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마다 우선 가치 달라 ‘탈마스크’가 고평가 기준 되기도…효과적 컨트롤 중요, 순위 집착 무의미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세계가 코로나19 앞에 줄 세워지고 있다. 주제는 ‘어느 나라가 방역을 잘하나’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단위로 새로운 순위가 매겨진다. 공식적으로 순위를 정하는 곳은 없다. 미국의 '블룸버그'와 '포브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등 여러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집계해 코로나19 대응 순위를 발표한다. 언론은 이 결과를 보도하고 국민들은 이 순위를 통해 자국의 방역 수준을 가늠하는 것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새롭게 생긴 일상의 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코로나19 관련 성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한국은 2020년 9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코로나19 100대 안전국가에서는 3위로 선정됐다. 1위는 독일, 2위는 뉴질랜드로 나타났다. 2020년 11월에는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발표한 코로나19 회복 순위에서 4위를 차지했다. 1위는 뉴질랜드 2위와 3위는 일본과 대만이었다.
우리 정부도 ‘모범 방역국’ 타이틀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독일의 유력 주간 '디차이트'가 분석한 코로나19 대응평가에서 한국은 6개 지표 가운데 4개 지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우리 정부는 이 결과를 ‘OECD 코로나19 대응평가 한국, 4개 지표 1위’라는 내용의 카드뉴스로 만들어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에 소개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성적은 어떨까. 한국은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발표한 코로나19 정상화 지수에서 18위를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코로나19 회복력 순위에서는 5월과 6월에 각각 5위와 10위를 차지했다. 한 달 사이에 약 다섯 계단 떨어졌으니 숫자로만 보면 한국의 방역 수준은 하락한 셈이다.
문제는 ‘모범’, ‘정상화’라는 말에 숨은 함정이다. 일요신문이 지난 1년여 동안 발표된 각 기관의 코로나19 방역 순위 자료를 종합해보니 국가마다, 기관마다 생각하는 모범과 정상의 정의가 달랐다. 1~3개월에 한 번꼴로 나오는 코로나19 관련 성적표에서 한국의 순위가 제각각인 이유도 이른바 ‘모범 방역국’을 가르기 위해 사용되는 기준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었다.
먼저 2020년 9월 한국이 3위를 차지한 '포브스'의 순위는 홍콩 기반의 싱크탱크 DKG(Deep Knowledge Group)의 연구보고서 결과를 인용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 250개국을 대상으로 코로나19와 관련된 경제, 정치, 보건·의료의 안전성, 방역효율성, 위기대응능력 등 6개 카테고리에서 빅데이터 기법을 활용, 분석·평가해 각국의 안전점수를 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코로나19 사망자 및 확진자 데이터보다는 검역 및 봉쇄 조치에 대한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수용의지 등을 평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이코미스트'는 세계 50개국의 대도시 대중교통과 도로 정체 수준, 국내외 항공기 운항 횟수, 영화관 수입, 프로 스포츠 경기 관람객 수, 집 밖에서 보낸 시간, 상점 방문자 수, 사무실 점유율 등을 분석해 산출해 정상화 지수를 개발했다. 다시 말해 이동량이 많은 국가일수록 높은 순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률, 양성 판정률 등 기존의 평가기준을 6월부터 거리두기 제한과 마스크 의무화를 해제한 국가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방향으로 바꿨다. 최근 델타 변이 확산으로 감염자가 급증했음에도 봉쇄 정책을 해제한 미국이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순위에서는 1위에 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여전히 강한 거리두기 제한 정책을 고수 중인 한국의 순위는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디차이트'는 코로나 대응 지수 6개를 이용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6개국의 코로나 대책을 평가했다. 평가에 사용된 지수는 10만 명당 코로나 사망자, 신규 감염, 예방 접종, 신규 실업자, 국가 부채 증가, 경제 성장 등이다.
이처럼 코로나19 상황을 평가하는 기준이 국가나 기관마다 다른 이유는 우선시 되는 가치가 달라서다. 한국의 경우 확진자 수 줄이기를 최우선으로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강력한 거리두기 제한 정책을 시행하고 역학조사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로 확진자의 감염 전후 동선을 추적해 공개하는 K-역학조사 시스템은 코로나19 초기에 감염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이런 방식을 두고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정부가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통제하는 등 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이 코로나19 초기 K-역학조사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은 이유 역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비판이 컸던 까닭이다.
이런 가치판단 역시 영원하진 않다. K-역학조사에 동의하지 않던 국가들도 바이러스의 확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방역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독일은 1차 대유행을 겪은 이후 휴대전화를 이용한 확진자의 동선 시스템을 도입했고 아일랜드도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한국식 방역 모델을 채택했다. 그런가 하면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새 국면을 맞은 현재는 획일적 방역보다 지속가능한 방역으로 방향을 트는 국가가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대만 등 일부 국가는 최근 방역지침을 유지하되 점진적인 일상화에 돌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세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팬데믹을 맞이하고 있다. 애당초 각 나라의 방역 성과를 동일 선상에 두고 비교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적 거리두기 역시 한국의 경우 적정 거리를 2m로 권고하고 있지만 프랑스와 덴마크는 1m, 미국의 경우 1.82m로 나라마다 기준이 다르다. 확진자 수와 사망률처럼 비교적 명확해 보이는 정보 역시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사망자 수가 집계됐는지, 사망 사유는 전문가에 의해 확인됐는지 등 1차 정보를 기록하는 방식이 각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서류상으로는 확진자가 제로(0)명인 코로나 청정국이다.
전문가들은 “세계가 ‘모범 방역’이라는 타이틀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범과 정상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가치이며 몇 가지 기준만으로 어느 나라가 코로나19를 가장 잘 극복하고 있는지 성적을 매기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앞으로 지속가능한 방역 대책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국내외 과학자들의 중론이다.
이에 대해 한 수도권 의료원 관계자는 “방역의 효과는 절대적인 숫자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다. 확진자 수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사실상 종식이 불가능한 이 바이러스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컨트롤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확진자가 늘어날 때마다 거리두기 단계를 향상시킬 수 없고 현재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손실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벨기에 정부의 이브 반 라템 대변인 역시 “국민들이 정부의 지시를 얼마나 더 잘 따를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람들은 신규 확진자 수는 계속 늘지만 사망률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직접 봤다. 그렇다 보니 왜 이렇게까지 (규제를) 해야 하나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라며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