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달 21일 소버린자산운용 제임스 피터 대표(가운데)가 기자회견을 열어 (주)LG와 LG전자의 지분을 각각 5.46%, 5.70% 사들였음을 밝히고 있다. 소버린측은 이것이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다. | ||
소버린은 2년 전 SK(주) 오너 경영진의 퇴진 운동을 주도하면서 1만원대 미만에서 주식을 사들여 한때 장중 7만원선(지난해 12월 초)이 넘기도 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SK쪽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세력 결집에 성공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 이후 주가가 꾸준히 빠져서 최근 5만원대에 그치고 있다. SK쪽에선 “소버린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매각차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장담하고 있다. 소버린이 파는 순간 주가가 폭락할 것이고, SK쪽에서도 소버린의 지분을 사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그럼에도 소버린은 오는 11일로 예정된 정기주총에서 최태원 회장의 이사진 선출을 저지하겠다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덕분에 SK 주가는 최근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다. 소버린이 공격선언을 할 때마다 주가가 오르는 기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것.
이 와중에 소버린은 지난 2월18일 (주)LG와 LG전자의 주식을 각각 5.46%, 5.70% 사들였음을 공시했다. 더불어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LG그룹 계열사에 대한 투자 목적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소버린은 2년 전 (주)SK를 공격했던 것과는 달리 LG그룹에 대해 이례적인 찬사를 늘어놓았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기업의 하나인 LG그룹의 경영진과 우호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그들의 속내와 SK에 대한 질문은 모두 “대답할 수 없다”며 피해갔다. SK그룹과의 관련성에 대해 많은 궁금증이 제기되었음에도 “이 자리는 LG그룹과 파트너가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SK에 대한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며 곤란한 질문을 피해갔다.
SK와 관련된 판이 정리되기도 전에 LG 주식을 매집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알리고 나선 소버린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먼저 LG그룹에 대한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려는 목적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가능성이 그리 크지는 않다는 게 국내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 구본무 LG 회장 | ||
만에 하나 구씨 오너들 간에 분쟁이 생기면 몰라도 소버린이 현재 가지고 있는 7%대(2월25일 추가 매입)의 주식으로는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나 지분경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소버린측도 이에 대한 의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또 LG전자의 경우 국민연금, 피델리티 6.05%, 도이치뱅크 5.36% 등 장기투자 목적의 안정적인 지분구성으로 경영권 위험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소버린자산운용의 제임스 피터 대표가 도이치뱅크에서 10년간 일했었다는 점과 소버린이 주식매입을 발표하기 직전 피델리티 소유의 지분 1.05%가 매도된 것을 보면 소버린이 외국계 주주와 물밑협상을 벌여 LG전자의 경영권을 순식간에 위협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최근 LG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LG그룹이 LG전자의 지분을 더 늘릴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분쟁의 불씨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국내 기업이 외국계 투자자와 경영권 분쟁을 벌일 때 국내 경영진의 편을 들어주는 내부지침을 곧 만들어 LG를 지지할 것이 예상된다.
두 번째로 소버린이 LG에 대한 장기투자로 고배당을 얻으면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소버린측은 SK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단기 투기성 펀드’, ‘악의적 경영권 위협’ 등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자사의 이미지를 벗고 성장 가능성이 부각되는 LG전자와 지주회사인 (주)LG에 대한 단순투자를 목적으로 매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도 소버린이 단순 투자목적으로 시장에서 평가받기를 원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소버린이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 주요 주주로서 자사주 매입 후 소각, 배당 확대, 계열사 지원 제한 등의 요구를 확대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소버린은 LG그룹이 LG카드에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을 칭찬하기도 했다. 소버린이 두 번째 대주주로서 그룹 차원의 계열사 지원에 대해 앞으로 많은 견제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소버린이 LG그룹주를 SK(주)와의 분쟁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제기되기도 했다. LG그룹주와 SK(주) 주식을 동시에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LG그룹주를 대량 매입하여 주고 SK(주) 주총에서 지원을 약속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최태원 SK 회장 | ||
증권가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런 대량매수가 발생할 경우 외국인 순매수 규모가 크게 확대되는 것에 비해 외국인 매도도 많이 발생한 것은 소버린의 물밑 작전의 영향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앞으로 소버린이 어떤 행보를 취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소버린이 LG그룹에 투자한 데 대해 손해볼 것은 없는 장사라는 것이 공통된 견해다. 당사자인 LG측에서는 소버린의 주식매입에 대해 “경영권이 안정되어 있어서 별다른 대책을 취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앞으로 소버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LG와 달리 오는 11일 주총을 앞둔 SK는 소버린의 진의가 무엇인지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소버린이 (주)SK의 주총을 앞두고 벌써부터 주주들에게 ‘최태원 회장을 이사로 뽑지말자’는 요지의 편지를 돌리는가 하면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태원 회장에 대해 비난하면서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일각에선 SK 주총에서 표대결을 벌일 경우 SK가 이미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일 정도로 우호세력 판도가 결정돼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평가차익만 있지 아직 이를 현실화시키지 못한 소버린의 ‘성가신’ 제스처가 이어지면 SK에서 소버린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살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
현재 SK쪽에선 소버린 보유주식을 사줄 의향이 전혀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SK텔레콤 지분을 보유하고 경영에 이의를 제기했던 미국계 펀드의 지분을 SK쪽에서 사들인 전례가 있다.
LG와 SK를 향해 한손엔 당근을 한손엔 채찍을 휘두르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소버린자산운용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속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