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표결 넘어가면 공은 민주당으로…“윤 의원 손해 볼 게 없는 정치적 행위”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8월 23일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 결과 국민의힘 의원 12명의 부동산 불법거래 의혹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이 명단에는 대선주자 윤희숙 의원도 포함됐다. 부친의 농지법 주민등록법 위반 의혹이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해당 부동산이 본인 소유가 아닌 데다, 본인이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윤 의원의 소명을 받아들여 당 징계 처분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윤희숙 의원은 8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이 시간 부로 대통령 후보 경선을 향한 여정을 멈추겠다”며 대선 경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더 나아가 “국회의원직을 다시 서초갑 지역구민과 국민들께 돌려드리겠다”고 국회의원직 사퇴를 밝혔다.
윤 의원은 “부친은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겠단 마음으로 2016년 농지를 취득한 후 어머니 건강이 안 좋아져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임대차 계약을 하셨다”며 “나는 26년 전 결혼할 때 호적을 분리한 이후로 아버님의 경제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에서도 사실관계에 대한 소명을 받아들여 본인과 무관한 일이라고 혐의를 벗겨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대선 승리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고민했다고 전했다. 윤 의원은 “대선의 최대 화두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내로남불’ 행태”라며 “최전선에서 싸워온 내가 비록 우스꽝스런 조사 때문이긴 하지만 정권교체의 명분이 희화화될 빌미를 제공해 정권교체의 중요한 축을 허물어뜨릴 수 있단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사퇴 이유를 설명했다.
윤희숙 의원의 대선 경선 출마 포기는 따로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을 위한 후보등록은 오는 8월 30~31일이다. 윤 의원의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에 기탁금을 내고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출마선언만 했을 뿐이다. 윤 의원이 이번 일을 계기로 대선 경선 후보 중도사퇴 탈출구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국민의힘은 1차 예비경선(컷오프)에서 8명, 2차 컷오프를 통해 4명의 후보를 추려낼 계획이다.
윤 의원은 2020년 여당의 임대차3법 강행 처리에 반대하며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국회 연설로 화제를 모은 이후, ‘초선 돌풍’을 토대로 대선 출마까지 선언했다. 하지만 윤 의원 지지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박스권에 갇혀있다. 국민의힘 한 대선후보 캠프 관계자는 “윤 의원의 현재 현실적인 목표는 컷오프 통과다. 윤 의원 입장에서는 대선 출마 이후 여러 발언으로 존재감과 인지도를 알린 만큼 중도사퇴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고 본다”고 전했다.
의원직을 사퇴하기 위해서는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한다. 국회법 제135조에 따르면 의결로 의원의 사직을 허가할 수 있고, 사직 허가 여부는 표결로 한다. 사직이 허가되려면 회기 중에는 무기명 투표로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회기 중이 아닐 때는 국회의장 허가에 따른다. 상황에 따라 본회의에서 사직서가 반려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윤희숙 의원이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들었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사퇴 의결까지 시일이 걸리는 만큼, 그 사이 의혹에 대한 평가와 억울함을 국민들에 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한 캠프 관계자는 “국민의힘에서는 윤 의원 사퇴를 만류하고 뜯어말릴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본인의 억울함을 알리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인할 수도 있다. 윤 의원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볼 게 없는 정치적 행위”라고 전했다.
실제 윤 의원이 8월 24일 오후 의원직 사퇴 뜻을 지도부에 전달하자, 지도부는 강하게 만류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준석 대표는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윤 의원 기자회견에 참석해 “윤 의원은 잘못한 게 없고, 윤 의원 본인이 책임지는 방식이라 했지만 책임질 일이 없다고 확신한다”며 “이번 결정을 재검토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고, 윤 의원은 국회에 있을 때 가장 큰 쓰임새가 있을 거라고 대표로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혹에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열린캠프 김남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진정 사퇴 의사가 있다면 언론플레이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할 것이 아니라 국회의장을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하면 된다”며 “사퇴 의사는 전혀 없으면서 사퇴 운운하며 쇼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속 보이는 사퇴 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민을 기만하지 말라”고 직격했다.
윤희숙 의원이 쏘아올린 사퇴 선언이 폭탄을 더불어민주당 측에 떠넘기는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이 과반 이상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윤 의원 사직 안건이 본회의 표결로 부쳐지면 의결의 공은 민주당에 넘어간다.
여권 한 전략통은 “박병석 국회의장 성격상 사직서를 반려할 수도 있다. 민주당 의원들도 사퇴 표결에 찬성하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에 표결로 이어져도 동료 의원 사퇴가 가결된 경우는 거의 없다”며 “하지만 민주당은 표결까지 오면 반드시 가결시켜야 한다. 아니면 오히려 민주당에 ‘동료의원 감싸기’ 등 비판의 목소리가 넘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본회의 가결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 대해 “다수 당인 민주당 입장에서는 대선후보(이재명 후보)를 치열하게 공격한 내 사직안을 처리해주지 않는다고 예상하긴 어렵다”며 “민주당이 아주 즐겁게 통과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 한 관계자는 “아직 표결에 대한 입장은 없다”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윤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만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의힘 측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윤희숙 의원 부친의 농지법 주민등록법 위반 사안이 수사결과 등을 통해 나왔을 때 엄중성에 따라 본회의 의결이 달라질 수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희숙 의원 부친의 혐의가 구체적으로 나왔을 때 권익위의 의혹 제기가 과했다는 평가가 높으면, 윤 의원 사퇴 안건 본회의 가결 처리가 부담될 수 있다. 하지만 혐의가 어느 정도 인정되면 사퇴 의결이 처리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