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술판’ 수습 위해 법조통 선택 강수…채동욱·MB 둘러싼 굵직한 사건 참여 이력 눈길
2021년 2월 엔씨소프트는 기존 감사실을 윤리경영실로 확대 개편했다. 준법 기능과 환경·사회·지배구조 체계 등을 강화하려는 조치였다. 한마디로 기업 내부 통제 기능을 공고히 하겠다는 인사조직 개편이었다. 엔씨소프트 초대 윤리경영실장으로 영입된 건 서봉규 전 광주고등검찰청 전주지원 검사로 지금은 NC 다이노스 대표 직무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 대행은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 통과 잉크가 마르자마자 엔씨소프트에 새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났다. 7월 KBO리그 1군 소속 선수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1군 선수 대부분이 자가격리 대상이 됐다. 7월 12일 KBO는 이사회를 통해 “향후 구단당 1군 엔트리 등록 선수 50% 이상이 확진 및 자가격리 대상자가 될 경우 2주간 해당 경기를 순연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KBO는 곧바로 이 규정을 소급적용했고, 사상 초유의 리그 중단을 선언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NC 다이노스 선수단 4명이 외부 여성 2명과 사적인 술자리를 가진 뒤 그중 2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가운데 NC 선수들은 역학조사에서 허위진술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동석했던 외부 여성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강남 모 호텔에서 장기투숙하며 불법 성매매 영업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NC 선수단을 둘러싼 일탈 논란이었다. 이 논란으로 NC 2루수 박민우는 코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KBO는 신속하게 일탈 논란에 대한 상벌위원회를 개최했다. 7월 16일 KBO는 NC 구단에 역대 최대 규모 제재금인 1억 원을 부과했다. 일탈 논란에 연루된 박석민, 박민우, 권희동, 이명기 4명의 선수에 대해선 출장정지 72경기와 벌금 1000만 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NC로부터 시작된 ‘일탈 논란’이 한화 이글스와 키움 히어로즈까지 번진 까닭이었다.
일파만파였다. 한화 선수 2명과 키움 선수 2명도 NC 선수단이 만났던 외부인과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KBO는 10개 구단 전반에 걸친 전수조사를 예고했다. 이번 사태 도화선에 불을 지핀 NC 구단에 대한 비판 여론은 더욱 심화했다. 확진자 발생 상황을 전후로 구단의 미흡한 조치와 더불어 구단 직원 중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며 NC는 궁지에 몰렸다.
7월 16일엔 ‘택진이 형’이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구단주가 직접 나서 고개를 숙였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사과문을 통해 “무거운 마음으로 구단을 대표해 사과 말씀을 드린다”면서 “구단 소속 선수들이 숙소에서 불필요한 사적 모임을 가지며 코로나19에 확진됐고, 그 여파로 KBO리그가 중단됐다. 방역당국에 혼란을 초래하고 구단이 미흡하게 대처했다. 사태의 최종적인 책임은 구단주인 내게 있다”고 했다.
황순현 NC 다이노스 대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퇴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인사가 발표됐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야구단을 수습할 구원투수로 ‘법조통’을 선택했다. 2021년 초 야심차게 영입한 ‘검찰 출신’ 본사 핵심 인사인 서봉규 윤리경영실장을 야구단으로 내려보냈다. 그에게 NC 다이노스 대표 직무대행 직을 맡겼다. 임기는 이사회가 신임 대표이사 선임을 의결할 때까지다. 말 그대로 야구의 중간계투와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업계에선 이번 인사가 ‘초강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정치권에서도 서 대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저 검사가 어디 갔나 했더니 엔씨소프트에 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서 대행의 과거 이력이 조명됐다. 서 대행은 서울대를 졸업한 뒤 사법고시 36회에 합격했다. 2000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4년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대전지검 형사6부,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 1부에서 부장검사를 지냈다. 2017년엔 대구지검 포항지청장 직을 맡았다. 그 뒤론 서울고검과 광주고검을 거쳐 엔씨소프트 최초 검사 출신 임원 타이틀을 달며 이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검사 시절 서 대행은 굵직한 몇 가지 사건을 맡은 바 있다. 2014년 1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부장검사 시절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혼외 아들 존재 의혹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며 화제가 됐다. 당시 수사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라 내연녀 임 아무개 씨에 대한 공갈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 이뤄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임 씨의 산부인과 진료 기록, 임 씨 아들 채 아무개 군의 유학신청 서류, 채 전 총장과 임 씨 모자가 함께 찍은 사진 등을 근거로 내세운 바 있다. 이후 혼외 자식 존재 의혹에 대한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임 씨 측이 아들의 유전자 검사에 동의하지 않은 까닭이다. 다만 임 씨는 2016년 대법원으로부터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공갈,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400만 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를 이끌던 서 대행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수사를 진두지휘한 경력도 있다. 서 대행은 당시 이 전 대통령의 배임 및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부지 매입비용에 대해 자세한 상황 보고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매입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이 전 대통령에게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2018년 8월엔 서 대행을 둘러싼 때 아닌 청탁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청년 버핏’이라 불리던 박철상 씨의 자산과 경력에 대한 거짓을 상당부분 밝혀낸 김태석 가치투자연구소 대표와 신준경 스탁포인트 이사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서 대행 이름이 언급됐다. 김 씨가 신 씨 관련 내용을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 1부 부장검사에게 제보한 메신저 내용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개했는데, 그 부장검사가 바로 서 대행이었다. 당시 김 씨는 서 대행을 ‘그냥 일개 검사가 아닌 우리나라 증권범죄 최고봉에 계시는 분’이라고 수식했다.
신 씨는 부장검사에게 메시지를 보낼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며 청탁 의혹을 제기했다. 김 씨는 제보에 불과한 내용이라고 의혹을 일축하며 “신 씨가 내가 서 검사와 골프 친 내용을 들었다는 거짓 의혹을 퍼뜨렸다”고 맞받아쳤다.
검사 시절 여러 이슈 중심에 섰던 ‘그 부장검사’는 현재 NC 다이노스 대표 직무대행을 맡게 됐다. 서 대행은 엔씨소프트 내부에서 정진수 수석부사장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정진수 수석부사장 역시 국내 최대 법률사무소인 김앤장 변호사 출신이다. 정 수석부사장과 서 대행이 현재 엔씨소프트 법조 관련 이슈의 양 날개를 담당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본사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던 서 대행이 야구단으로 급파되면서 본사가 야구단 개혁 작업에 보다 깊숙이 개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검사 출신 대표 직무대행이 이번 사태를 잘 수습한다면 향후 법조인들이 스포츠 구단 수뇌부로 진출하는 초석을 놓을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이슈의 본질을 피해가는 ‘법꾸라지’ 식 행보가 나온다면 KBO와 구단들에 대한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서 대행은 “야구팬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금 사랑받는 구단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다이노스가 가지고 있는 원칙과 가치를 되새기며 구단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