‘나의 아저씨’ 얘기가 나와 피해자를 분노케 했다.
이날 창원지법 진주지원 형사1부 정성호 부장판사는 기소된 가해자들을 법정구속하고 창원지법 소년부로 송치했다. 가해자들이 소년부로 송치되면 형벌이 선고되는 게 아니라 보호처분이 내려지게 되는데 보호처분은 형사처벌에 해당하지 않아 전력도 남지 않게 된다. 이 사건 피해자들에게 법률적 조언을 하고 있는 박재천 변호사는 “6호 처분은 ‘아동복지법’ 상의 아동복지시설이나 소년보호시설 감호위탁(6개월 이내, 6개월 연장가능)이다. 가장 무거운 처분인 10호 처분은 ‘장기 소년원 송치’인데 2년 이내의 기간 동안 소년원에 송치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선고기일에서 판사는 주로 판결문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날은 독특하게 판결이 끝난 뒤 장 부장판사가 개인적인 얘기를 꺼냈다. 정성호 부장판사는 “소년범 사건을 접하면 엄벌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성장 환경, 가족 관계 등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도적 관심과 보살핌을 제대로 하지 못한 어른의 잘못도 있다”며 “가족 해체, 학교폭력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이들에게 공감하고 따뜻한 손 내미는 어른이 있다면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부장판사는 ‘나의 아저씨’를 예로 들었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 소년들도 비행사실을 탓하는 대신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며 상처를 치유한다면 아이유(이지은)처럼 될 수 있다”면서 “모든 아이가 이선균 같은 어른을 만나서 뉘우치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고 중형을 선고하는 게 과연 적정한지 의문이다. 교화해줄 수 있는 어른을 만나면 좋겠다”면서 소년부 송치 배경을 설명했다.
정 부장판사가 ‘나의 아저씨’ 속 아이유를 언급한 배경에는 가해자들 가정환경이 드라마 속 아이유와 비슷한 면도 작용했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정 부장판사가 ‘이 둘의 가정환경이 불우하며 부모님이 이혼하고, 조부모 밑에서 자라서 가정환경이 안 좋았다. 그래서 청학동까지 가게 됐고 비행청소년과 어울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긴급지원대상자발생확인서’를 제출했는데 가구에 위기상황이 발생해 생계유지 등이 어렵게 돼 긴급 지원이 필요한 경우임을 증명하는 문서다. 이 문서가 소년부로 가는데 유리하게 작용했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극 중 아이유가 맡은 캐릭터 ‘이지안’도 조모와 단 둘이 어렵게 살다 박동훈(이선균 분)을 만나 새 삶을 살아간다. 다만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은 아버지와 함께 수억 원대 아파트에 살고 있어 아이유와 같은 상황이라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재판장에서 이 얘기를 들은 A 군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A 군은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친다거나 사과 한마디 한 적 없다. 그런데도 판사는 가해자만 다독여주고 피해자는 제대로 된 위로를 듣도록 하지 않았다”면서 “‘나의 아저씨’ 얘기하는데 꿈인 거 같아 몸을 때렸는데, 아무리 때려 봐도 아팠다. 용서도 구하지 못했고, 합의도 없었다. 엄벌을 바란다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왜 판사가 용서해주나”면서 억울함을 드러냈다.
박재천 변호사는 “일반적인 학교폭력 사건이나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아무런 합의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이 내려지는 소년부 송치결정을 하였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어 보인다. 특히 이 사건은 평범한 사건이 아니고, 성인범죄와 비교하더라도 피고인들의 범죄행위가 심각함에도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 군은 장기간 엽기적인 폭력에 노출돼 정신적인 상처를 크게 입고 현재도 치료 중이다. A 군은 경찰 수사 당시 진정이 안 되고 이성을 찾기 힘들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제대로 진술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인 상처를 입었다. 또한 A 군은 이전 공판인 5월 27일 재판장에서 가해자들의 얼굴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아 그대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A 군 부모는 화를 참지 못했다. A 군 부모는 “어떻게 생각을 해봐도 ‘나의 아저씨’는 앞뒤가 안 맞는다. 판사가 할 소리가 아닌 것 같다”면서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고 폭행 가해자에게만 따뜻했다. 난동이라도 부렸어야 하는데 억울함이 가시지가 않는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청학동 서당 피해자들은 걱정이 앞선다는 반응이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다른 가해자들도 솜방망이 처벌이 나올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또 다른 청학동 서당 피해자 D 씨 어머니는 “A 군 사건은 유사 성행위 등 엽기적인 내용이 많은 사건인데 소년부로 송치됐다. 서당 원장이나 또 다른 가해자들도 또 다른 드라마 얘기하면서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는 것 아니냐”면서 걱정했다.
서당 피해자 E 씨 어머니도 “대부분의 청학동 사건이 창원지법 진주지원에서 열리는데 판사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진주지원 전체 판결 성향이 비슷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얘들을 너무 어리게 순진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의 엽기적이고 악마 같은 괴롭힘과 폭행을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B 군에게 단기 5년~장기 7년, C 군에게 단기 5년~장기 6년을 구형한 바 있어 10호 처분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항고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박재천 변호사는 “검사가 구형한 내용과 비교하면 매우 경미한 처분을 받게 끝나게 되는 셈인데, 이 점만 보더라도 재판부의 소년부 송치 결정이 많은 논란을 가져올 만한 소지가 있다고 보인다”면서 “재판부의 소년부 송치 결정은 항고가 가능하다. 검사의 항고가 인용되면 다시 형사법원으로 이송되어 제1심 형사재판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