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좁혀지자 ‘텃밭’에서 강 대 강 대치…이낙연 스스로 ‘호남 후보’ 한계 그었다는 지적도
과거에 비해 지역색이 많이 옅어졌다고 하지만, 호남지역은 여전히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으로 분류된다. 일요신문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8월 1일부터 8월 3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8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의 광주·전라지역 지지율은 53.1%다. 전국 지지도 34.2%를 상회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17.2%에 불과하다.
최근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이재명-이낙연 예비후보는 호남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 후보의 이른바 ‘백제 발언’ 논란이 촉매제가 됐다. 7월 23일 이재명 후보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백제(호남), 이쪽이 주체가 돼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 “현실적으로 이기는 카드가 무엇인지 봤을 때 결국 중요한 건 확장력”이라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를 두고 반이재명 측은 ‘호남후보 불가론’을 주장했다며 일제히 공세에 나섰다.
이낙연 후보 캠프 배재정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우며 국민화합에 힘쓸 때 이재명 후보는 ‘이낙연 후보의 약점은 호남’ ‘호남 불가론’을 내세우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이재명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언론 인터뷰 녹음파일 원본을 공개하며 맞대응했다. 오히려 이낙연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역사가 된다고 덕담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후보는 “지역감정을 누가 조장하는지, 이낙연 후보 측 주장이 흑색선전이 아닌지 직접 들으시고 판단하라”고 말했다.
이어 두 후보는 잇따라 광주·전남 등을 방문하며 호남의 지지를 호소하는 행보를 보였다.
호남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민주당 ‘텃밭’으로 강성 지지층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호남은 ‘이길 후보를 뽑는다’는 정서가 강해 대선의 바로미터로 인식된다. 과거 2002년 대선을 앞둔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도 지지율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노무현 당시 후보가 광주 경선을 통해 돌풍을 일으키며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결국 대통령까지 오른 바 있다.
물론 이번 민주당 대선 본경선 지역 순회는 과거 호남에서 시작했던 것과 달리, 충청에서 스타트를 끊는다. 기선제압 의미는 줄었지만 그럼에도 호남 지역 순회 경선이 중요한 이유는 국민·일반당원 선거인단 득표 결과가 처음 공개되는 이른바 ‘1차 슈퍼위크’와 추석연휴 직후인 9월 25~26일 열리기 때문이다. 경선 중반부인 만큼 민심의 풍향계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이낙연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지역주의 조장’ 논쟁까지 꺼내들며 강 대 강으로 대치하는 이유는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읽힌다. 실제 7월 11일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컷오프) 결과 발표 이후 나온 여러 여론조사에서 1강으로 분류되던 이재명 후보는 지지도가 정체된 반면, 1중에 머물렀던 이낙연 후보의 상승세는 뚜렷한 추세를 보였다.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과정이었던 7월 3일부터 4일까지 이틀간 리얼미터가 JTBC 의뢰로 실시한 ‘민주당 대선주자 적합도’ 여론조사 결과 이재명 후보가 35.1%, 이낙연 후보는 17.4%를 기록했다. 하지만 리얼미터가 컷오프 발표 이후인 7월 17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한 같은 여론조사에서는 이재명 후보 34.9%, 이낙연 후보 26.9%를 나타냈다. 이낙연 후보 적합도가 2주 사이 9.5%포인트(p) 상승하며, 두 후보의 격차는 8%p로 줄었다.
이낙연 후보 측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본경선에서 앞지르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재명 후보가 본경선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해 1, 2위 후보자 간 결선투표에서 역전을 한다는 시나리오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위해 1위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낙연 후보의 호남 공략은 효과를 발휘했을까. 광주·전라 지역에서 이낙연 후보의 상승이 도드라진 결과가 있다.
일요신문이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8월 1일부터 8월 3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8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대선후보 적합도’에서 이재명 후보가 30.0%로, 22.9%의 이낙연 후보를 7.1%p 차이로 앞섰다. 하지만 광주·전라 지역만 보면 두 후보 지지율은 33.4%로 동률을 이뤘다(관련기사 [8월 여론조사] ‘대선후보 선호도’ 이낙연 16.1% 껑충…3강 구도로 재편되나).
지난 7월 여론조사의 광주·전라 지지율이 이재명 후보 31.4% 이낙연 후보 23.3%였음을 고려하면, 이낙연 후보가 호남 지역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다.
반대의 결과를 보이는 여론조사도 있다. TBS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7월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실시한 ‘범진보권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와 이낙연 후보는 각각 27.4%와 23.1%를 기록했다. 하지만 광주·전라 지역을 보면 이낙연 후보가 37.8%로, 30.7%의 이재명 후보를 오히려 앞서는 결과를 보였다.
7월 23일 이낙연 후보 캠프 측이 이재명 후보의 ‘백제 발언’을 문제 제기했고, KSOI는 일주일 후인 7월 30~31일 이틀간 여론조사를 다시 실시했다. 이 여론조사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전주 대비 3.0%p 오른 30.4%, 이낙연 후보는 2.0%p 하락한 21.1%를 나타냈다. 특히 광주·전라 지역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38.1%, 이낙연 후보 33.0%를 보였다. 이재명 후보가 전주에 비해 7.4%p 상승한 반면 이낙연 후보는 4.8%p 떨어져, 다시 역전이 이뤄진 것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진보진영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 33%, 이낙연 후보 18%를 기록했다. 광주·전라 지역의 경우는 41%와 24%였다.
2주 후인 8월 2~4일 사흘 동안 진행한 같은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는 3%p 상승한 36%, 이낙연 후보는 2%p 하락한 16%를 나타냈다. 광주·전라 지역에서도 이재명 후보는 2%p 상승, 이낙연 후보는 3%p 하락해 각각 43%와 21%를 보였다(자세한 사항은 각 여론조사업체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에 이낙연 후보 측이 제기한 ‘백제 발언’ 논란이 오히려 자신에게 좋지 않은 효과를 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이낙연 후보가 ‘백제 발언’을 제기함으로써 오히려 스스로 ‘호남 후보’라는 한계를 그어버렸다. 확장력을 입증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은 것”이라며 “이낙연 후보가 과거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점잖고 침착하며 스마트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네거티브 공세를 취하며 본인의 기존 이미지를 버렸다. 이재명 후보와 네거티브 난타전이 이어진다면 누가 더 손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러한 논란이 호남 지역 지지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호남지역은 민주당의 ‘텃밭’인 만큼 전통적 지지자들이 많다. 이슈에 따라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며 “호남 지지층은 과거부터 승리할 수 있는 후보를 뽑아왔다. 상황을 보고 전략적 투표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