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개 정보 이용 여부나 자금 출처가 관건…윤 의원 “사악한 음모” 국민의힘 지도부 ‘관망’
윤희숙 의원 부친은 2016년 3월 직접 농사를 짓겠다며 농지 취득 자격을 얻고, 그해 5월 세종시 전의면 신방리 논 1만 871㎡(약 3300평)를 8억 2200만 원에 사들였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윤 의원 부친이 세종시가 아닌 서울 동대문구에 살면서 벼농사도 현지 주민에게 맡긴 정황을 확인, 농지법·주민등록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 부동산이 본인 소유가 아닌 데다, 본인이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윤 의원 소명을 받아들여 당 징계 처분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렇게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윤희숙 의원은 8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이 시간 부로 대통령 후보 경선을 향한 여정을 멈추겠다”며 대선 경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더 나아가 “국회의원직을 다시 서초갑 지역구민과 국민들께 돌려드리겠다”고 국회의원직 사퇴까지 밝혔다.
윤희숙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친정아버님은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겠단 마음으로 2016년 농지를 취득한 후 어머니 건강이 안 좋아져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임대차 계약을 하셨다”며 “나는 26년 전 결혼할 때 호적을 분리한 이후로 아버님의 경제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에서도 사실관계에 대한 소명을 받아들여 본인과 무관한 일이라고 혐의를 벗겨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친의 세종시 부동산 매입을 놓고 새로운 의혹들이 쏟아지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윤 의원 부친이 농지를 취득한 2016년 당시 윤 의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근무하고 있었다. KDI는 산업단지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 등 개발정보를 광범위하게 취급하는 기관이다.
여기에 윤 의원 제부 장 아무개 씨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했고, 농지 매입 2개월 전까지 최경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일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의 업무는 부처 내 주요자료 및 정보를 습득해 장관 업무를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이 같은 정황으로 미뤄 윤 의원 부친이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 개발정보 등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부친이 농지를 매입한 이후 주변에는 세종 스마트 국가산업단지와 세종 미래 일반산업단지, 세종 복합 일반산업단지 등이 들어섰다. 부친이 8억 7000만 원에 매입한 논의 현 시세는 1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5년 사이 2배 이상 오른 셈이다.
또 윤희숙 의원의 기자회견 내용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나와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8월 26일 JTBC ‘뉴스룸’ 보도에 따르면 윤 의원 부친은 “애초 투자할 건물을 보러 갔다가 매물로 나와 있는 농지를 보고, 농사를 짓다 보면 개발될 수 있겠다 욕심이 들어 매입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귀농’ 목적이었다는 윤 의원 해명과 상반되는 설명이다. 윤 의원의 모친 역시 CBS노컷뉴스에 “(남편이) 이 땅이 앞으로 개발되면 쓸모가 있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은 실제 경작인 김 아무개 씨가 “(부친이) 스스로 농사를 지으려 할 때 세종에 있는 딸 집에 주로 오고 갔다”며 “그 딸이 윤 의원인지는 25일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목도 “아버님의 경제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한 기자회견 해명에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법조계 관계자는 “윤 의원 부친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았고 주소지가 세종이 아닌 서울 동대문구로 돼있는 만큼, 권익위가 제기한 농지법과 주민등록법 위반은 확실해 보인다”며 “앞으로 남은 부분은 부친이 윤 의원이나 제부로부터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농지를 취득했느냐다. 또한 윤희숙 의원 등의 자금이 들어갔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부패방지법 및 명의신탁 부동산실명법 위반까지 적용되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당 부동산을 보면 윤 의원 부친이 매입하기 몇 년 전에 임의경매에 올라가고, 필지도 나누고 합친 모습이 보인다. 개발을 위한 투기 움직임이 있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의혹에 더불어민주당은 윤희숙 의원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양이원영 의원은 8월 2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의원직 사퇴라는 강경수를 들고 나와 처음엔 놀랐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상하다”며 “무릎을 치는 묘수다. ‘사퇴쇼’ 아닌가.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윤희숙 의원님 참 요란하다. 본인이 떳떳하면 특수본 수사를 받아서 부친 땅과 연관이 없음을 입증하면 될 텐데 수사를 피하시려고 그러시나”며 “떳떳하면 수사를 받으라”고 지적했다.
앞서 양이 의원은 권익위의 민주당 의원 전수조사에서 모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으로 출당 조치됐다. 당시 윤 의원은 양이 의원을 향해 ‘투자의 귀재’라고 비판하며 ‘가족 투기 의혹에 성역 없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양이 의원은 “그대로 돌려드린다. 윤희숙 의원님이 ‘투기의 귀재’가 아닌지 입증하라”라고 일침을 날렸다.
민주당 대선주자 김두관 후보도 자신의 SNS를 통해 “윤 의원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며 “이번 기회에 국가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독점하면서 전국의 개발정보를 대부분 알고 있는 KDI 근무자와 KDI 출신 공직자, 그 가족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가적인 의혹이 잇따르며 상황이 악화되자 윤희숙 의원은 8월 27일 재차 기자회견을 열고 의혹을 정면 반박했다. 윤 의원은 “지금 나 자신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수사의뢰한다. 공수처가 못하겠다면 합동특별수사본부에 다시 의뢰하겠다”며 “법적·사회적 방패를 내려놨으니 평범한 시민이 받는 수사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KDI 재직 시절 7년간 거주했던 세종시 집에 대해서는 “이삿날을 제외하고는 가족 누구도 방문한 적이 없다”며 “집도 압수수색하라. 부모님 댁도 압수수색에 흔쾌히 동의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부친이 세종시 부동산 매매를 했던 2016년 통장거래 내역을 들어 보이며 “이것 말고도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제출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의원은 기자회견장에서 부친의 두 장짜리 자필 편지도 공개했다. 편지에서 부친은 “출가외인인 딸자식에게 이렇게 큰 상처를 주게 돼 애비 된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다”며 “문제가 된 농지는 매각이 되는 대로 그 이익을 전부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전했다.
윤 의원 역시 부친의 편지를 읽고 “이혼 후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했고, 부모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어 혼자 살며 공부와 일에 매진했다. 부모님께 나는 지금도 속상하게 만드는 철부지 딸일 뿐”이라며 “‘농사지으려 했는데, 이럴 수도 있겠다는 욕심이 나더라’는 아버님 인터뷰를 보며 내가 부모님을 너무나 몰랐구나, 너무 멀리 있었구나, 자괴감도 들었다”고 토로했다. 세종시 특별공급 아파트 의혹에 대해서는 ‘7년 내내 실거주를 했으며 원래 내놨던(높지 않은) 가격 그대로 팔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윤희숙 의원은 민주당 인사들도 겨눴다. 윤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내가 죄가 없거든 제발 사악한 음모와 날조된 거짓 선동만으로 남을 음해하고 대한민국을 좀 먹으며 승승장구해온 저들을 정치판에서 몰아내달라”며 이재명 후보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인 우원식 의원, 수행실장인 김남국 의원, 남영희 대변인 등 자신을 비판한 여권 인사들을 일일이 거명했다.
이어 윤 의원은 “이 음해에 가장 앞장선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이 모의의 꼭대기에는 누가 있나. 캠프의 우두머리 이재명 후보”라며 “내가 무혐의로 결론 나면 이재명 후보 당신도 당장 사퇴하고 정치를 떠나십시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현재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당초 이준석 대표는 권익위의 이번 결과의 공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했고, 윤희숙 의원의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장을 찾아서는 “‘연좌’의 형태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권익위를 향해 “참 야만적이다”라고 조사의 부당성을 비판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당초 권익위의 결과발표와 지도부의 징계결정으로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윤희숙 의원이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이준석 의원이 이를 만류하고 권익위 조사에 비판을 하면서 문제가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 또한 투기 의혹이 점차 커져가면서 지도부가 너무 섣부르게 대응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단은 내부적으로도 지켜보자는 입장이 많다”고 전했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당초 권익위의 조사 범위가 의원과 그 배우자·직계존비속이었다. 개인정보동의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그 대상자에 맞게 조사한 것이다. 그럼 조사결과를 받아들이고, 억울하면 향후 수사에 대응하면 된다. 그런데 당대표가 나서서 ‘연좌다’ ‘야만적이다’라고 권익위 조사결과를 부정하면 되겠느냐. 앞으로 수사결과를 지켜보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