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때려놓고 ‘맞았다’ 주장한 종업원 공익제보 했다가 무고 교사로 징역살이 “억울합니다”
차 씨는 무고교사 혐의 등으로 2년여 동안 옥살이를 하다 2020년 6월 출소했다. 그는 “집 밖을 나갈 수가 없어요. 이 서류들이 사라지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아서요”라고 말했다. 방 안에는 방 밖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서류 뭉치가 놓여 있었고, 교도소에서 읽고 또 읽어 해져버린 기록들을 쌓아둔 서랍은 무게를 못 버텨 무너져버린 채 있었다.
2015년 조사받을 때부터 형을 모두 살고 나온 지금까지 차 씨는 한결같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차 씨는 서류를 하도 인쇄하다 보니 프린터가 고장이 났다고 한다. 그가 인쇄했던 녹취록과 문자, 메신저 대화 내역, 이메일, 수사 기록, 재판 기록, 판례 등 족히 3만 장은 될 듯한 종이 더미 속에서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차 씨는 2017년 1월 무고 교사 혐의로 체포됐고 2017년 2월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재판을 받았다. 2017년 4월 변호사법 위반으로 추가 기소됐고, 2018년 3월 혐의 가운데 무고교사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이 선고됐다. 무고교사로 재판을 받던 중인 2017년 6월 공갈, 7월 제삼자 뇌물취득죄 및 뇌물공여, 8월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각각 공소 제기됐고 이 가운데 뇌물공여죄가 인정돼 징역 1년이 선고됐다. 그는 2년 10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한 뒤 가석방으로 2020년 6월 출소했다.
그런데 판결문을 보면 대부분 증거는 진술로 일관돼 있다. 차 씨는 명문대를 졸업한 뒤 법 공부를 했고, 수도권 로스쿨에 지원해 서류 합격했고 면접까지 봤으나 다음 해 서울 소재 로스쿨 합격을 노리고 등록하지 않았다. 차 씨는 “나도 법 공부를 했고 주변에 같이 로스쿨 준비하던 법조인이 많다. 아내도 법조인이다. 그런데 판결은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5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차 씨는 당시 몇 개의 바 형태 술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이 바를 각각 매니저에게 맡기는 동업 계약을 하고 자신은 로스쿨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수유동 업장을 운영하던 매니저에게 새벽 4시 30분 문자가 왔다.
수유동 매니저인 이 아무개 씨는 업장이 마감됐다는 말과 함께 “애 하나 흠씬 패서 보냈어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라고 했다. 이에 차 씨는 놀라 “남자? 직원?”이라고 보냈고, 이 씨는 “아뇨, 손님인데 계산하고 계속 왔다 갔다 짜증 나게 하길래 때려서 보냈어요. 문 잠그고 불 끄고 팼어요. 여기서 맞은지도 모를 거예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라고 했다. 이어 이 씨는 “그냥 경찰 불러서 엮으려다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팼어요”라고 했다. 차 씨는 “잘했다. 나 없길 잘했네”라고 답했다. 당시 업장에는 여자 종업원 조 아무개 씨와 박 아무개 씨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 씨가 때렸다는 사람은 A 씨다. 경찰 조서에 A 씨는 “계산을 하고 나왔다가 체크카드와 주민등록증을 놓고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테이블을 돌며 분실물을 찾으니까 이 씨가 ‘영업 끝났으니 나가라’고 욕설을 했다. 그러면서 가슴을 밀쳤는데 (내가) 홀 중앙에 넘어졌다. 이 씨는 넘어진 내게 달려들어 가슴 및 배 부위를 걷어찼고 배 위에 올라타 안면부를 때렸다. 여성 종업원 조 씨도 달려들어 머리카락을 붙잡고 좌우로 흔들었는데 ‘너무 아프다. 제발 놔달라’고 하자 놔줬는데 그때 조 씨 손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있는 것을 봤다”라고 진술했다.
그런데 약 17분 뒤인 4시 50분 이 씨가 경찰에 신고한다. 수사기록에서 발견된 112 신고 접수 내용에 따르면 이 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취한 남자가 바지를 벗는다. 사람 막 때리고 있다. 빨리 와달라”라고 말한다. 이미 때려서 내보냈다는 A 씨를 왜 다급한 목소리로 다시 신고한 걸까.
4시 55분 신고를 받은 경찰이 업장 앞에 도착하자 A 씨의 얼굴과 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경찰관은 쓰러진 A 씨를 보고 ‘누구에게 폭행을 당했냐’고 물었고 이에 A 씨는 업장 안에 있는 이 씨와 조 씨를 지목했다.
그러자 이 씨와 조 씨는 “절대 아니다. A 씨는 모르는 손님에게 폭행을 당했다. 오히려 A 씨가 조 씨의 가슴을 만져 강제추행 피해를 보았다. 이 씨도 맞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씨와 조 씨는 “A 씨가 사건 접수를 안 하면 우리는 사건 접수를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미 마감된 지 1시간이 넘은 업장이었지만 이들은 다른 손님이 때렸다고 증언한 것이다.
A 씨는 같은 날 오후 5시 경찰에 찾아가 이 씨와 조 씨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이 씨, 조 씨에게 자진 출석을 통보했고 먼저 조 씨가 6시부터 약 50분간 조사를 받게 된다. 이때 검찰이 포렌식으로 확보한 이 씨, 조 씨, 박 씨의 단체 카카오톡방 내용에 따르면 이들이 경찰에 증언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협의하는 장면이 포착된다.
조 씨는 “(A 씨가) 계산하고 나간 뒤 다시 들어와서 진상 부리고 나 안고 가슴 만지고 그래서 사장님이 나가라고 했는데, 사장님을 때렸다. 그때 손님이 왔는데 A 씨가 손님한테 덤벼서 손님이 때렸다. 우리는 말리다 경찰 불렀는데 손님이 도망갔다. 우리는 피해자인데 쟤(A 씨)가 우리를 피의자로 몰고 있다”라고 말하고 곧바로 카카오톡 단체방을 퇴장한다. 이 씨는 약 10분 뒤 조 씨를 다시 단체방에 초대한다. 이 씨는 조 씨가 보내준 메시지와 일치하게 진술했다.
그렇게 다시 초대된 단체 카카오톡방에서는 앞서 메시지와 전혀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오간다. 이 씨는 “이 새끼는 뒤진 거야. 더 팼어야 해. 죽이고 갈게”라고 했고 다들 “어제 더 팰 걸 그랬다” 등의 내용으로 웃음이 오갔다. 조 씨는 이후 수유파출소에서 강북경찰서로 임의동행하게 됐고 그곳에서도 똑같이 “A 씨가 뒤에서 가슴을 끌어안아 성추행 당했다”고 말했다.
5월 18일 A 씨가 조 씨에게 전화를 건다. 강제추행으로 조사받기 시작한 A 씨는 “합의를 봐서 마무리 짓고 싶다”고 말했고 조 씨는 웃으며 “나는 그쪽을 안 때렸다. 그런데 당신이 내가 때렸다고 고소하지 않았나. 무고한 사람을 그렇게 고소한 게 죄가 안 된다고 생각하나”고 말했다.
이어 조 씨는 “더 큰 건 당신이 나를 만진 거다”란 말에 A 씨가 “아닌데요”라고 말하자 조 씨가 “날 만진 건 맞다고요”라고 답했다. 같은 날 두 번째 통화에서 A 씨는 “살면서 이런 일이 없었다. 합의를 보고 싶다. 없던 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 씨는 “사과하고 다시는 생사람 잡지 말라”고 답했다.
그때까지 차 씨는 큰 관심 없이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5월 24일 이들은 차 씨에게 조 씨와 A 씨 사이 녹취 파일 등을 보내며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이들은 “경찰이 합의를 종용하고 수사에 미진하다”며 수사관을 교체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A 씨와 조 씨 사이 통화를 듣고 조 씨를 믿게 된 차 씨는 진정서를 대신 써준다. 그렇게 수사관이 교체됐다.
그런데 6월 5일 차 씨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6월 5일 교체된 수사관들이 CCTV를 확인하기 위해 사건이 있었던 업장에 방문했지만, CCTV 영상이 이미 삭제된 상태였다. 특히 CCTV 기록에 따르면 이미 누군가 사건 발생 시간만 여러 차례 돌려보다 그 시간만 삭제했다. 이 씨가 “A 씨를 때린 영상이 있어서 지웠는데 포맷한 것과 카메라 돌려본 내역들이 다 나온다”고 말해 일단 차 씨는 “경찰에게는 우리 측에서 CCTV 영상을 저장하려다 삭제했다고 말하라”고 했다.
차 씨는 “도대체 성추행 입증에 유리한 영상을 왜 지웠냐. 지울 거면 그 부분만이라도 놔두고 지웠어야 했다”고 말했고 이때 이 씨가 충격적인 얘기를 하게 된다. 이 씨는 “사실 A 씨가 조 씨를 만지거나 한 사실이 없다. 우리들이 이 씨를 폭행한 장면밖에 없어 영상을 지우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제야 차 씨는 애초에 성추행은 없었으며 5월 2일 이 씨가 보낸 “흠씬 패서 보냈다”는 문자 내용을 이해하게 됐다. 황당함을 느낀 차 씨는 이 씨와 동업 계약을 종료하게 된다. 이후 차 씨는 “A 씨를 원래대로 돌려놔라”고 했고 이 씨, 조 씨와 엮인 사건과도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씨와 조 씨의 시간은 그 나름대로 흘러갔다. 6월 9일 두 번째 조사에서 조 씨의 증언은 더욱 구체적으로 살이 붙기 시작했다. 조 씨는 “A 씨가 양손으로 자신을 안으며 한 손으로 가슴을 쥐었다. 손을 뿌리치자 A 씨는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계단 밑으로 떨어졌고 우측 다리가 삐게 됐다”고 증언했다.
경찰 조사 상황은 실시간으로 카톡방에 공유됐고 이들은 서로 격려해주기도 했다. 조 씨가 기존 진술과 다른 말을 했다며 “실수한 거지?”라고 묻자 이 씨는 “그냥 모르겠다고 해. 기억 안 나는 건 별 상관없음”이라고 답해줬다. 결국 A 씨는 이 씨, 조 씨 등의 허위 신고와 무고로 인해 강제추행죄로 불구속기소돼 형사재판을 받게 됐다. A 씨는 2016년 11월 강제추행죄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게 된다.
2016년 11월 10일 차 씨는 이 소식을 듣게 되고 늦게라도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경찰서에 방문해 이 씨와 조 씨가 A 씨를 무고했다는 제보를 한다. 차 씨는 이 씨가 최초 보낸 카톡 내용과 CCTV 삭제 경위 등을 제출했다. 결국 2016년 12월 재수사가 결정됐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이 씨와 조 씨의 말은 수시로 번복됐다. 그러다 결국 3차 조사에서 이 씨는 “조 씨와 ‘잘 피해 가자’고 모의했고 때린 장면이 찍혀 있을까봐 CCTV 관리업체를 불러 삭제했다”라고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2016년 1월 15일 조 씨도 “가슴을 만졌다거나 머리채를 잡아당겨 같이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쳤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차 씨 제보로 인해 A 씨는 2심에서 검사가 무죄 구형을 하며 풀려나게 됐다.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던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 씨와 조 씨가 검찰에 공익제보한 이가 차 씨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갑자기 “각 범죄 사실은 차 씨의 무고교사로 행한 일이다. 차 씨가 경찰관들과 친분이 있어 무고하는 걸 알면서도 묵인하고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차 씨가 굴레에 갇히게 된 순간이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