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누르고 쏘팔코사놀배 2연패 달성…변상일과 GS칼텍스배·명인전 우승 놓고 격돌
조훈현 9단은 과거 3차에 걸쳐 전관왕 위업을 이뤘었다. 1980년 국내 9개의 모든 타이틀을 거머쥐며 제1차 전관왕, 1982년 10관왕에 오르며 2차, 그리고 1986년 11관왕으로 3차 전관왕 고지를 밟았다. 이는 이창호 9단도, 이세돌 9단도 도달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경지였다.
기전 수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신진서의 현 페이스도 과거 조훈현 9단이나 이창호 9단에 못지않다. 얼마 전 쏘팔코사놀배 2연패를 달성했고 GS칼텍스배 결승에 올라있으며, 명인전에서도 패자부활조에서 다시 살아나 결승에 진출해있다. 또 용성전에서도 4강에 올라있어 또 하나의 타이틀 추가가 가능한 상황이다. 국내 전 기전에서 맹위를 떨치는 신진서다.
#신박 대결에서 확실한 우위
2021년 상반기 바둑계 시선은 신진서와 박정환이 결승에서 맞붙는 랭킹 1위 기전 제2기 쏘팔코사놀배 최고기사결정전에 쏠려 있었다. 작년 남해7번기에서 신진서가 예상을 깨고 7-0 완승을 거둬 충격을 줬지만 그것은 일종의 이벤트 기전. 타이틀을 놓고 겨루는 승부와는 또 다르기에 이번에는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
7월 6일 막을 올린 도전기 제1국은 도전자 박정환의 차지가 됐다. 그러나 2국과 3국은 신진서의 승리. 3국에서 패한 후 박정환은 “끝내기 들어갈 때에는 거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끝내기에서는 그나마 실수가 적은 편인데 중앙을 뚫은 판단이 좋지 않았다.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이 막판 집중력 차이가 최근 두 사람의 승부를 결정짓는 키포인트가 되고 있다.
최종 5국의 흐름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환은 중반 200수 언저리까지 우세한 흐름을 견지했지만, 200수가 넘으면서 급격히 흔들리더니 이번에도 끝내기 단계에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로써 둘 간의 타이틀전 맞대결에서도 신진서가 우위를 점했다. 둘은 결승에서 7번 만나 박정환이 먼저 3연속 우승했고, 그 후로는 신진서가 4연속 우승했다. 상대전적에서도 신진서가 21승 19패로 우세하다.
5국이 끝난 나흘 후 두 사람은 명인전 패자부활전 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결과는 앞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종반 초입까지 엎치락뒤치락 접전이었으나 마지막 끝내기에서 박정환의 착각이 나왔고 그것은 그대로 승부와 직결됐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결국은 나이가 문제다. 과거 조훈현 9단이 이창호 9단에게 일인자 자리를 넘겨줄 때도 그랬고, 이창호 9단이 최철한 9단에게 권좌를 물려줄 때도 그랬다. 박정환이 내년 서른이 되는데 반해 신진서는 최전성기라 할 20대 초반이다. 다만 박정환의 공부량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신진서 9단에게 그래도 버티는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신진서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박정환이 있음으로 해서 신진서가 있는 것이다. 박정환을 꺾기 위한 노력이 결국 중국의 초일류 커제, 양딩신, 구쯔하오를 상대하는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다음은 변상일과 결승8번기
박정환과의 승부를 성공리에 마친 신진서의 다음 상대는 ‘넘버3’ 변상일이다. 두 기사는 8월 5일부터 3판 2선승제로 명인 타이틀을 놓고 자웅을 겨룬다. 그에 앞서 7월 22일부터는 GS칼텍스배 우승컵을 다툰다. 나이는 신진서가 2000년생, 변상일은 1998년생. 변상일이 두 살 많다.
국내 바둑계는 지난 몇 년 간 신진서-박정환-신민준의 트로이카 체제였는데 최근 여기에 변상일이 가세했다. 변상일이 LG배 우승의 신민준을 4위로 밀어내고 3위로 올라선 것이다. 변상일은 작년 중국 대기업 텐센트가 후원하는 우승상금 1억 2000만 원의 인터넷 기전 ‘TWT배’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급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해 39승 9패(승률 81.3%)로 신진서(40승 9패, 81.6%)와 다승 1위를 다투고 있다.
2014년부터 시작된 둘 간의 전적은 신진서가 17승 3패로 크게 우세하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신진서가 앞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올해 변상일은 다르다. 명인전 승자조에서 랭킹 1위 신진서와 2위 박정환을 거푸 꺾었다. 가장 최근 대결인 명인전에서 신진서를 패자조로 내려 보낸 게 변상일이다.
“그동안 신진서 9단에게 많이 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설욕했으면 좋겠다”는 변상일. “결승 무대는 처음인데 잘 준비해서 좋은 바둑을 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에 대해 신진서는 “명인전 승자조 첫판에서 변상일 9단에게 패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더 열심히 준비해 좋은 바둑을 두겠다”는 임전소감을 남겼다.
한편 변상일과의 8번기를 마치고 난 신진서는 세계대회로 눈을 돌린다. 신진서는 현재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응씨배(우승상금 40만 달러, 약 4억 4000만 원)와 춘란배(우승상금 15만 달러) 등 2개의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에 올라있다. 중국 셰커와 겨룰 응씨배 결승은 올해, 혹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지만 중국 탕웨이싱과 맞서는 춘란배 결승은 9월로 잡혀있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고 있는 신진서의 2021년 행보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