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송영길 역할 분담설에 우려감…최악의 경우 ‘친노계의 정동영 외면’ 재연
여권 분열이 빨라지고 있다. 그 중심엔 이른바 ‘이심송심(李心宋心)’이 자리 잡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의중이 이재명 경기도지사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핵심이다. 친문(친문재인)계 일부를 포함한 반이재명 연합군에선 송 대표를 향해 “당장 선수 라커룸에서 나오라”(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고 직격했다. ‘송영길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은 셈이다. 최악 땐 친노(친노무현) 지지층이 ‘정동영’을 외면한 2007년 대선판이 재연될 수도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오른쪽)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월 2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성장과 공정을 위한 국회 포럼’ 창립총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805/1628129292127710.jpg)
원팀은 간데없이 분열 징후만 짙어졌다. 특히 8월 정국 들어서자마자 반이재명 연합군이 사실상 총궐기에 나섰다. 분기점은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 편파 논란이 한몫했다. 당 선관위는 8월 2일 경기도 교통연수원 사무처장인 진 아무개 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선거운동에 대해 ‘문제가 안 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공명선거분과위원장인 조응천 의원은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는 지방공사나 지방공단 상근 임직원”이라고 했다. 진 씨는 텔레그램에서 ‘이재명 SNS 봉사팀’ 단체 대화방을 만든 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네거티브를 총지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앞서 경기도 장애인체육회 간부의 선거운동 관련 징계 안건이 기각 처분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낙연·정세균 캠프 측 관계자들은 “고무줄 잣대”, “편파 판정” 등의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절차의 공정성’이었다. 당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경기도 교통연수원 진 씨 의혹 건은 8월 2일 당 선관위 공식 안건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 지도부가 사실상 면죄부를 주기 위해 서둘러 처리한 것 아니냐는 뒷말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 기준이면 누구의 선거운동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송영길 대표나 조응천 의원은 비문(비문재인)계에 속한다. 일각에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같은 사안을 조사하는 점을 들어 “당 선관위와 다른 판단을 할 경우 후폭풍이 일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 선관위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한 유정주 민주당 의원에 대해서도 기각 결정을 내렸다. 6월 28일 당 선관위원으로 임명된 그는 이틀 뒤인 6월 30일 이재명 캠프 명단(국민소통)에 이름을 올렸다. 유 의원은 7월 1일 선관위원에서 물러났지만, 공정성 시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친문계를 비롯한 반이재명 측에선 특정 선관위원들을 거론하며 “이재명 캠프에 몸담았거나, (이 지사) 지지자”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심송심을 둘러싼 반이재명 측 반발은 7월 초부터 증폭됐다. 송영길 대표가 7월 5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대깨문(강성 친문을 비하하는 용어)이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누가 (당 후보가) 되느니 야당이 낫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순간, 문 대통령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대깨문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2007년 대선 상황을 언급했다. 친노계의 ‘정동영 비토’로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530만 표 차이로 정권교체를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생양 삼았다는 논리도 곁들었다. 송 대표는 당내 이재명 견제세력의 존재도 부인하지 않았다. 정세균 전 총리는 즉각 “특정 후보가 다 확정된 것처럼 사실상 지원하는 편파적 발언”이라고 반발했다. 이낙연 캠프 핵심 관계자도 “당 대표가 대깨문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게 믿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른바 ‘이재명 송영길’ 역할 분담설이 급부상한 것도 이때다. 양측은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역할 분담 의혹은 연일 확산됐다. 송 대표는 경기도가 당·정이 합의한 긴급 재난지원금 88%에서 소외된 12%에 대해 지급 의사를 밝히자, “지방정부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반이재명 캠프 측의 “경기도 공화국 대통령”(이낙연 캠프 정운현 공보단장), “국회를 무시한 일방통행”(정세균 캠프 측)이란 반발과는 결을 달리한 것이다. 당 대선 공약을 총괄하는 민주연구원 기획안에 ‘생활 기본소득’이 포함된 것도 논란의 불씨로 작용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론자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대선 후보들이 7월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원팀 협약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노웅래 민주연구원장, 추미애·박용진·이낙연·정세균·김두관·이재명 후보, 송영길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https://storage1.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1/0805/1628129410703302.jpg)
‘돌출형 스타일’로 분류되는 송 대표는 취임 후 설화에 시달렸다. 비밀 누설을 한 모더니 백신 계약이 대표적이다. 송 대표는 7월 28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130만~140만 회분 정도를 다음 주에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다”고 말했다. 비밀유지협약 파기 논란에 휘말리자 민주당 대표실은 발칵 뒤집혔다. 논란은 이틀 뒤(7월 30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관련 사실을 말한 뒤 일단락됐다. “송영길 리스크가 여당 아킬레스건”이라는 우려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문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한 최재성 전 수석이 등판했다. 그는 8월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송 대표를 직접 거론하며 “대선 관리의 제1 기준은 공정한 경쟁인데 연이어 리스크를 노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두세 차례 송 대표를 비판했던 최 전 수석은 민주연구원의 생활 기본소득 연구에 대해 “쇼크다. 이러다 대선관리에서 손을 떼라는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어찌 되겠냐”고 재차 저격했다. 당 인사들은 “송 대표의 거취까지 거론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송영길’ 역할 분담 의혹이 잦아들지 않을 땐 지도부 흔들기를 본격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여권 전체를 덮칠 수도 있다. 게임이론의 하나인 죄수의 딜레마는 서로 협력하면 최상의 결론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신 늪에 빠져서 가장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재명 대 반이재명’을 둘러싼 각 대선 캠프와 당 지도부가 따로 놀 경우 지지층 이반은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을 깨고 창당한 대통합민주신당이 꼭 그랬다. 당시 적자 만들기에 실패한 친노계는 비노(비노무현)계 선봉장이었던 정동영 대선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친노 지지층 사이에서도 “정동영을 찍느니, 기권표를 행사하겠다”는 기류가 강했다. 당시 정동영 후보가 받은 26.1%는 사실상 호남 유권자 표에 불과했다. MB는 48.7%를 얻었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15.1%를 기록했다. 보수 후보를 찍은 유권자가 60%를 훌쩍 넘은 셈이다.
친문계가 처한 상황은 그때와 꼭 빼닮았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대법원 확정판결 후 친문계는 갈 곳을 잃어버렸다. 특히 친문계의 3대 딜레마인 △적자 없는 당 주류 현실 △분화 가속 △구심력 약화가 맞물리면서 위기감은 한층 커졌다. 이 과정에서 불거진 ‘이재명·송영길’ 역할 분담설은 친문 대선 후보 무산 현실화에 불을 지폈다.
실제 김경수 유죄 판결 직후 친문계 핵심축인 ‘민주주의 4.0’ 소속의 김종민 신동근 의원 등은 이낙연 전 대표 쪽으로 기울었다. 반면 진성준 박주민 이재정 의원 등은 ‘이재명 지지’에 나섰다. 제21대 총선 때 민주당 전략을 맡았던 이근형 전 전략기획위원장은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등판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관망하던 친문계가 ‘이재명·이낙연’으로 양분된 셈이다.
문제는 갈등 완충 장치의 부재다. 공정성을 의심받은 송영길호 리더십은 도마에 올랐다. 최근 당 안팎에선 송영길호를 놓고 “당 대표의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당 대표 리더십이 떨어진 사이, 여권 대선주자 간 네거티브는 거세졌다.
이 전 대표 측이 이 지사의 음주운전 의혹을 거론하면서 배우 김부선 씨를 언급하자, 이 지사 측은 조국 사태 한가운데 선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과 어떤 사이냐고 반격했다. 양측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강경 친문파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친문 강경파 중 이재명을 찍느니 차라리 윤석열을 찍겠다는 기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 파고를 못 넘으면 민주당 전체가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