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합당 지지부진하자 ‘투샷 경선’ 거론…이준석·안철수·윤석열 ‘야권 통합’ 물밑 수싸움
지난 7월 27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 실무협상이 소득 없이 결렬됐다. 사실상 합당이 어려워진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다시 한 번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직접 나서 ‘톱다운 방식’으로 극적 타결을 이뤄내지 않는 이상 합당으로 가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안 대표의 통 큰 결정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안철수 대표가 권은희 의원을 물리고 직접 협상테이블로 나와 지도자답게 통 큰 합의를 할 때”라면서 “안 대표는 현재 국민의당 당헌·당규로 인해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상태지만 합당을 통해 새로운 틀 안에서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시절 당직을 지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표 발언에 대해 “대선에 나올 수 없는 안 대표라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그를 필요로 할 이유가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국민의힘은 안철수라는 인물을 원하는 것이지 국민의당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선 ‘안철수 임대론’ 이야기도 나온다. 야권 대선 경선에만 잠시 안 대표를 빌려 갔다 국민의당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이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 실무협상 과정에서 권은희 의원이 “그럴 거면 국민의힘이 안철수 대표만 따로 떼어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국민의당 내부에서 이태규 의원은 합당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합당 실무협상단장직을 맡은 권은희 의원은 합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당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뒤에도 야권 통합을 둘러싼 ‘권은희 리스크’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면서 “권 의원의 경우 제3지대 국민의당과는 색깔이 맞을 수 있었어도 국민의힘과 합당을 한 뒤 보수 정치인으로 활동하기에는 맞지 않는 인사라는 평이 많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합당이 이뤄질지라도 호남에 기반을 둔 권 의원은 추후 정치적 활로 모색을 위해 야권 통합 대열을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안 대표만 따로 떼어가는 방식을 권 의원이 언급했고, 국민의힘 내부에서 '안철수 임대론'이 퍼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6말 7초’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였던 야권 통합은 7월 말이 돼서도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결국 공식적인 합당 실무협상이 결렬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국민의당 내부에선 ‘더 이상 국민의힘이 안철수 대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아닌가’라는 위기론이 고조되고 있다.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여전히 국민의힘 입당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제3지대론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식 투샷 경선’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제3지대 경선과 국민의힘 경선을 따로 펼친 뒤 야권 통합 경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국민의당 내부에선 ‘원샷보다 투샷이 낫다’는 취지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당 의도대로 ‘제3지대 기반 투샷 경선’에 순순히 참여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안철수의 복심’이 최근 윤 전 총장 캠프에 합류한 사실이 변수로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송기석 전 국민의당 의원 이야기다. 7월 윤석열 캠프에 합류한 송 전 의원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비서실장 출신으로 20대 총선서 광주 서구갑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8년 2월 회계 책임자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 처분을 받았다.
윤석열 캠프 합류에 앞서 송 전 의원과 안 대표의 교감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송 전 의원이 자의로 캠프에 합류한 셈이다. 송 전 의원은 윤 전 총장과 안 대표 사이 소통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지난 7월 7일 안 대표는 윤 전 총장과 오찬 회동을 통해 1시간 5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이날 회동에서 윤 전 총장은 안 대표에게 야권통합 정신과 헌신을 바탕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 압승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 경의를 표했으며, 안 대표는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기 위한 윤 전 총장의 정치적 결단을 치켜세웠다. 둘의 회동을 두고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을 사이에 두고 입당과 합당을 앞둔 두 장외 인사가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연합전선에 대한 추측은 추측으로만 그쳤다. 이뿐 아니라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과 안 대표의 합당 역시 7월 28일 현재까지 여전히 매듭을 짓지 못했다. 바빠진 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이 대표는 지난 7월 25일 윤 전 총장과 서울 광진구 모처에서 ‘치맥회동’을 하며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론 윤 전 총장이 오는 8월에 입당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 대표는 안 대표에게도 손짓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당과 합당 이슈에 대해 “합당하고 싶어 죽겠다”며 강력한 유화 제스처를 취했다. 지난 7월 27일 YTN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합당 협상이) 최종결렬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내가 아는 안철수 대표가 진짜 이런 협상안을 들고 왔을까 할 정도로 의아한 조항들이 있었는데, 안 대표 진의를 확인하는 게 첫 단계라고 본다”고 했다.
야권 통합을 둘러싼 물밑 수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제는 서로가 주도권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라면서 “국민의힘은 안철수 합당과 윤석열 입당 사이 순서를 볼 것이고, 윤 전 총장 측은 입당과 외연 확장의 순서를 정해야 한다. 그 사이에 껴 있는 안 대표는 윤석열과 국민의힘 중 누구에게 먼저 힘을 실어야 할지 수순을 고민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지율 등락에 따른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마지막 남은 변수 하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안 대표의 경우엔 윤 전 총장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중도층 결합이라는 결과물을 내는 것이 마지막 남은 카드”라면서 “결국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보여줬던 토너먼트식 야권 단일화를 노려야 하는 양상이다. 그 외엔 상황을 반전할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윤 전 총장과 안 대표의 결합은 엄밀하게 따지면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아니다. 그러나 변수가 속출하는 현 상황에서 아예 배제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아니다”라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안철수의 선택이 야권 대선 구도에 의외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