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차업체들 전고체 배터리 내재화 박차…설상가상 테슬라 ‘LFP’로 교체, LG·SK 뒤늦게 개발 나서
#액체에서 고체로 배터리 패러다임 바뀌나
전고체 배터리는 전지 핵심 소재인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바꾼 것이다. 화재에 민감한 액체 전해질과 달리 화재 위험이 낮고 에너지의 밀도도 높아 배터리 용량을 확대하고 크기를 줄일 수 있어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대폭 늘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이미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컨설팅 업체 알릭스파트너스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현재까지 전고체 개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약 20억 달러(약 2조 3700억 원)로 추산된다. 시장 규모도 확대될 전망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0.2GWh였던 글로벌 전고체 배터리 시장은 2030년 309.2GWh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와 SK그룹, 제네럴모터스(GM), 상하이차 등이 투자한 미국 전고체 배터리 스타트업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이 있다. 11월 3일 SES는 ‘배터리월드’ 행사를 열고 하이브리드 리튬메탈 배터리를 공개한다고 알려졌다. 이 배터리는 에너지밀도가 리터(L)당 935Wh로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30%가량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전고체 스타트업 솔리드파워에는 현대차, 포드, BMW 등이 투자했다. 포드와 BMW는 내년부터 솔리드파워의 시험용 전고체 배터리를 인도받을 예정이다.
폭스바겐은 미국 퀀텀스케이프에 총 3억 달러를 투자했다. 퀀텀스케이프는 15분 안에 80%를 충전하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폭스바겐은 2024년까지 300억 유로(약 41조 원)를 배터리셀에 투자해 배터리 생산능력을 내재화하겠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는 유럽 내 배터리 생산 공장 ‘기가팩토리’ 6곳을 증설하고 연간 240GWh 규모 배터리셀을 자체 생산하겠다며 목표를 제시했다. 앞서 2023년부터 각형 배터리를 적용해 2030년 생산 전기차 80%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생산하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직격탄을 맞았다.
완성차 기업은 전고체 탑재 전기차 양산 계획을 발표하며 배터리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폭스바겐은 퀀텀스케이프와 함께 전고체 배터리 탑재차량 생산라인을 2025년경 설치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올해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2025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시범 양산하고 2027년 양산 준비, 2030년 본격 양산에 돌입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말했다.
중국 전기차 기업인 니오(NIO)는 2022년부터 전고체 전지를 신차에 탑재할 예정이다. GM은 350억 달러(약 41조 원)를 전기차와 자율주행 차량에 투자해 배터리 내재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 토요타는 세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시제품을 공개했다. 해당 전기차는 2025년 양산돼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토요타는 오는 2030년까지 약 16조 원을 전기차 배터리 생산과 개발에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2030년에는 연간 200GWh 이상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추겠다는 목표다.
#주력 상품도 중국에 밀리는 한국
완성차 기업들이 배터리 내재화에 이어 전고체 연구개발 성과까지 가시화되면서 K-배터리 3사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특히 K-배터리 3사의 주력 상품인 리튬이온 배터리 점유율은 중국 기업에 밀리는 형국이다. SEN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9월 K-배터리 3사 점유율을 합치면 33.8%다. CATL(31.2%)를 포함한 상위 10위 내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45.5%로 한국을 앞서고 있다.
한국 배터리가 핵심 원재료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위협 요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4대 핵심 소재의 중국 기업 의존도는 60% 이상이다. 리튬이온 배터리 소재의 중국 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양극재는 65%, 음극재는 42%, 전해질은 65%, 분리막은 43%인 데 반해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양극재 6%, 음극재 15%, 전해질 4%, 분리막 28%에 불과하다는 산업연구원의 분석도 있다. 뒤늦게 K-배터리 3사도 배터리 소재 생산에 투자하겠다고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투자가 성과를 보이기 전까지는 무역 갈등이나 지정학적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전고체 배터리 특허 경쟁에서도 일본에 뒤지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 출원 건수(2011~2020년 기준)는 10위권에 일본기업 6곳, 한국기업 3곳, 독일기업 1곳이 포진돼 있다. 이 중 토요타가 901건으로 압도적인 1위다. 삼성전자(184건), LG화학(132건), 현대자동차(119건) 등 한국 기업의 특허 건수를 합친 것보다 2배 이상 많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K-배터리 3사가 주력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성능이나 원가 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없어진다는 판단 하에, 일본 등 글로벌 배터리업계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교체를 선언했다. 주력 차종인 ‘모델3’과 ‘모델Y’에 기존 NCM(니켈·코발트·망간)배터리 대신 저렴한 LFP 배터리가 탑재될 예정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모회사인 다임러도 엔트리급 모델에 사용되는 배터리를 LFP 배터리로 교체한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LFP 배터리 중 90% 이상이 중국산이다. 결국 LG화학, SK이노베이션도 뒤늦게 LFP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가치가 과대평가됐다는 외국계 투자은행(IB)의 보고서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5월 모건스탠리는 “전기차 시장은 10년간 연평균 20% 성장하겠지만, 배터리 제조사들의 수익성은 경쟁 심화로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배터리 산업은 반도체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기술 난도가 낮아 진입 장벽이 낮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독과점 체제를 구축한 것과 달리 경쟁 과열로 배터리 산업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되는 이유다. 전통적으로 완성차 기업과 부품사는 '갑을관계'가 명확한데 배터리업계에서 이를 역전할 만한 기술격차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단 뜻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국내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토요타의 전고체 기술력이 앞서고 있는 건 맞지만, 상용화될지는 확신할 순 없다. 파나소닉과 토요타의 배터리 합작사 ‘프라임플래닛에너지&솔루션(PPES)’만 보더라도 저가형 배터리 양산을 뒤늦게 준비하고 있다”면서 “내수시장이 큰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과 보호를 받는 중국 기업과 한국 기업을 시장에서 같은 선상에 놓고 보지 않을 것이다. 미국, 유럽 시장에서 K-배터리 3사가 과점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고 말했다.
LFP 배터리 개발과 관련해서는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사양도 고급, 보급형, 저가형 등 세분화되고 있다. 그러면서 기술적인 난이도가 높지 않은 LFP 배터리가 부상하게 됐다”며 “국내 기업이 기술력이 없어서 LFP를 내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고민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어 “실례로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한국 고유의 기술인 코발트 프리제품(저가형)을 개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높은 에너지 밀도를 갖춘 LFP를 개발하겠다고 나섰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