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들 내심 ‘수수료 수익 내주고 이자 수익 지키자’…빅테크 제도권 편입 규제 방침도 ‘호재’
#수수료 인하에 투쟁 나선 노조들
금융위원회는 당정 협의 등을 거쳐 11월 말에 적격비용 산정 결과와 카드수수료 개편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지난 10월 14일 금융위는 9개 카드사(8개 전업카드사, NH농협카드) 사장들을 소집해 적격비용 산정 경과를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카드사 사장단은 신용판매부문이 적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수수료 인하는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금융당국은 수수료를 인하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4월 여신금융협회는 삼정KPMG를 원가분석 전문 컨설팅업체로 선정했고, 분석 결과를 8월 금융위에 제출했다. 삼정KPMG는 최근 3년간 카드사들의 자금조달비용, 위험관리비용, 마케팅비용, 일반관리비용, 밴(VAN) 수수료 등 원가를 기초로 분석해 적격비용을 산정했다. 현재 우대가맹점에 대한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연매출 3억 원 이하는 0.8% △연매출 3억~5억 원은 1.3% △연매출 5억~10억 원은 1.4% △연매출 10억~30억 원은 1.6% 등이다.
이런 가운데 카드사들은 최근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8개 전업카드사의 순이익은 1조 494억 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33.7%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가맹점 수수료 수익도 2578억 원 늘었다. 최근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신한·삼성·KB국민·우리·하나 등 5개 카드사의 누적 순이익은 모두 증가했다. 그간 코로나19로 위축된 소비심리가 회복하면서 실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당국 수수료 인하 방침에 카드사노조협의회는 ‘카드노동자 투쟁선포식’을 열고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지난 10월 22일 협의회는 금융위원회 앞에서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 폐지를 촉구하며 상복 시위를 진행했다. 정부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 이후 2012년부터 3년마다 적격비용을 확인해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율을 결정해왔다. 앞서 6월 롯데·신한·우리·하나·현대·BC·KB국민카드 등 7개 카드사 노조로 구성된 협의회가 공식 출범했다.
협의회는 카드수수료 인하로 인해 지난 몇 년간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에 가까운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지난 12년간 13번의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영업점포의 40%가 축소됐고, 10만 명에 육박하던 카드모집인은 현재 8500명밖에 남지 않았다”며 “카드사들의 신용판매 결제부문은 이미 적자 상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당국 행보에 미소 띠는 카드사?
이런 가운데 카드사는 노조와 별개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카드 수수료 지키려다가 이자수익에 대한 규제를 받을 수 있어서 운신의 폭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카드사들은 현금서비스(단기대출), 카드론(장기대출) 등 고금리 대출 사업에서 대부분 수익을 내고 있다. KB국민카드 올해 3분기 이자이익은 1조 326억 원이었고, 수수료 수익은 3981억 원이다. 같은 기간 신한카드의 누적 순이자 수익은 1조 3474억 원으로 전체 수익의 80%를 차지했다. 우리카드는 올해 상반기 이자이익 2861억 원, 수수료 이익 93억 원으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롯데카드 상반기 이자이익도 5664억 원으로 수수료이익 1521억 원의 3배가 넘었다.
카드사들은 규제 완화로 자동차 할부 금융, 리스, 빅데이터 등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자금 여력까지 생겼다. 지난해 10월부터 카드사의 레버리지 배율은 6배에서 8배로 완화됐다. 레버리지 배율은 카드사가 가진 자기자본 대비 총자산의 배율로, 금융당국은 카드사가 부채를 이용해 무리하게 자산을 늘리지 않도록 한도를 두고 있다. 실제 국내 카드사(8개 전업사)의 올 상반기 카드대출 이용액은 56조 1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한·KB국민·우리·롯데·삼성·하나카드의 자동차할부금융 자산은 총 9조 523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9% 증가했다.
실례로 2018년 카드수수료율을 인하했지만, 대출 사업 확대로 카드사들 실적이 상승돼 왔다. 올 상반기 8개 전업카드사의 순이익 1조 4944억 원이다. 2019년 8개 전업 카드사의 순이익은 1조 6463억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실적 개선을 이뤄낸 셈이다.
핀테크 규제 기대감도 최근 금융당국의 움직임에 카드사가 대응을 자제하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금융위원장이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강조하고 있어 본격적인 규제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0월 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빅테크 기업의 금융 진출 확대 과정에서 경쟁과 안정을 저해할 우려가 없는지, 소비자 보호에 빈틈이 없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대응하도록 하겠다”며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빅테크도 기존 금융사와 같은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금융당국은 쿠팡, 네이버, 카카오, 쓱페이, 페이코 등 빅테크 기업의 간편결제 수수료와 결제대행(PG) 수수료의 원가를 분석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이 플랫폼 시장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빅테크 업체들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결제만 중개하는 신용카드 수수료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네이버페이를 운영 중인 네이버파이낸셜은 “스마트스토어에 포함된 결제수수료에 간편결제부터 회원 로그인, 배송 추적, 빠른 정산 지원, 부정거래 방지, 고객 센터 등의 주문관리 서비스 비용이 포함된다”며 “네이버페이 수수료에는 카드사에 지급하는 가맹점 수수료, 신용이 낮은 온라인 쇼핑몰의 부도 손실 위험을 부담하는 PG 역할 수수료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카드사노조협의회는 빅테크·핀테크 업체의 시장 진입 등과 관련한 문제도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를 폐지할 수 없다면 빅테크 기업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 기업들은 가맹점들과 자율적으로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네이버페이(주문형 결제), 카카오페이(온라인) 등이 연매출 3억 원 이하 영세상공인에게 적용하는 수수료는 각각 2.2%, 2.0%에 달했다. 김한정 의원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의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빅테크 결제 수수료 인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당국은 과도한 수수료 폭리를 시정하는 등 빅테크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카드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라며 목소리를 내도 관철이 안 됐지만, 신임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다”며 “빅테크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려고 하면서 카드사들 입장에선 대놓고 웃을 순 없지만,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수수료는 3년마다 하기로 한 것이라서 각 사별로 나서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