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구설 이재오, 남편 출마 하차 김영란, 3년 임기 채운 이는 이성보·박은정뿐…“청문회 없는 임명직이라…”
그 중심에는 전현희 권익위원장이 있다. 전현희 위원장이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낸 만큼, 정치적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불거졌다. 2008년 설치된 권익위의 수장 권익위원장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숱한 논란이 있어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8월 23일 국민의힘 및 비교섭단체 소속 국회의원과 그 배우자·직계존비속 등 총 507명의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중 12명이 13건의 불법거래를 한 의혹이 드러났다. 대권주자 윤희숙 의원을 포함해 강기윤 송석준 이철규(이상 재선) 김승수 박대수 배준영 안병길 이주환 정찬민 최춘식 한무경(이상 초선) 의원 등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24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의혹을 받은 의원들에 소명 절차를 진행, 비례대표인 한무경 의원은 제명하고 강기윤 이철규 이주환 정찬민 최춘식 의원에 대해서는 탈당을 요구했다. 송석준 안병길 김승수 박대수 배준영 윤희숙 의원 등 나머지 6명은 본인 문제가 아니거나 소명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징계를 면제해줬다.
그러면서 이준석 대표는 권익위의 이번 결과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 대표는 8월 24일 자신의 SNS에 “권익위가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에게 제기한 내용을 보면 부동산 투기 또는 부동산 관련 비위의 구성요건도 갖추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며 “권익위가 민주당에 적용했던 잣대와 국민의힘에 적용했던 잣대가 공정했는지 국민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음날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윤희숙 의원의 대선 불출마 및 의원직 사퇴 기자회견장을 찾아서는 “‘연좌’의 형태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권익위를 향해 “참 야만적이다”라고 조사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6월 공정성에 의심을 보내며 권익위 조사를 거부한 바 있다. 그 이유로 권익위의 수장을 맡고 있는 전현희 권익위원장을 지목했다. 전현희 위원장이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냈던 만큼, 정치적 중립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권익위가 아닌 감사원에 전수조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감사원이 ‘국회의원에 대한 직무감찰 권한이 없다’며 실시 불가 회신을 보내고, ‘시간끌기 꼼수’ 논란이 불거지자 결국 권익위에 전수조사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전현희 위원장도 의무대상은 아니지만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국민의힘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에 직무회피 조치를 결정했다.
권익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은 과거부터 있어왔다. 권익위는 이명박 정부 재임 시작이었던 지난 2008년 2월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등 기존에 나뉘어 있던 3개 기구를 통합하면서 설립됐다. 국민 권리구제업무와 국가청렴도 향상을 위한 활동, 행정과 관련된 쟁송업무 등 국민의 권익보호 관련 업무를 한 기관에서 처리해 국민의 혼란과 불편함을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고충민원 처리와 이와 관련한 불합리한 행정제도를 개선하고, 공직사회 부패 예방 및 부패행위 규제를 통해 청렴한 공직·사회풍토 확립, 행정쟁송을 통해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권익위는 국무총리 직할 행정부 위원회로, 권익위원장 역시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권익위원장은 주로 법률가들이 맡아왔다.
2008년 3월 초대 권익위원장은 양건 위원장이 임명됐다. 헌법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힌 양건 위원장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입법위원회 위원장과 대검찰청 감찰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내며 사법개혁과 정치개혁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양건 위원장은 1년 5개월여 만인 이듬해 8월 권익위원장직에서 돌연 사퇴했다. 양 위원장은 퇴임식에서 “초대 위원장으로서 기관의 기초를 다지는 소임은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임기가 남아 있지만 중도 사임을 통해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 쇄신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당시 양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물러난 배경에는 청와대의 ‘권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경남지역 기관장 골프 접대 등 공직 기강 해이에 공직자 부패 방지를 담당하는 핵심부서의 책임을 물은 것 아니냐는 것. 실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권익위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
2대 권익위원장에는 ‘친이계 좌장’이자 정권 실세였던 이재오 전 의원이 임명됐다. 비법률가 출신으로 민주당에서 전문성이 없다고 비판하자, 청와대는 “다년간의 의정활동 경험을 통해 국민의 살림살이와 서민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있어 국민의 기본적 권익을 보호하고 청렴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권익위원장으로 적임이라 판단했다”고 내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재오 위원장은 재임기간 내내 구설에 시달렸다. 측근의 직원 채용, 사정기관 연석회의 소집, 개인적 정치행보 등 월권,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재오 위원장은 임명 9개월 만인 2010년 6월 7·28 서울 은평을 재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권익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3대 권익위원장을 임명하기까지는 6개월여가 걸렸다. 결국 청와대는 김영란 전 대법관을 내정했다. 김영란 위원장은 30년 가까이 법관으로 활동, 2004년 40대에 한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된 여성 법조계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대법관 시절 소수의견을 많이 내는 것으로도 유명했으며, 이를 통해 약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소수자의 대법관’이라고 불렸다.
청와대는 “국민이 겪는 각종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고 청렴하고 신뢰받는 공직사회의 구현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할 시점”이라며 “소수자 권익보호에 가치를 부여하고 판결을 통해 이를 실천해왔던 김 내정자를 권익위원장의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영란 위원장은 재직 당시 일명 ‘김영란법’으로 일컬어지는 ‘부정청탁 금지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입안했다.
김영란 위원장 역시 2년을 채우지 않고 권익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가 2012년 18대 대선에 후보로 출마를 준비하자, 위원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했지만, 김영란 위원장은 뜻을 굽히지 않고 사퇴했다.
4대 권익위원장에는 판사 출신의 이성보 위원장이, 5대는 검찰 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검사 출신 법조인인 성영훈 위원장이 임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6대 권익위원장으로 박은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했다. 그는 법과 윤리의 문제를 연구해 온 학자로,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인권재단 이사장, 한국법철학회장 등을 지냈다. 권익위원장은 3년 임기가 보장돼있다. 하지만 3년 임기를 모두 채운 위원장은 3대 이성보 위원장과 6대 박은정 위원장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를 마치고 떠난 박은정 위원장 후임으로 2020년 6월 전현희 현 위원장을 내정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두 명의 권익위원장을 모두 여성으로 임명했다. 전현희 위원장은 이재오 전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 정치인 출신이다. 다만 이재오 전 위원장은 관련 전문성이 없었지만, 전현희 위원장은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로 의료소송 등 공익 보호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해와 직접 비교는 어렵다는 평가도 나왔다.
청와대 역시 “변호사로서 소비자 피해구제·의료소송 등 공익보호를 위해 힘써 왔으며. 국회의원 시절 환경노동 국토교통 보건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왔다”며 “정치계 법조계 의료계에서 쌓은 전문성과 폭넓은 경험, 그간 보여준 강한 개혁 의지로 반부패 공정개혁을 완수하고, 국가청렴도를 제고하며 사회적 갈등을 해소해낼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권익위원장이라는 자리가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자리인데, 국회 인사청문회가 없는 대통령의 임명직이다보니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 같다”며 “하지만 부동산 전수조사를 의뢰할 때 결과를 수용한다는 것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이번 국민의힘의 조사결과에 대한 공정성 시비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