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에 묻힌 지성미 ‘먼로 대용품’
마릴린 먼로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제인 맨스필드는 또 한 명의 ‘블론드 섹시 스타’였다. 연기자로도 뛰어난 면을 지니고 있었지만 신이 내린 ‘지나치게 섹시한’ 몸은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가려 버렸고, 마릴린 먼로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후에 자동차 사고로 그녀도 유명을 달리했다. 그때 제인 맨스필드의 나이, 34세였다.
1933년 펜실베이니아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유명한 변호사였던 아버지는 맨스필드가 세 살 때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녀의 삶은 쉽지 않았고 배우를 꿈꾸었지만 열일곱 살 때 결혼해 그 해 첫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이후 댈러스대학과 텍사스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했고 자잘한 미인대회에 입상하며 생활비를 벌던 그녀는 스물한 살이 되던 1954년에 LA로 간다.
UCLA에서 연기를 공부하며 텔레비전 시리즈의 단역을 전전하던 그녀는 파라마운트에 픽업되었고 스튜디오 간부의 조언으로 흑갈색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다. 이후 홍보 전문가 짐 바이런 휘하에 들어간 그녀는 자신을 상징하는 색깔로 핑크를 선택했고, 스스로 ‘폭탄 스타(Bombshell Star)’라는 별명을 붙였다.
<피트 켈리의 블루스>(1955)에서 담배 파는 여자로 등장해 단역이지만 섹스어필한 매력을 선보여 주목받았지만, 스타덤에 오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녀는 탈출구를 브로드웨이에서 찾았다. <성공이 록 헌터를 망치게 될까?>라는 연극에 과다 노출 캐릭터로 등장한 그녀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당시 마릴린 먼로를 보유하고 있던 20세기 폭스가 그녀를 발견한다. 구릿빛 머리카락에 가슴이 강조된 꽉 끼는 가운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도둑 The Burglar>(1957)으로 돌파구를 마련한 그녀는 같은 해 자신이 했던 연극을 영화화한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스타덤에 오른다. 어린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캐리 그랜트와 <나를 위해 그들과 키스하세요>(1957)에서 공연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고, 그랜트는 그녀에게 전설적인 섹시 퀸이었던 메이 웨스트의 뒤를 이을 배우라는 찬사를 보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선 가장 유망한 신인으로 선정되었고, 사진기자들로부터 포토제닉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전성기는 너무 짧았다. 누구보다 좋은 배우가 되고 싶은 열망이 강했지만 진지하게 여겨지기엔 그녀의 이미지는 ‘성적 과잉’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섹슈얼한 캐릭터를 제대로 맡은 것도 아니었다. ‘마릴린 먼로 대용품’이었던 그녀는 오로지 ‘멍청한 블론드’ 역할로 한정되었고 1962년에 먼로가 세상을 떠나면서 블론드에 관심이 점점 사라지자 그나마 그런 역마저 맡지 못했다.
다섯 아이의 엄마로 아이와 동물을 사랑했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즐겨 연주했으며 5개 국어를 구사했던, 지적이면서 감성적이었던 배우는 죽을 때까지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지 못했다. 40-21-36이라는 모래시계에 가까운 사이즈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약속들 Promises! Promises!>(1963)에서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에서 최초의 누드 연기를 한 배우’로 기억될 뿐이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재창조하기 위해 인생의 전성기를 보냈지만 그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1960년대에 그녀는 더 이상 할리우드에서 메이저 롤을 맡을 수 없었고 미국 전역을 돌며 클럽 공연을 하며 돈을 벌었다. 후대의 팬들에 의해 ‘1960년대의 마돈나’로 불리기도 했던 그녀는, 특유의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떠돌이 인생’은 그녀를 알코올 중독으로 이끌었고 결국 비극으로 끝났다. 1967년 6월 29일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쇼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겪었고 34세의 젊은 여배우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제인 맨스필드는 스스로를 재창조하려 애쓰면서 인생의 전성기를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스튜디오에 의해 여배우의 모든 이미지가 만들어지던 시기에 그녀는 짧게 착취당하고 쉽게 버려진 배우였다. 만약 마릴린 먼로가 없었다면, 혹은 요절하지 않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녀에 대한 평가와 필모그래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