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은 배터리 소재, SK이노베이션은 폐배터리 재활용 육성 의지…양사 모두 성장성 자신
LG화학은 2020년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배터리사업부를 분할했다. 분할법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6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제출했고, 빠르면 8월 중 기업공개(IPO·상장) 일정이 확정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예상 시가총액은 80조~100조 원으로 상장과 동시에 LG화학(17일 기준 시가총액 63조 390억 원)을 제치고 LG그룹 시총 1위 계열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배터리사업부 분할 발표 당시 LG화학은 껍데기만 남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고, 이 같은 우려는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LG화학 측은 배터리 소재를 중심으로 2차전지 사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분할 후에도 2차전지 사업을 통해 기업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 이런 가운데 SK이노베이션도 최근 배터리사업부를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LG화학이 배터리 소재 사업을 강화한다면 SK이노베이션은 폐배터리 재활용(BMR) 사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혀 두 회사는 같은 듯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소재 집중하는 LG화학, 양극재 투자 확대에 분리막까지
LG화학이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양극재다.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은 2차전지의 주요 소재다. 이 중 양극재는 리튬이온전지의 에너지원으로 배터리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양극재는 소재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기 쉽지만 배터리 용량을 늘리려면 양극재 개발이 필수다.
LG화학은 양극재 생산능력을 2020년 4만 톤(t)에서 2025년 26만t으로 늘릴 계획이다. 박한샘 SK증권 연구원은 “양극재를 포함한 LG화학 첨단소재 부문은 2025년까지 매해 20% 이상의 성장을 보여줄 것”이라며 “과거 배터리 사업(LG에너지솔루션)이 2014년부터 6년 동안 연평균 27% 성장했는데 양극재 또한 이에 못지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분석했다.
LG화학은 분리막 사업에도 다시 뛰어들었다. LG화학은 지난 7월 LG전자 CEM사업부를 5250억 원에 인수했고, 사내에 분리돼 있던 분리막 관련 조직도 모두 통합했다. CEM사업부는 분리막 등 배터리 소재와 디스플레이 소재를 생산하는 부서다.
앞서 2015년 LG화학은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일본 도레이첨단소재에 오창공장 등 분리막 사업 관련 설비를 매각한 바 있다. 이후 6년 만에 분리막 사업에 재진출한 것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분리막 사업 재진출 배경으로 현대차의 전기자동차 코나 EV를 거론한다. 2020년 초 코나 EV에서 연이은 화재 사건이 발생했고, 국토교통부(국토부)는 화재 원인으로 코나 EV에 탑재된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분리막을 지목한 바 있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물리적으로 막아주는 소재로 조금만 손상돼도 화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월 입장문을 통해 “화재의 원인으로 제시됐던 분리막 손상 관련해서는 합동 조사단의 모사실험 결과 화재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반박했다.
LG화학은 양극재와 분리막 등 배터리 소재에 총 6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일각에서는 도레이첨단소재와 제휴해 유럽에 분리막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양극재 원가 절감을 위해 광산에 직접투자를 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LG화학은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재료 내재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LG화학 관계자는 “배터리 소재 사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을 삼고, 분리막·양극재 등의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며 “(도레이첨단소재 제휴 관련해서는)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각도로 검토 중이지만 확정된 것은 없고, 양극재 원료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광산 업체와 조인트벤처(JV) 체결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 분할 여파로 LG화학의 첨단소재사업부 인력은 2019년 말 3925명에서 올해 1분기 말 3098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지난 2분기 말 인력이 3261명으로 증가해 세 달 만에 5% 이상 늘었다. 자연스럽게 LG화학의 소재 사업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LG화학 가치 하락 불가피…그런데 SK이노베이션은요?
그럼에도 LG화학의 가치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LG화학의 시총이 60조 원 이상으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가 LG에너지솔루션을 자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해 100조 원 안팎의 시총을 형성하면 배터리 하나의 사업으로 두 개 회사가 모두 좋은 평가를 받는 셈이다.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에 중복으로 가치가 반영된다는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분할해 상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시가총액 100조 원의 회사가 덜컥 생겨난다면 모든 그룹이 회사를 쪼개 중복 상장하는 선택을 할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 때문에 미국은 지주회사 하나만 상장하기를 권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LG화학 관계자는 “LG화학은 배터리 소재 부문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LG에너지솔루션과 같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LG화학 내부에서는 라이벌이자 2조 원대 소송전을 벌였던 SK이노베이션을 의식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4일 배터리사업부와 석유개발(E&P)사업부를 10월 1일자로 물적분할할 것이라고 공시하는 등 LG화학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LG화학 내에서는 “우리가 그래도 SK이노베이션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으로 전해진다.
SK이노베이션이 밝힌 분할 이유는 ‘사업의 전문성 및 효율성 증대’다. 업계에서는 분할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로 분할이 추가 투자 유치에 유리하다는 점을 꼽는다. LG화학이 배터리사업부를 분할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은 분할 결정 당시 “각 사업별로 투자 유치와 사업 가치 증대를 통해 경영환경에 더욱 폭넓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키워 나갈 것”이라고 밝히며 투자 유치와 관련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분할로 정유(SK에너지), 화학(SK종합화학), 윤활유(SK루브리컨츠), 분리막(SK IET) 등의 자회사를 거느린 중간지주회사 구조가 굳어질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신사업을 낳는 산파 역할을 맡는다지만 주주들 사이에서는 알짜 회사가 떨어져 나간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이안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분할을 추진하는 이상 배터리 회사 IPO 전까지 SK이노베이션 주가는 부진할 수밖에 없다”며 “핵심 사업부는 분할 및 상장하고, 비핵심 사업부는 매각한다면 현재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 때문인지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배터리 소재처럼 BMR 사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SK이노베이션은 BMR 사업의 장기적인 성장성을 높게 보지만 주가는 분할 발표 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BMR 사업과 LG화학의 배터리 소재 사업의 성과에 따라 향후 두 회사의 미래 기업가치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BMR 시장은 2030년 20조 원 규모로 성장하고, 2040년에는 재활용 과정에서 나오는 리튬이 광산에서 추출되는 리튬보다 많을 것으로 예측한다”며 “정부 정책에 따라 전기차는 계속 출시될 예정이고, 폐차되는 전기차의 배터리를 재활용하면 굉장한 자원이 된다”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