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수산티 꺾고 ‘영원한 2인자’ 꼬리표 떼…프레 올림픽 장소에서 남편 만나 ‘드라마 같은 일’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마치고 대표팀 은퇴 선언 후 재미교포 신경외과 레지던트와 결혼식을 올렸던 방수현. 2019년 한국 단식 선수로는 처음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기쁨을 만끽한 그를 지난 3월 미국 출장 중 텍사스 주 루이지애나 자택에서 만났다.
#‘수산티의 벽’ 넘고 금메달까지
인도네시아의 영웅 수지 수산티는 방수현의 절대적인 라이벌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수지 수산티를 처음 상대했던 방수현은 당시 수산티의 강철 체력과 유연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자신보다 한 살 위의 선수가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방수현에게 좌절감을 심어줄 정도였다.
―수지 수산티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수산티를 처음 본 건 1987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렸던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였다. 당시 난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 나이에 인생의 ‘벽’을 만난 것이다. 성적이 기억 안 날 정도로 완패했다. 그 후로 국제대회 나갈 때마다 수산티가 내 발목을 잡았다. 중국의 예자오잉과 수지 수산티, 그리고 내가 여자 단식 ‘빅3’로 불렸는데 그중 넘버원이 수산티였다.”
방수현은 수지 수산티의 무표정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대화 나누는 걸 즐기지만 수산티는 도통 말이 없었다는 것. 그냥 자기 것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국제 대회에서 수산티를 상대할 때마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속으로 많이 미워했다. 그 선수는 부상도 당하지 않는 듯했다.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수산티는 단점이 없는 선수였다. 게임하다가 내가 지쳐서 포기하기 일쑤였다. 40, 50회 정도 랠리를 벌이면 다리 힘이 풀려서 더 이상 뛰질 못했다. 게임은 하고 싶은데 뛸 수가 없어 패하는 일이 반복됐다. 내가 패할수록 수산티는 영웅의 자리를 굳건히 다졌다. 수산티의 벽을 넘는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럼 언제부터 수산티와 맞대결이 가능해진 건가.
“주니어 때는 일방적으로 지는 게임의 연속이었고, 1991년부터 수산티도 나를 조금씩 의식하는 모습이 보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결승전에서 맞붙었을 때 오히려 나는 부담이 없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세운 목표가 동메달이었고, 이미 목표 달성을 이룬 터라 결승전에 대한 압박감이 없었던 것이다. 1세트를 내가 먼저 이겼는데 2세트부터 수산티의 몸이 풀리면서 랠리가 길어지더라. 랠리가 길어지면 다리 근육이 풀려 내가 질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거듭하다 1996년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전영오픈 준결승에서 수산티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당시 70분에 걸친 접전을 펼쳤고,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수산티를 잡고 나니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더욱이 애틀랜타올림픽 직전의 대회라 올림픽에 대한 자신감도 키울 수도 있었다.”
―수지 수산티를 이기려고 특별 훈련을 했다고 들었다.
“남자 선수들과 훈련했다. 수산티를 이기려면 스피드와 파워가 강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남자들과 훈련하면서 그 부분을 보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체력을 완벽하게 비축해 놓으면 2세트, 3세트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이전에는 죽을 힘을 다해 훈련했다고 생각한 내용들이 정말 죽을 만큼 훈련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났다. 그래서 100%가 아니라 150, 200%를 넘어서는 훈련을 해야 수산티를 이길 수 있었다.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참고 독한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단단한 체력을 만들었다.”
방수현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반드시 수지 수산티를 이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올림픽 마치고 귀국 후 국민들이 보인 반응 때문이었다.
“모두가 금메달리스트한테만 환호를 보이더라. 은메달은 안중에도 없었다. 수산티와의 맞대결 기사에는 대부분 방수현이 뒷심과 근성이 부족하다는 내용들이었다. 한 번 정도는 그 선수를 꺾어야 다른 말이 안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오기를 갖고 훈련에 집중했던 것 같다.”
―마침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수지 수산티와 맞붙었다. 그 경기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랐을 것 같다.
“배드민턴 여자 단식 ‘영원한 2인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 그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경기에 들어갔다. 그때는 이상하게 긴장도 안 되고, 떨리지도 않았다. 그 경기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남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파워와 스피드를 키웠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자신이 붙은 상태였다. 결국 2세트를 모두 가져오면서 수산티와의 끈질긴 악연을 정리할 수 있었다.”
마침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방수현은 시상대에서 양쪽으로 인도네시아 선수들을 세우고 경기장 가득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애틀랜타올림픽이 만들어준 ‘사랑’
방수현한테 애틀랜타올림픽은 금메달 외에도 인생의 배우자를 만나게 한 대회로 기억된다. 1995년 애틀랜타 프레 올림픽을 앞두고 양가 어머니들이 앞장 서 자신의 아들과 딸의 만남에 다리를 놓은 것이다.
―남편 신헌균 씨와 만남이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안고 있다고 하던데 소개 좀 해 달라.
“시어머님이 나랑 친한 후배 어머니와 친분이 있었다. 시어머님은 남편과 함께 애틀랜타에 살고 계셨는데 한국에 볼일 보러 나오셨다가 후배 어머니랑 만났고, 후배 어머니를 통해 내 얘기를 들으신 거다. 마침 아들의 배우자를 찾고 계셨던 터라 시어머님은 후배 어머니의 주선으로 친정 엄마랑 먼저 인사를 나눴다. 서로 얘기가 잘 통하셨는지 시어머님이 미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날 만나고 싶어 했다. 엄마는 내게 사실대로 얘기하면 도망칠까봐 어느 날 빵집에 같이 빵을 사러 가자며 날 끌고 나가셨다. 그 자리에서 시어머님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다.”
―인사 드리는 상대가 누군지 전혀 몰랐나.
“엄마가 그냥 아는 분이라고 해서 가볍게 인사만 드렸다. 나로선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엄마 지인이란 생각에 인사드렸을 뿐이다.”
―그렇다면 남편을 처음 만난 건 언제인가.
“1995년 8월, 애틀랜타에서 열리는 프레 올림픽 대회를 위해 출국하는 전날, 엄마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수현아,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하면 어떤 남자랑 그때 빵집에서 만났던 아주머니가 나와 계실 거야. 그분들이 널 도와줄 거니까 잘해드려’라는 내용이었다. 난 그분들이 누군데 내가 잘해야 하냐고 다시 물었고, 엄마는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으셨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마음에 두진 않았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하니까 정말 그 아주머님(시어머니)이 나와 계시는 거다. 옆에 어떤 젊은 남자와 함께 말이다. 감독님이 내게 그분들이 누구냐고 물어보셔서 당황스런 마음에 ‘이모’라고 거짓말을 했다. 재미있는 건 배드민턴 대표팀이 애틀랜타에 머무는 동안 시부모님이 선수단 가이드를 도맡아 해주셨다는 점이다. 나랑 남편이랑 몇 마디 대화도 나눠보지 않았는데 시부모님들은 마치 며느리라도 되는 듯 날 살뜰히 챙겼고, 선수단까지 정성스레 돌봐주셨다.”
―사실 올림픽이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결혼할 남자를 소개받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엄마는 원래 내가 운동하는 걸 싫어하셨다. 여자로서 평범한 삶을 살기 바란 덕분에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마다 명예롭게 은퇴하라고 회유하신 적도 있다. 따라서 엄마한테는 내가 올림픽에서 메달 따는 것보단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게 더 중요했다. 프레 올림픽을 위해 찾은 장소에서 예비 배우자를, 그것도 시부모님까지 다 인사를 드리게 됐다는 건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었다.”
방수현의 남편인 신헌균 씨는 당시 미국 명문 존스 홉킨스대를 졸업한 후 애틀랜타 에모리 의과대학원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서로의 첫 인상이 이상형과 거리가 멀었다고 말하지만 프레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한 방수현은 매일 전화로 신헌균 씨와 사랑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방수현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전에 서울에서 상견례를 갖고, 올림픽 마치면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약속을 잡은 다음 올림픽을 치렀는데 여자 단식 최초의 금메달 획득에 이어 결혼 소식까지 세상에 알려지는 바람에 방수현한테 애틀랜타 올림픽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들로 남았다.
#배드민턴의 전설로 남다!
2019년 5월 23일, 방수현은 중국 난닝에서 열린 BWF 총회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으로는 9번째이며 여자 선수로는 5번째, 단식 전문 선수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방수현은 그 영광스런 자리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면서 더 큰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방수현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방수현에게 배드민턴이란?
“젊었을 때 내 모든 청춘을 바친 대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청춘을 바쳤고, 그에 못지않은 뜻깊은 결과물을 얻어 냈다. 지금도 배드민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선수 생활을 짧고 굵게 한 만큼 여전히 배드민턴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한편 방수현은 이번 도쿄 올림픽 기간 동안 MBC 해설위원으로 후배들을 응원하고 있다. 그는 여자 단식의 기대주 안세영에 대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우연히 (안)세영이를 만난 적이 있는데 내가 방수현인 줄 몰라보더라. 그래서 내가 먼저 ‘세영아, 안녕! 나, 방수현이야’라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세영이가 기대를 많이 받고 있는 만큼 부담도 클 텐데 그 부담조차 즐길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응원을 보낸다.”
2002년생으로 이번 대회 배드민턴 최연소 선수인 안세영은 매 경기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을 발휘하며 8강에 올랐지만 7월 30일 세계 랭킹 2위 천위페이한테 패하면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